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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규리 Jul 03. 2021

빈둥거림의 달콤함

돌체 파르니엔(Dolce Far niente)

(Dolce Far Niente)

 주에 한두 편씩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다. 마음을 쿡 찌르는 대사나 아름다운 색감의 장면이 나오면 캡처를 해 블로그에 차곡차곡 모아두던 시절이었다.


 그간 소홀했던 블로그를 쭉 둘러보는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뉴욕에서 텅 빈 화려함 속에 살던 주인공이 이탈리아와 인도, 발리로 떠나 제목 그대로 Eat, Pray, Love 하며 주체성을 찾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채도가 살짝 낮아 편안함을 주는 영상들로 꽤 많은 장면들이 캡처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유독 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한 이탈리아인이 미국인(주인공)들은 대체 마음껏 즐길 줄을 모른다며 타박하는 씬에서,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은 쉴 때면 아무 걱정없이 달콤한 시간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돌체 파르니엔'이라고 했다. 



 빈둥거림의 달콤함. 나는 이 맛을 잘 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자유의 맛. 주말이 왜 짧게 느껴지냐고? 실제로 겨우 이틀 뿐이다. 짧다. 나는 7일 중 이틀밖에 안 되는 이 소중한 시간에까지 생산적이고 싶지 않다. 


 알람을 맞추고 잔 것도 아닌데 일곱 시쯤 눈이 떠지는 토요일. 평일이라면 벌떡 일어나 씻으러 가야 하지만, 세네 시간은 거뜬히 누워 밀린 정보들과 요즘 뜬다는 영상들을 볼 수 있다. 느지막이 몸을 일으키고는 거실 소파에 다시 드러눕는 것이 일이다. 티비를 보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예능 몇 편을 보다 보면 금세 여섯 시가 넘는다. 뒤늦게 무얼 좀 해볼까 계획도 세워보지만, 실패해도 괜찮은 토요일이다. 약속이 없는 주말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보낸다. 어떤 의미로든 치열한 평일을 보냈다면, 일주일에 하루쯤은 한심할 정도로 쉬어도 된다는게 내 지론이다. 


 나와는 반대로 제대로 쉴 줄도 모르는 줄리아 로버츠가 예쁜 가운을 입고 달콤한 케이크를 혼자 음미하는 것으로 이탈리아의 배경이 마무리된다. 이제 막 돌체 파르니엔을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게으름의 달콤함 외에 부지런함의 담백함도 느껴보려 한다. 가끔은 무엇을 하든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 생각에 허무함이 느껴져서다. 단 맛 뒤에 느껴지는 일종의 슈가 크래쉬*랄까.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였으니 주말은 쉬어야 해'라는 생각이 강박처럼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다보니 빈둥거리는 것 외에 나를 충전하는 방법은 없을지 생각해보게 됐고, 느슨함을 주는 휴식과 생기를 불어넣는 휴식의 밸런스를 찾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토요일 오후 늦은 점심을 먹고선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비즈를 꿰는 것이다. 나는 분명 쉬는 것인데 결과물이 남는다. 이런 뿌듯함으로 계속 만들다보면 친구들에게 줄 수 있을만큼 갯수가 넉넉해진다. 일요일은 넉넉함을 나누기 위한 약속을 잡는다. 전에는 몸이 편한 것만 생각해서 그저 가까운 곳 위주로 약속을 잡았다면, 이제는 조금 멀더라도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은 곳에서 만나기로 한다.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다보면, 혼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전환이 된다. 소일거리에서 시작된 자연스런 휴식이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런 기분은 더 나아가 자격증 같은 것도 따고 싶게 만든다. 제빵이나 커피 관련된 것 말이다. 이전엔 상상치도 못했던 취미들이 내게 얼마나 많은 뿌듯함을 안겨주고 그것은 또 어떤 변화를 만들까.


 달콤한 쪽을 택하든 담백한 쪽을 택하든 성향에 따라 불편한 휴식이 될 수도 온전한 휴식이 될 수도 있다. 생산적인 휴식은 마땅한 것이고, 빈둥대는 휴식은 정당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각자에게 맞는 휴식이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느 정도 내 입맛을 찾은 것 같다.





*슈가 크래쉬(Sugar Crash) : 당을 과도하게 섭취한 후 오히려 피곤함과 무기력함을 겪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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