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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Feb 21. 2024

야루키라는 匠人(장인)

남영동 야루키



남영동에 대한 단상은 토박이의 말로 시작한다.‘예전에 여긴 아주 서울 변두리 같은 동네였어’라는 모순적인 얘기였다. 서울 도심을 지도로 들여다보면 용산, 숙대, 남영 부근은 서울의 중심 중에서도 중심이다. 다만 한적한 동네를 조금 거닐다 보면 거칠거칠한 철길이 눈에 들어오고 대낮에 골목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베이지톤의 미군부대 밖으로 날카롭게 높이 솟은 철창이 적지 않아 보이는 세월이 묻은 동네와 공존하고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번화하던 이태원의 끝자락 같기도 하고 고요한 해방촌 골목 어딘가를 오르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지금의 남영동과는 달리 예전에는 작은 불빛들이 몇 개만 얌전히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사람이 좀 있나? 싶으면 어느 가게든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원격줄서기 없이는 오픈런하지 않고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칭 로컬이라 부르는 지역 토박이가 보기에도 낯선 광경은 자그마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상생하고 입소문을 탄 가게 웨이팅을 위해 사람들은 인근 카페에 진을 치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오히려 번화하기로 유명했던 거리는 (이를테면 종로 일대와 명동과 같은) 임대 현수막이 붙고 불이 꺼지기도 했지만 끝날 줄 몰랐던 코로나가 스친 바람이 조용하던 동네를 조심스럽게 발굴해 내기도 했다. 밤만 되면 득달같이 또 주말이면 더 새롭고 비밀스러운 약속의 장소로 사람들이 모인 탓이다. 또다시 계절이 바뀌듯 환기되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마스크를 이제 벗어던진 요즘 세상에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몇 번을 더 찾을수록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리는 남영동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보지 못했던 베이커리 카페도 붉을 밝히고 처음 보는 와인바에 무드 등이 켜진다. 어떻게 알고 자리하는지 모를 선구자들은 각자 입소문을 내고 있었고 그만큼 남영이라는 이름은 낯익어 갔다. 낯선 효창공원과 숙대입구 사이 남영역과 철길로 잔상이 남기 시작했다. '그 시국'부터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작고 아기자기한 가게들 안에서 너무 시끄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따뜻한 동네가 된 것이다. 다만 테이블이 적어 많이 모일 수는 없었다. '거리 두기'라던 이제는 기억에서 지운 지침을 지키면서도 조금은 과감하게 외식을 즐길 수 있는 최적화된 공간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일식이라는 장르를 선호 이상으로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서울에서, 생활반경 내에서 '괜찮은 이자카야'를 찾기란 매일 고민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 고르기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굳이 이자카야라는 장르를 차치하더라도 돌고 돌아 마지막 자리는 한 점을 먹어도 감칠맛 나는 손맛 좋고 ''이 고스란히 담긴 한 접시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반주를 넘어 아쉬운 대로 한 잔 더 끌고 나가려면 가볍지만 인상적이고 무거우리만큼 정성이 담긴 '맛있는' 안주를 떠올린다. 어딘가 배부르지 않게 가벼운 건 맞는데 여운이랄까, 무언가 부족하다. 결국 고르다 보면 결국 거기서 거기일 테고 어딘가 가긴 가는데 영 석연치 않다. 



물론 막대한 비용을 치른다면 재료만으로 기본 이상은 할 테니 그런 접근은 일상스럽지 않을 뿐 아니라 너무 뻔한 얘기가 되겠다. 어느 날이라도 좋고 특별한 날에 생각날만한 합리적인 가격에 높은 만족과 기억에 남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 여전히 갈길은 많이 남았지만 소비자 미식의 역치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가는 가운데 묵묵히 쏟아내는 엄청난 메뉴를 만들어내는 匠人(장인)을 보면 단번에 존경심을 갖게 된다.



매력적인 남영동의 야루키는 최근 최단 시간에 재방문하게 만든 가게다. 완성도 높은 메뉴 구성, 음식 하나하나 내놓을 때마다 엿보이는 개성과 풍미,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장소를 만났다. 사케를 베이스로 한 다양한 주류 구성, 과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은 서비스,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아무리 맛이 좋은 음식이라도 공간이 편안하지 못하면 다시 쉽게 발길이 닿지 않고 손이 가지 않는다. 가끔 들러도 자주 오던 곳같이 느낄 수 있는 야루키만의 편안함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게다가 일품의 맛으로 기억되는 복합적인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하이볼의 밸런스와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실험적인 계절메뉴들을 보면서 진지하게 이자카야가 설득력 있게 '이자카야답다'는 건 이런 모습을 두고 하던 말이 아니었을까. 이젠 오랜 남영동에서 오랜만에 이 분야의 진짜 匠人(장인)을 만났다.




EDITOR

:HERMITAGE

BY_@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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