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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Feb 26. 2024

건너가지 않아도 된다는 소문

보광동 소문 보광점



ホルモン(호루몬)의 향수는 도쿄 신주쿠 ‘Omoide Yokocho’에 두고 왔다. 곱, 양, 대창을 ホルモン(내분비물질)이라는 표현이 어쩐지 장르 타이틀에 희소성과 품격을 동시에 높여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름 앞에 붙는 특수부위는 말 그대로 ‘특수’하다 보니 적은 양임에도 고가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이라면 그렇고 또 일상적인 부위(집에서도 쉽게 조리할 수 있는)나 종목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양을 섭취해야 한다면 그만큼 품질은 더욱 중요해진다. 물론 보는 것만으로도 살인적일듯한 칼로리를 섭취 한 뒤엔 몸에 부과되는 책임감과 함께 다소 부족하게 달래진 허기, 흠칫 놀랄지도 모르겠는 비용을 기름진 손으로 덥석 짊어져야 한다. 



ホルモン(호루몬)의 매력을 한 번이라도 맛본다면 기꺼이 그 비용을 치르고 싶다. 특수하기만 한 매력이 단지 흔치 않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강박적으로 표현하자면 씹는 동안 죄짓는 기분을 느끼는 동시에 삼키는 행위가 작은 일탈 정도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것들은 주로 심리적인 것들이고 실은 기름지고 희소한 부위가 주는 아찔한 매력이 감칠맛을 도드라지게 한다고 해야 할까. 낯선 식감과 허용되고 제한된 수치를 넘어선 맛의 표현은 메마른 식욕이라거나, 오늘은 무얼 먹지?라는 다소 식상한 고민 위로 유려하게 기름을 칠해 절제라는 녀석을 속아 넘기고야 마는 걸까.  



다시 신주쿠 거리로 돌아가 뒷골목에 들어선다. 낯이 뜨거워질 만큼 숯이 가득 들어 강해지는 중인 화로의 화력과 한글화가 어색하지만 재밌게 되어 있는 패드로 간편하게 주문해 순식간에 준비되어 오는 늑간살, 우설, 갈빗살 같은 やきにく(야키니쿠)를 만나보다 보면 한 편의 보드게임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벼운 터치 한 번으로 양껏 이라기엔 부족한 소량의 眞味(진미)가 나오다 보니 두꺼워지는 영수증을 차마 확인할 겨를이 없다.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순수한 맛을 있는 그대로 즐기다 후발대로 찾아오는 변주는 양념까지 되어 부드럽게 흐른다. 기름에 흠뻑 취해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난 화로를 더욱 성나게 만든 통에  일탈로 지배당한 정신은 기름으로 맨질맨질해진 입술과 불조절을 해야만 하는 시야로 전부 빼앗겨 '빌지' 같은 건 확인할 새도 없는 것이다. 타지 않게 굽는데 급급하다 마주친 영수증의 주소는 스시 오마카세 런치나 꽤 괜찮은 호텔 뷔페 정도 수준에 이르렀을지 모르겠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조용했을 그때 보광동의 숨겨진 보물,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찾아올 만큼 입소문 난 소문을 꾸준히 잊을만하면 한 번씩 재방문하고 있다. 다른 지점이 있던 오래전 그 시절에도 이태원 보광점만을 고집하고 애정했던 이유는 몇 번을 방문해도 맛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불현듯 심심하게 찾아오는 친절과 편안함도 그렇지만 회전율에 따라 선도의 영향을 받기 좋은 장르다 보니 거기다 적은양으로 한판 승부를 봐야 하기에 기복 없는 퀄리티는 더욱 중요해진다. 때마다 실망 없는 한 점이 찰지다 해야 할 만큼 감기는 통에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접시에서 메뉴는 한순간 격파 된다. 그쯤 되면 슬슬 사이드 메뉴에 눈이 가기 시작한다. 잘 구운 고기를 집어 타레소스를 한번 찍을 때마다 찾아와 스치는 익숙함. 그때의 첫인상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첫 방문에도 오모이데요코초의 향수가 제대로 떠올라 쏟아지는 호기심을 주어 담았다. 검색해 보니 양갈비의 명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치류의 노하우로 만든 가게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느 시절을 코로나 시국이라 부르던 때부터 보광동에는 숨은 맛집들이 종종 있어 왔지만 그만큼 접근성이 좋은 상권은 아닌 입지에서 오랜 시간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가게가 가진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이적으로 보여주며 증명하고 있다. 열리지 않는 소비자들의 지갑과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는 접객, 꺼질 줄 모르는 불경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어느 날 연남동에서 소리 소문 없이 방출된 소문 연남점을 보며 조용히 마음 아파했다. 그럼에도 최근 다시 방문한 본점, 보광점 소문의 생명력은 굳건해 보였다. 좋은 품질의 야키니쿠 여전히 숨 막히는 호루몬과 그 밖의 구색을 갖춘 작은 메뉴까지, 변치 않는 친절한 서비스까지 모두 유효했다. 


이런 한결같은 모습에 좋은 품질을 유지하는 재료의 맛에 더해져 술 한 번 제대로 술술 넘어간다. 말하자면 맨 정신에 가게를 빠져나올 확률은 매우 낮다. 취기가 오르면 탄수화물 생각이 난다. 조금 전 확인했던 사이드 메뉴다. 이런 선택지까지 갖추고 있다면 멀리 나갈 필요도 없다. ‘딱 한 병만 더' 외쳐보지만 어느새 네, 다, 고를 외친다. 파와 달걀, 밥을 조합한 네기, 다마고, 고항이다. 이 조합은 다시 반주로 이어져 자리를 박 차기 전까지 소고기 찌개로 입을 헹궈야 하는 게 이곳의 慣例(관례)다. 이 모든 과정에 충실하고 나면 든든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야키니쿠 전문점 소문은 검증된 맛으로 ‘일본까지 건너가지 않아도 된다’는 그들의 막중한 설명에 책임을 지고 있는 가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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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BY_@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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