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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Feb 17. 2024

그 해 겨울 일기 II

언제를 시작이라 불러야 좋을지 모를 계절의 입구에서




한쪽 구석이 싸하다. 이런 느낌은 종종 있어왔지만 기억하는 한 최근엔 없었다. 특별히 떨어질 것도 없는 면역력이 어딘가 무너져 틈을 보인 것이라기보다 조금 지친 줄만 알았다. 사라진 입맛이 바스락 해진 것을 넘어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어딘가 잘못되기는 한 것 같다. 하루를 망칠 순 없으니 그런대로 잘 버텨주고 있는 거라 믿고 자리를 옮겼다. 그날도 적당함을 넘어 선 스산함이 공기에 감춰져 있었고 기승을 부리기로 했던 날씨는 겨울답게 추워져있었다. 두꺼운 곳을 꺼냈고, 작년의 냄새와 온기가 아직은 베여있는 채로 거리를 나섰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이겨낼 거라 믿으며



빙글 돌아가던 둥근 세상이 차갑고 날카롭게 느껴지기 시작한 걸 보니 공기가 뾰족하게 변한 모양이다. 에이 기를  넘어 찌르는 느낌이 들면 움츠러든 것 이상의 급격한 변화가 시작되는데 갑작스러워 장단을 맞추기란 어렵다. 아마도 최후를 기다리던 함락 직전의 성이 성문을 개방한 것인지, 으스러질 힘으로 밀어붙인 한쪽 성벽이 허물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과정은 이미 진행 단계에 들어섰고, 직전에 거는 마지막 브레이크는 막차처럼 떠나갔다. 이 타이밍에 출발하지도 않은 심야버스를 기다리기도 모호해졌다. 여기는 출차 없는 시각에 가장 멀리 떨어진 정류장이고, 거리엔 빛이 번지도록 지나다니는 차 한 대 없는 고립된 장소다. 



아픔의 경력이 하루 이틀이겠냐마는, 매번 새롭게 적응하지 못하는 ‘그것’ 같다. 그렇다고 잦다거나, 자주 잔병치레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버티는 것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고 치명적이게 될 변화를 막아내거나 억누르는 것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직전의 브레이크란 이때다. 스스로 약을 처방하고, 활동량을 줄이고, 평소보다 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조금 더 무거운 음식을 섭취하는 일, 끼니를 한 번쯤 더 챙기고 물을 마셔대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경고등이 보이면 조심하게 되는 거 누구나 하는 그 정도에서 나아가 철저하다면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거나 링거를 꼽고 자리에 눕는 일이다. 무려 아프기로 한 바로 직전에. 골든 타임은 지금도 그때뿐이라고 믿는다



혹사한다는 말, 잠시 내려놓으라는 말을 듣는다. ‘휴식’이라고 부르고 ‘잠시 멈춤’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프지 않다면 움직일 수 있다면 아마도 무언가 하고 있을 테니까. 그건 가당치 않은 일이 되기도 했다. 멈추는 게 때론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필요했다. 이젠 어느 정도 인정해야만 하는 때가 왔다. 어느 날 알게 됐다. 평소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그래서 더욱 주저하고 미뤄두기를 스스럼없던 과정을 그간 얼마나 철저히 가볍게 여기며 보내왔을까. 달리 멈추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 큼인지가 중요했다. 아주 조금 알 것 같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기를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안을 삼으면서 뉘었던 몸을 일으켰다. 



아주 작은 몸이었을 때 이제는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아팠던 기억이 난다. 주로 열이 많이 났던 것 같고, 자주 그랬다. 그럴 땐 이불에 스치는 바스락함도 자극적으로 느껴졌고 적은 체중에도 한쪽으로 누워있으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배기거나 부대끼기 시작했다. 해열제의 맛이라는 걸 그때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열을 내리려던 각고의 노력들이 여러 장면이 되어 남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앓게 된 걸까. 허물없는 추위 속에서 침투하기에 어렵지 않은 환경 너머의 장벽 같은 게 그걸 그렇게 뜨겁게 만들었던 걸까. 그건 생각해 보면 조금 무서운 일이다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공격받아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곱씹어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바깥으로 보이는 건 흐리멍덩해진 표정과 창백한 얼굴밖엔 없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걸어서 이불 밖을 나서는 일조차 쉽지 않다. 힘겹다, 버겁다 이제 무엇이라 말해야 좋을까. 당장이라도 박차고 일어날 것 같아도 막상 눈앞은 휘청거린다. 언제 고요한 숨이 있었는지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쉴 새 없는 기침이 이어진다. 하늘이 노오란 건지 세상의 온도는 어쨌든 붉거나 뜨겁다. 여긴 작은 온실이 되어 모든 아픔 전체를 수용하고 있지만 정작 안에서 꽃을 피워 내야 하는 건 자신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고통이 몇 날 며칠 이어진다. 시작과 끝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좀 나을 텐데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어설픈 기대를 번지는 미소처럼 지어보기도 한다. 여기에서, 단지 누워 숨을 한 번씩 골고루 내쉬어보는 것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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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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