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MITAGE Feb 21. 2024

옛날의 품격

당산 당산옛날곱창


호언장담했다. 기세만 있는 기백은 아니라서 거창한 영감은 필요 없을 거라 그랬다. 언젠가 붉게 번지는 불빛들 사이로 좁게 펼친 어드벤처 입구에 가담할 일이 언젠가는 있겠노라고만 생각했다. 그의 제안은 갑작스러웠지만 일상적이었고 흐름은 인상적이었다. 연말 분위기를 가장한 ‘밥 한 먹자’는 주제의 결말이었다. ‘저녁에 뭐 해? 시간 되니?’ 철 지난 광고 문구처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으레 반복되는 식사나 자리는 아니었다. 종종 찾아오거나 예고되지 않는 어느 날 펼쳐지는 메가 이벤트였다. 외선순환을 한 번 돌고 돌아 제자리에 앉은 후 도착 전에 장담하던 맛과 유사한 기억을 한차례 펼쳐보았다. 


당산이라는 동네에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다. 된장찌개로 건물을 올렸다던 육향 강한 소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 곳이라거나 이름은 오돌이지만 가브리살 같은 특수부위로 승부수를 띄워 수요미식회와 같은 매스컴 유명세를 치른 곳, 노포 감성을 자극하는 외관으로 사진으로만 수차례 접하고 있는 오래된 보쌈집까지. 대부분 가보지 않은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는 곳이고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환상적인 장소로 잔상은 남아있다. 낮에는 비교적 한산해 보이다가 서울에서 가장 도시 외관을 해치는 고가 아래로 고개 숙여 다니다 보면 동네만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들이 하나둘 실내를 채우거나 줄을 선다. 골목을 벗어나 역 주변으로는 가볍게 한잔할 수 있는 이자카야와 낯익은 이름의 치킨집 같은 일명 동네 호프가 눈에 들어온다. 




기억의 파노라마를 정리해 두고 무작정 따라나선 길에 수줍게 ‘가보고 싶은 장소’로 저장되어 있는 당산으로 향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체감 거리는 줄어들었다. 어느 날엔 함께 차를 탔었는데 대중교통은 오랜만이었다. 급행을 고집한다거나 정해진 칸에 타 효율적인 동선을 도모한다는 공통분모 같은 이야기와 기승을 부리는 중이지만 제법 버틸만한 추위가 아직 한풀 꺾이기 전이었기 때문에 야외 웨이팅의 낭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짜릿한 예고가 오가며 황금빛 노선은 최소한의 역만에 멈추며 신속히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칼같이 뛰쳐나오지 못한 퇴근시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은 적당히 붐볐고 적어도 발 디딜 틈 정도는 있었다. 현기증이 나기 전이었지만 기다리던 그와의 시간이 임박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장담하던 대로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사람들은 발은 동동 구르며 넓지만 좁게 모이도록 준비된 동선의 입구에 그대로 몸을 담고 서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주저 없이 빨려 들어가 맨 뒤에 섰다. 실내는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하고 있었음에도 계속되는 수요를 감내하고 있는 분위기로 보였다. 인원을 컨트롤하는 대장님 같아 보이는 이모는 그런 와중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느긋하게 실내외 상황 전반을 관장하고 있었고 그와도 친분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에 오셨네’ 하는 무심한 너스레는 내적 친밀감이 두텁게 묻어있었다. 누군지 기억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쌓아 올려 두었던 대화가 적지 않은 듯 보였다. 돌아가는 테이블의 숫자가 적지 않아서였는지 대기인원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기다리는 것마저 함께하는 미식 여정의 일부라는 생각에서였는지, 오랜만에 시작된 자리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인내심의 한계 같은 어려움도 전에 입장은 선언되었다




조용한 벽면 한쪽 구석 자리였다. 대화를 나누기엔 이만한 위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이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비슷한 음역대의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술을 참기 어려운 기름 구워지는 향기와 말로 다 할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인지 정신을 차리고 있던 사람들까지 말소리에 기복이 생기기 시작했다. 녹진하게 취해가는 시각에 제대로 안착했다. 대부분이 초벌 이상의 먹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태로 조리가 되어 나오는 형태다 보니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 역시 몸을 녹이는 것과 동시에 입안으로 들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기름진 메뉴를 한입에 털어 넣어 과열되는 동안 투명한 소주를 온몸으로 증발시키는데 여념 없고 신속 정확하게 음식의 진도를 나가는 모습이 호언할만한 호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 무렵, 곱이 가득 찬 한 점을 떨리는 손으로 들어 올려 고대하던 목적지에 도착해 내는 데 성공했다. 뜻밖의 여정이 근래를 포함해 누군가는 인생이라는 타이틀을 쓴다는 말을 들어 한껏 상승한 기대치에 수긍하는 한편 종목에서 가장 선명하고 뚜렷한 맛이 사방 곳곳으로 펼쳐졌다.




EDITOR

:HERMITAGE

BY_@BIG_BEOM

작가의 이전글 가지가지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