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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Mar 24. 2024

오므라이스 향수

망원동 카페 나하 



마지막으로 도쿄에 갔던 건 그해의 뜨거운 계절 8월이 막 시작되던 어느 날이었다. 나리타 공항에서 탄 고속버스가 첫 번째 목적지인 도쿄역을 지나 긴자역에 내리기도 전에 허기진 배를 붙잡고 검색해 알아 두었다가 먼저 선택한 첫 번째 식사는 긴자 키사유였다. 일명 긴자 맛집을 검색해 본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무수한 한국인들의 후기를 통해 알고 있을 만한 유명한 곳이었다. 한국인 맛집이라는 사실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젊은 층의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다는 말에 선택을 번복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그곳의 대표 격인 오므라이스라는 메뉴를 유난스럽게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어 큰 기대는 없었다. 


가보기도 전에 훔쳐온 도시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그건 아마도 밥이던 술이던 한 줄기의 피어오르는 담배였던 특정시간에 어떤 식사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만큼은 어느 여행이 그렇듯 쏟아지는 햇살아래로 아련하게 비추는고 있는 맛 좋은 후기에 이끌려 보다 새롭고 가볍게 시작하기에 알맞은 간단한 메뉴에 도전하기에 이른 것이다. 시간을 돌이켜보니 인천에서부터 비행기에 올라 여기까지 이동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늦장을 부린 것도 아닌데 점심시간이 애매해졌다. 덕분에 웨이팅 없이 약간의 대기만으로 악명 높은 기다림 없이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고 앉자마자 준비된 삿포로 맥주 한 잔과 뒤이어 나오는 오므라이스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의 재료로 남았다





도쿄 여행의 향수가 묻은 채로 망원동에 갔다. 마포구에서도 한강공원에 가장 맞닿아있는 망원동은 여전히 낯설다. 자주 찾던 홍대와 연남, 숨겨 두고 돌아보는 연희동과 비교한다면 얼핏 분위기는 익숙해 보이지만 정작 들어가 본 가게는 별로 없었다. 이제는 카페와 맛집이 골목마다 늘어서고 시장에는 남녀노소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어울리며 독특한 콘셉트의 술집들로 유명해진 핫한 동네지만 아직도 어느 골목 한 구석에는 한적함과 느리게 찾아오는 분주함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므라이스가 자리 잡은 여행의 향수가 없었다면 카페나하를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망원동 골목이 주는 여행하는 것 같이 낯선 거리가 흘리는 거리감도 그랬고 별다른 기억이 자리 잡고 있는 연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 앞에 막 도착했을 때 분위기는 조용한 사무실이나 올려다보면 찾아보기 어려운 작은 피아노 학원 같기도 했다. 냉혹한 화강암이 온도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식어 있어 보이는 조용한 입구에 들어선 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위에 카페처럼 보이는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는 것이 보였다. 건물 1층에는 그림과 캐릭터 굿즈를 판매하는 작아 보이지만 안으로 꽤 깊은 소품샵이 있고 돌아 들어간 입구에 계단을 올라 2층 문을 열면 익숙하게 짙은 나무 원색의 클래식한 인테리어와 친절한 직원들이 먼저 건네는 인사가 들린다. 다음은 아기자기한 메뉴판이 눈에 들어온다.



한동안이었지만 유행처럼 지나간 가츠산도의 열풍이 불었음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묵직한 사이드 메뉴로 준비되어 있고 오므라이스 말고도 궁금한 이름의 메뉴들이 많았다. 깔끔하고 완성도 있어 보이는 메뉴들이 반가웠다. 지금껏 오므라이스를 먹으면서 '정말 맛있다'라고 생각해 본 일이 별로 없다. 아무것도 없는 밥은 허전하기만 하고 그렇다고 밥만으로 자극적이긴 싫어서 오롯이 쌀로 지은 괜찮은 밥이 먹고 싶은 그런 날에 고르는 메뉴였기 때문이었는지 무덤덤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땐 제법 괜찮을 만큼 알려진 이름의 프랜차이즈의 오므라이스 가게에서 토핑의 종류별로 여러 차례 시도를 했었지만 이름 그대로의 매력을 찾기란 어려웠다. 굳이 말하자면 토핑을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고, 매번 다른 걸 고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고 싶다. 



나하의 오므라이스는 분명하게 사진보다 맛있다. 몽글하면서도 탱탱해 보이는 구름 같은 오믈렛이 반으로 잘리면 데미그라스 소스로 덮여있던 접시는 다시 노랗게 물든다. 단단하게 쌓아둔 밥 위로 비스듬히 얹은 충분한 두께의 카츠는 선홍빛이 적당히 도는 익힘 정도에 껍질에서 소리가 날 만큼 바삭하게 튀겨졌음에도 기름지게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포만감을 극복하고서라도 세분화된 즐거움을 이어나가고 싶지만 아쉬운 대로 메뉴는 하나만 더 골라야 한다. 야끼소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더할 나위 없어 보이도록 붙은 명란을 보고 포기할 수는 없다.


서울 안의 도쿄, 망원동의 나하는 참 재밌는 곳이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자전거를 타고 버스나 지하철만으로 언제든지 서울에서도 충분히 복합적인 도시 긴자를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오래전이지만 신메뉴 공지로 알게 된 나폴리탄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했었다. 토마토파스타'보다 케첩의 맛과 향으로 이불 덮듯이 덮어 있는 스파게티가 더 잘 어울리는 다른 도시의 한복판 긴자 아닌 망원의 카페나하가고 싶다. 



EDITOR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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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_@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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