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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Mar 21. 2024

태국 뭐 (먹어도) 돼?

여의도 란나타이



란나타이: 미얀마의 침략으로 지금은 멸망한 태국의 고대 국가 이름 


그땐 여의도에서 혼밥 할 일이 많았다. 매일 더 맛있는 한 번의 식사를 위해 어딘가에 있을 정답을 맞히기보다 부담 없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곳도 심심치 않게 필요했다. 언제든 고민 없이 갈 수 있도록 리스트업 한다. 부득이하지만 보기가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다. 세상에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무엇이든 마음이 편해야 동하고, 움직이게 만들고, 그렇게 자주 가볼 수 있다. 혼자든 여럿이든 어렵지 않게 결정까지 이어지게 만들려면 일상의 과정에 부담스럽지 않게 스며들어 종종, 돌이켜보면 자주가 되는 것들이 있다.


탄수화물의 대표인 흰쌀밥을 공깃밥이라는 이름으로 끼니를 챙기는 건 어쩐지 입에 잘 맞지 않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보통 입맛이 없다. 무언가에 몰두해 있다거나 좇기는 이유로 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유난히 입이 쓸 때면 그 저항은 강해진다. 뭔가 필요에 의해 먹는다기보다는 계속 더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여행지로 태국에 다녀온 후 그 나라의 음식에 진심이 되었다. 쉽게 만족하기 어려워졌고 보다 비슷한 느낌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한동안이었다. 분위기만이 아닌 '진짜'에 가까운 곳을 찾겠다고 보물 찾기를 했던 날들이. 아무래도 현지와 비슷할 순 없고 엇비슷하기라도 하면 옅은 결을 찾아 조금씩 비슷한 지점을 찾는다. 보통은 일어나지 않는 아주 성공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기에 이른다. 


예를 들면 매트하게 삶아진 면에 걸맞은 녹진하다 해야 좋을 걸쭉한 맛이 제대로 묻어난다거나 간이 한국인에 입맛에는 과하다고 느껴질 만큼 현지의 향을 진하게 표현했다거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현지 노하우인 ''이 마지막 맛에서 수줍게 고개를 들어낸다거나 하는 것이다. 나라만의 특색을 결 다른 느낌으로 전달될 만큼 표현할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간혹 운이 좋은 선택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미리 그렇게 준비되어 나오는 세심한 곳을 발견할 때면 정답을 맞혔다는 쾌감 비슷한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너무 아름답게 꾸며진 곳에 가면 덜컥 겁부터 난다. 눈과 코로 그리고 입으로 먹는 게 아닌 시간을 즐기게만 될까 봐 그렇다. 


매번 새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충분히 고른다. 가끔은 지나칠 만큼 숙고한다. 끼니를 챙기지 않으면서 그래도 밥심을 만들어내는 쌀을 먹어야 한다는 한국적인 편견보다 다채로운 선택지 안에서 보다 만족할 만한 메뉴를 구상한다. 아침은 보통 거르고 지금은 점심, 인내심이 가능하다면 저녁까지 기다린다. 천천히 어떤 메뉴를 구성할지 미리 준비하는 편이다. 입맛이 없음을 한 번에 끼니에 진심으로 진지한 고민 끝에 발견한 곳들에서는 특징이 묻어난다. 



여의도는 그런 측면으로 접근할 때 그다지 유리한 위치는 아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찾아오는 직장인들의 갈증을 짧은 순간동안 무심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한다. 이미 몸집이 하늘처럼 높이 커져버린 건물세에 가성비라는 단어가 서로 지켜지기란 어렵다. 척박한 환경에서 오히려 그럴싸해 보이는 경우는 더러 있겠지만 흉내를 내고자 하는 가면의 껍데기는 두터워진다. 진심을 찾기란 어려진다. 그저 그런 음식들을 억지로라도 집어넣어야 할 때면 섭섭한 검색의 결과라는 참혹한 사실을 불만 없이 받아들이기란 애석하다. 


란나타이는 여의도의 척박한 환경에서 여러 측면에서 높은 만족을 줄만한 장점을 두루 갖췄다. 타협 가능한 정도의 가격과 보통 이상의 현지 실력을 음식에 표현해 낸다. 줄다리기의 능선이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았는데 매력을 가져오면서도 거부감이 없을 만큼만을 담백하게 반영했다. 그래서 마니아들을 기준으로 뛰어나기보다 중도에서는 한참 벗어났고 복제한 듯 찍어낸 맛과 다른 이상적인 수준을 보여준다. 회전율이 좋은 것도, 평일 점심에 네 명 이상의 단체는 예약 없이는 매장 안으로 들어설 수 없는 이유도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증거다. 빠르게 돌아가는 여의도의 점심시간에 식사 장소의 선택권 문제에는 경쟁력이 필요하고 일상의 생존으로 이어진다. 한 시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그럼에도 가장 만족스러운 곳을 찾지 못하면 본격적으로 오후의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힘이 빠져 섭섭할 일만 남는다. 



태국 음식에 깊이 있는 애정을 갖게 되면서 기대치만 높아진다. 서울 안에서 가장 현지스럽다는 방방곡곡의 저마다의 태국을 방문해 오면서도 한결같이 드는 생각으로는 재해석을 경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정도다. 그치는 정도에 멈출 수 없어 찾아 나섰던 란나타이는 잔잔한 감동과 타협하지 않아 배신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방문하는 동안 호감도는 꾸준히 상승했다. 낯선 이방의 이름을 가진 다른 메뉴에 도전해 볼 만한 충분한 호기심을 갖게 만들었고 기본이라고 부르기로 잘 알려진 메뉴는 여러 번 혼밥의 점심이나 여럿과 함께하는 저녁 메뉴로 등재되며 이미 수차례 검증되었다. 


경쟁률이 치열한 내일의 점심을 오늘 저녁나절에 미리 예약했다. 아마도 내일은 고민 없는 점심을 맞이할 수 있겠다. 누군가 여의도에서 간단하면서 만족스러울만한 이색적인 점심을 고민한다면 누구에게나 부담 없어 한 번쯤 들러 봐도 좋을 태국으로 소개한다. 고수를 넣지 않아도 속도감 있게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게 만드는 작은 동남아를 빌딩 숲 여의도에서 즐길 수 있다. 처음이라면 팟타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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