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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Mar 19. 2024

버거 한잔 커피 한입

염창동 자이온 등촌점





일요일 아침, 눈을 뜨면 부서질 듯 부서지지 않는 단단하게 묵힌 피로와 함께 눈을 뜬다. 이른 시각, 너무 차갑지 않아 적당히 향이 나면서 코 끝을 간지럽히는 시원한 커피가 떠오른다. 의무적으로 카페인을 섭취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만큼은 텁텁해진 일상이 조금 덜 헛헛해질 수 있도록 가벼운 기름칠로 시작하고 싶은 것뿐이다. 곧이어 건강하게 기름진 본능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난다. 건강한 자극이랄까 태동하는 몸부림에는 적당한 윤활유가 필요하다. 지난밤 꺼져버린 숙취로, 한 주간에 쏟아부은 모든 에너지로 인해 방전되어 활동력에 저하가 생기고만 걸까. 아니면 아침을 거르는 일정한 태도가 휴일이면 유독 이른 시간에 눈이 떠지는 여러 사람들의 공통된 저주에 어김없이 된통 당하고야 만 것일까. 커피가 필요하다. 두뇌 풀가동을 위해서, 아니면 쏟아지듯 스쳐 지나가는 짧은 하루를 조금은 더 선명하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거기에 부담 없이 든든하게 집어 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아 맞다. 일요일은 자이온의 휴일이다'. 지금껏 돌리던 행복 회로가 조금 부끄럽다. 등촌점이자 염창동에 있는 본점 존재를 알게 된 지도 3년 차가 되어가고 고향인 서울 집 근처에 두 번째 장소가 생긴 지도 얼마 큼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휴일 아침이면 이곳이 떠올라 자세권에 있으면서도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날도 그랬다. 자이온의 버거와 커피가 일요일 아침이라 유난스럽게 떠오른다. 에스프레소와 버거, 콜라나 사이다가 아닌, 맥주도 아닌, 유명 브랜드의 패스트푸드점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흔치 않은 조합일 수 있고 프리미엄 수제버거 가게를 떠올린다고 해도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의 흐름일지 모르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어디가 특별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선택지에서의 커피와 커피바가 있는 건 분명하게 다르다. 



음료에 얼음을 타서 먹는 게 일반적이라면 그렇지만 어찌 됐건 버거엔 셰이크나 탄산음료보다는 커피가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은 늘 해왔다. 묘하지만 모두 뜨겁거나 차가운 ‘기름’이기 때문이다. 비록 언제나 고를 순 없었지만, 굵직한 이름이 적힌 무슨 카페엔 사무실에서 내려놓은 원두커피나 편의점 냉장고에 진열되어 있는 커피 음료와 닮아 있어 버거와 함께하기에 손이 가기 어려웠고 울진 않았지만 겨자 먹는 심정으로 골라져 있는 가루로 만든 탄산음료는 어딘가 기운 나지 않았다. 대체로 청량함에 몸을 기대 왔지만 우연히 겪어 본 제대로 된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휴일 뒤에 손에 들린 건강하게 기름진 고열량의 유혹이 스며드는 맛이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연기를 뿜어대기를 좋아하는 곱창집이나 노포 감성으로 점철된 고깃집이 즐비하던 골목을 거닐다 우연히 안쪽으로 난 깊은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산책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연고나 이유 같은 것 없이 지나던 길목이었다. 머릿속 지도를 켜고 걷는 만큼 루트가 닮긴 회로는 차근히 저장되어 갔다. 청년 주택과 구옥들이 파도와 모래사장처럼 부딪히듯 공존하고 있었고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그만큼 오래된 동네라는 사실이 첫눈에 들어왔고 아늑한 정취가 느껴졌다. 어느 날에는 자주 들러보지 않는 브런치 카페를 발견하기도 했으며 언덕과 평지를 오가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골목길들이 퍽 오래 살았던 비탈진 고개가 두 개 이상 겹쳐 있는 어린 시절 동네의 언저리와 닮아 있다는 정취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가 그리운 건 아니지만 그때 골목길을 걷던 자그맣던 모습은 종종 그립다는 듯이 떠올랐다



구옥을 모던 하우스로, 가장 한국적인 주택가에 오래되었거나 새로운 건물에 둘러싸여 어딘가 모르게 홀로 가장 이상적인 방향을 향해 솟아 있는 듯한 모습이 대번에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거닐던 오래전 그땐 언젠가는 이곳에 반드시 들어가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프레시한 기운까지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지만 가장 신선한 커피와 자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자극으로 담백하게 다가오는 양질의 콜라보가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 도망치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기에 적합한 장소로 만들었다. 패티와 신선한 재료를 감싸 안은 번은 버거를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마지막 한 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고 그건 어쩌면 기름진 커피와 세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어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알코올 홀릭들에게는 갖추지 않은 구색마저도 수긍하게 하는 흔치 않은 장소다. 일요일이 아닌 휴일인 토요일 아침, 눈을 뜨면 모자를 눌러쓰고 자이온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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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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