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MZ세대에게 전화공포증을 이겨내는 법을 알려주는 60만원짜리 과외가 생겼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설마 60만원을 주고 과외까지 받을까 싶긴 한데, 저도 사회생활 시작할 때는 전화공포증이 있었던지라 아예 남 얘기 같지는 않네요.
사실 대학생 때까지야 친구와의 연락은 카톡으로 하면 되고, 가끔 가족과 통화하는 일 빼면 전화할 일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공무원이 되면 일단 자기 책상과 유선전화가 생기게 되죠. 어떤 업무를 하든 전화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사실 모든 종류의 공포증을 극복하는 법은 하나입니다. 많이 해 보면 됩니다. 심리학 용어로 '노출'이라고 하죠. 하지만 시작하는 게 어려운 건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죠.
처음 공무원으로서 첫발을 뗀 시보 공무원이었을 때, 전화공포증을 극복하게 해 준 계기가 있습니다.
저는 처음 공무원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 부처에서 하는 행사 TF에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규 공무원들은 다 그 TF에 투입이 되었었죠.
TF 근무를 시작하고 며칠 뒤, 팀장님께서 신규 공무원들 대여섯 명을 부르시더니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명단을 나눠 주셨습니다. 한 사람당 30명 정도 됐던 것 같아요.
그 명단은 저희 행사 홍보를 도와주셨던 국민 자원봉사단 분들이었습니다. 저희 행사 홍보를 자발적으로 도와주실 만큼 저희 부처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니, 일일이 전화드려서 행사 참석을 요청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공직 생활 시작하고 처음 전화를 해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졌죠. 전화기를 들고 번호까지 눌렀는데,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다시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해서 행사 참석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라니...'
저는 이대로는 못 할 것 같아,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바로 제가 할 말을 그대로 스크립트를 써서, 보고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글 프로그램을 켜서 스크립트를 쳤죠.
'안녕하세요. OO부 OOO입니다. OO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석해 주셨었죠? 다름이 아니라 OO행사가 O월 O일 개최를 앞두고 있어, 국민 자원봉사자님께서 참석해 주셨으면 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부담은 갖지 마시고, 시간이 되신다면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네요. '보고 읽기'는 효과적이었습니다! 일단 전화기를 집어들고 말을 시작할 수 있게 되니 통화가 끝날 때까지 무리 없이 대화를 하다가 전화를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민 자원봉사자님들께서 대부분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전화해 줘서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요.)
그렇게 하루에 30통씩 며칠 전화를 하다 보니, 실제로 원 부서에 복귀해서도 전화하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공직 생활을 시작하는 초보 공무원 중 저와 비슷하게 전화공포증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 '스크립트 보고 읽기'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첫 문장은 자기소개가 되겠죠 : 안녕하세요. OO부 OO과 OOO사무관/주무관입니다.
다음 문장은 전화한 목적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 OO건 관련하여, OO(상대방)님의 협조가 필요하여 전화드렸습니다/OO를 알려드리러 전화드렸습니다/OO를 요청드려야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대답을 하겠죠. 처음 근무를 시작했다면 상대방이 모르는 내용을 말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제가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데, OO가 무엇인가요?'하고 물어보시면 대부분은 잘 알려주실 것입니다. 초보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새 보직을 받게 되면 업무 카운터파트에게 관련내용을 묻는 경우는 많습니다. 'OO도 모른다고 무시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대화를 마무리하고 끊을 때는 '네. 감사합니다.' 하고 끊는 게 무난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말할 내용을 적어놓지 않고도 전화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꿀팁을 드릴게요.
자주 통화하는 주요 카운터파트/같은 부서의 동료/직속 상사 분들의 전화를 받을 때는 평소처럼 '안녕하세요 OOO입니다'하고 받기보다는
'네, 과장님 OO입니다. 안녕하세요.'하고 상대방을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게 좋습니다.
다른 동료 분들이 그렇게 하시길래, 저도 신입 시절 따라해 본 것이었는데요. 일단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때 '네 OO님. 안녕하세요.' 처럼 제가 누군지 안다는 인상을 주면 훨씬 친근감이 생기고, 업무도 더 원활하게 되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공무원 일의 반은 전화하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전화로 의견을 조율하고, 협조를 요청하거나 요청받고, 대응을 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기죠.
전화공포증이 있는 초보 공무원 분들, 처음에는 보고 읽어도 좋으니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히다 보면 금방 잘 하게 되실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