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해진 낙엽이 길바닥에 내려앉기 시작하는 이맘때쯤이면 유독 사람 냄새가 고프다. 어디에 꼭꼭 숨어 있을까. 사람 냄새가 점점 귀해지고 있다. 찾기 힘든 것인지, 정말 사라지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사람 냄새가 그리울 때면 나는 재작년 학교 앞 표구사에서 만난 사장님을 떠올려 본다.
그 해 겨울, 나는 가족에 경사가 된 어떤 종이 두 장을 액자에 맞추기 위해 표구사를 찾았다. 분명 지도상에선 신촌 오거리의 대로변에 위치한 것으로 뜨는 '삼성 표구사'는 아무리 찾아도 지도상 위치에 없었다. 결국 나는 지도 어플리케이션에 등록된 번호로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 예상 외로 사장님은 금방 전화를 받았고, 내가 있는 위치를 설명하니 “거기가 아닌데 어쩌나”, 하며 올해 이전했다는 가게의 새 자리를 알려주었다. 장사가 잘 되지 않는데 임대료가 비싸 이사를 했다는 것이었다. 다시 가게를 찾아 가던 중 나는 길을 헤매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은 친절하게 가게 위치를 설명해주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표구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이 지긋하신 사장님은 손뼉을 치며 나를 반겨주셨다. 추운 날씨에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가며 가게에 찾아와주어 고맙다는 것이었다.
나는 들고 간 종이 두 장을 건네며 방 안 잘 보이는 곳에걸어놓을 수 있게 단단한 액자에 담아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싱글벙글한 미소로 슥삭슥삭 액자를 다듬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액자를 재단하는 동안 나는 가게를 둘러봤다. 멋들어진 서예나 전통회화 작품들이 윤이 나는 유리 액자 안에 담겨 있었다. 표구를 거쳐 비로소 박제된 예술을 보는 듯했다. 작품을 감싼 저 영롱한 틀이 아니었다면 빛이 바랐을. 주인이 누구 것인지 골라낼 수나 있을지 모를 수많은 표구들을 보며, 이 가게는 '영원'을 파는 가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사장님은 액자가 모두 완성됐다며 나를 부르셨다.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어요.” 각 종이를 담은 완성된 액자 둘을 건네며 내게 말씀하셨다. 사장님은 표구일이 즐겁다고 하셨다. “번듯한 액자 집에 걸어놓고 기뻐할 생각 하면 얼마나 좋아.” 사장님은 오는 길에 고생이 많았다며 액자 하나 당 이천 원씩 깎아주겠다고 하셨다. 원래 액자 하나에 만 원이 되지 않았다. 손사래치며 괜찮다고 하자 사장님은 연신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다'며 도합 사천 원을 깎아주셨다. 사장님은 겨울 날씨가 추운데 손이 조금이라도 덜 시려워야 한다며 두 액자를 노끈으로 묶어 손잡이를 만들어주셨다. 이러면 편히 들고 갈 수 있을 거라고 또 싱긋이 웃으셨다.
그 해 겨울 표구사에서의 기억은 참 귀한 것이었다. 그토록 고운 마음으로 누군가의 삶을 액자에 재단해주던 사장님은 더없이 빛나보였다. 손님에게 영원을 선물하는 그 가게, 아직 그 자리에 있을지 가끔 생각한다. 사람 냄새로 감겨 있던 삼성 표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