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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Sep 03. 2024

삼국지 속 최고 미남, 손책의 삶과 죽음

경계성 성격 장애가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영웅의 삶?

삼국지 영걸전은 유비와 관우, 장비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법 성공을 거뒀는지, KOEI는 이어 제갈량을 주인공으로 한 공명전과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조조전을 출시합니다.


삼국지 영걸전


영걸전 시리즈는 아니지만, 대만의 게임 회사 Acer는 조운을 주인공으로 한 삼국지 조자룡전도 나오죠.


그렇습니다. 전부 촉이나 위의 인물이 중심입니다. 오나라가 주인공인 메이저 게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쩔 수 없지요. 당장 주위에 가장 좋아하는 삼국지 인물이 누구냐 물어봅시다. 신까지 된 관우가 아니면 신비로운 천재 제갈량,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조운, 근현대 들어 각광받기 시작한 조조 등의 이름은 자주 보입니다. 간혹 최후의 승자 사마의나, 빛나는 무예의 여포도 순위에 자주 오르고요.



반면 오나라 인물은 대중적인 인기를 구사하지는 못했습니다.


오나라 자체가 약간은 애매한 위치긴 합니다. 명실상부 주인공인 촉과, 최종 보스 위 사이에 딱 끼어버린. 심지어 중간에 바로 그 촉과 관우를 물 먹인 전적도 있으니, 사랑받기는 글렀지요.


그래도 그중에서 그나마 인기가 많은 인물도 있습니다. 바로 손책(오 장사환왕 손책(吳 長沙桓王 孫策), 175년 ~ 200년 음력 4월)과 주유입니다.


오나라 최고의 미남들인 손책(좌)과 주유(우). 요절한 사실을 반영하여 상당히 젊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럴 수밖에요. 사서가 인증한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능력, 거기에 너무나도 이른 죽음까지,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혹은 안타까움을 자아낼 조합이잖아요?


손권 치세의 소극적인 확장 정책이나, 말년의 막장 행보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오(와 오의 팬층)에는 제법 큰 불운이었...


을까요?



불운은 ‘운수가 좋지 않음’을 뜻합니다. 운수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미 정하여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과 기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손책의 죽음은 그런 운명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운이 나빠 죽은 것이 아니거든요.


[정사] “손책이 이제 막 강동을 아우르며 죽인 자들은 모두 영걸로서 능히 남으로 하여금 사력을 다하게 만드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손책이 경박하여 방비하지 않으니 백만의 무리가 있단 한들 들판 한가운데를 홀로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만약 자객이 매복해 있다가 공격하면 한 명을 대적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내가 보기로는 그는 필시 필부의 손에 죽을 것입니다.” <곽가전>


조조가 원소와 일전을 치르고 있을 때입니다. 손책의 허도 습격 계획이 알려지자 조조의 진영은 크게 동요합니다. 그때 곽가는 자신 있게 손책의 죽음을 예언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영토를 확장하며 영걸을 많이 죽였다, 그리고 경박해서 방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영걸을 많이 죽이기로는 곽가의 상사인 조조도 뒤지지 않지요. 영걸만 죽였겠어요? 여기저기서 사람을 썰고 다녔죠. 그런데도 이런 경고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본인도 천수를 누렸고요.


하지만 손책은 곽가의 예언대로, 암살을 당해 요절합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죽을 만해 죽었다, 즉 죽음을 자초했다ㅡ 가 되겠습니다.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미움도 많이 사는 성격이었는데도, 너무나 자신만만해 조심성을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사서 속에 묘사된 손책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한가지 의심되는 정신건강의학과적 질환이 있습니다.

바로 [경계성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입니다.



경계성 성격장애는 자아상, 대인관계 및 정서가 불안정하며 충동적인 특징을 갖는 성격장애 입니다. 이전 ‘관우편’에 등장한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함께 B군에 속하는 성격장애 이기도 합니다.

경계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스스로나 타인에 대한 평가가 일관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말그대로 경계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죠.

이 질환을 지닌 환자는 대체적으로 자존감(self-esteem)이 낮으며(1), 정서 상태가 정상에서부터 우울, 분노를 자주 오가며 충동적이기 때문에 자해나 자살 행위도 자주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성격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1% 정도로, 의존성 인격장애(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 C군에 속함)와 함께 성격장애 중 임상에서 가장 빈도가 높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임상에서는 여성 환자가 더 많다고 알려졌으나, 최근의 역학조사에서는 성별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여성 환자가 좀 더 치료 기관을 잦게 방문하기에 여성 비율이 높다고 알려졌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진단기준(DSM-IV-TR)은 다음과 같습니다(초기 성인기부터 진단 가능하며 대개 40세 이전에 진단됩니다).


대인관계, 자아상 및 정동의 불안정성과 현저한 충동성의 광범위한 형태로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며 여러 상황에서 나타나고, 다음 중 다섯 가지(또는 그 이상) 항목을 충족시킬 경우에 경계성 성격장애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2,3).


1) 실제적 혹은 상상 속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함. [주: 5번 기준에 있는 자살이나 자해행위는 포함하지 않음.]

2) 과대이상화와 과소평가의 극단 사이를 반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정하고 격렬한 대인관계의 양상.

3) 주체성 장애: 자기 이미지 또는 자신에 대한 느낌의 현저하고 지속적인 불안정성.

4) 자신을 손상할 가능성이 있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경우에서의 충동성(예: 소비, 물질남용, 좀도둑질, 부주의한 운전, 과식 등). [주: 5번 기준에 있는 자살이나 자해행위는 포함하지 않음.]

5) 반복적 자살행동, 제스처, 위협 혹은 자해행동.

6) 현저한 기분의 반응성으로 인한 정동의 불안정(예: 일반적으로 수 시간 동안 지속되며 단지 드물게 수일간 지속되기도 하는 격렬한 삽화적 불쾌감, 과민성 불안)

7) 만성적인 공허감.

8) 부적절하게 심하게 화를 내거나 화를 조절하지 못함(예: 자주 울화통을 터뜨리거나 늘 화를 내거나, 자주 신체적 싸움을 함).

9) 일시적이고 스트레스와 연관된 피해적 사고 혹은 심한 해리 증상




앞서 관우편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사서의 내용만을 바탕으로, 그리고 직접적인 전문가와의 상담 진료 없이 성격 장애를 완벽하게 진단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위의 진단 기준을 활용하여 사서에 언급되는 손책의 행위를 분석하고, 진단을 추측해볼 수는 있겠습니다. 이제 사서 속에 등장하는 손책의 모습을 의사의 입장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곽가에게 경박하는 표현과 함께 신랄하게 까이는 인물이긴 하지만, 손책이 상당히 뛰어난 인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했던 모양입니다. 아니라면 그 젊은 나이에 영걸이라는 평을 얻고 손오라는 한 국가의 기틀을 닦지 못했겠지요.



원술부터가 그랬습니다. [연의]에서의 기술과는 달리, 원술은 손책을 무척이나 총애했어요.


손책의 아버지이자 훗날 동오의 추존 황제가 되는 손견(孫堅, 156년? ~ 192년?)은 원술의 부하였습니다. [연의]에서는 독립 군벌로 격상되었지만, 실제로는 군사적 재능이 부족했던 원술을 대신해 영토를 늘리던 장수 중 하나였어요. 최후도 원술의 명에 따라 유표를 공격했다가 난전 중에 전사한 것이었죠.


열여섯의 나이에 손견을 따라 종군했던 손책은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지냅니다. 이어 열아홉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원술의 수하가 됩니다.


원술은 손책의 남다름을 알아보았던 모양입니다. 이 원술에게 손랑 같은 자식이 있다면, 죽어서도 무슨 한이 있겠는가!”라고 말한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  1) 실제적 혹은 상상 속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함. [주: 5번 기준에 있는 자살이나 자해행위는 포함하지 않음.]

: 원술이라는 인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기에 위와 같은 평가를 받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손견이 낙양의 우물애서 전국옥새를 습득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한 번은 손책의 병사 하나가 죄를 짓고는 원술의 진영으로 도망쳐 숨었답니다. 손책은 사람을 시켜 병사를 끌어내 참수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원술에게 사과했고요. 허락도 없이 주군의 진영에서 병사를 끌어내서 참수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원술은 “반란을 일으킨 병사가 잘못했는데 왜 사과하냐”며 손책의 편을 들어요.


여기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손책은 태수직을 간절하게 원했어요. 아마 태수에게 징병권과 군사권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태수는 임지에서 군대를 편성해, 밖으로 출정할 수 있었거든요.


반면 원술은 손책을 멀리 보내려 하지 않습니다. 원술이 손책을 신뢰하지 않아서, 혹은 질투해서 그랬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연의]에서도 그런 묘사가 있고요.


하지만 그 반대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나 귀애하던 손책을 끼고 살려 했다고요.


조조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협천자에 성공한 후, 종제 조인을 광양태수로 삼아놓고 의랑(천자의 고문)으로서 허도에 남겨둔 것이지요. 광양태수로 삼은 것도 그만한 지위를 주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광양은 당시 공손 씨 혹은 원 씨의 세력권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광양을 통치할 수는 없었어요.


물론 원술이 잘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쨌든 손책을 거듭 실망시켰으니까요. 구강태수로 삼으려다가 마음을 바꾼 시점까지는 뭐, 그럴 수 있지요. 손책이 아직 제대로 된 공을 세우기 전이니까요. 문제는 다음입니다.


원술은 당시 여강태수 육강(육손의 외조부)에게 감정이 상한 상태였습니다. 군량을 청했는데 거부당했다는 이유였죠. 이에 손책에게 육강을 공격하라 명합니다. 육강을 무찌르면 여강태수로 삼겠다고요.


[정사]에 따르면 당시 손책도 육강에게 원한이 있었습니다. 일전에 육강을 만나러 갔는데, 육강이 만나주는 대신 주부(문서나 기록을 담당했던 관리. 그 유명한 ‘계륵’ 사건이 있었던 한중공방전 당시 양수의 직책)를 시켜 손책을 접대하게 했거든요.


만남을 청했는데 거절당했으니 기분이 나빴기는 했겠지요.


더군다나 과거, 손책의 아버지 손견이 육강의 조카를 구해준 적도 있으니 더더욱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원한이 있었다고 사서에 적힐 정도라니, 조금 과하지 않나 싶기는 합니다. 만남을 거절당하자 삼고초려를 해버린 유비와는 너무나 다르지요.


어떻게 되었든 손책은 이 원한을 풉니다. 육강을 쫓아내고 여강을 점령했거든요. 육강의 일족 백여 명중 절반은 기아에 시달려다 죽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 2) 과대이상화와 과소평가의 극단 사이를 반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정하고 격렬한 대인관계의 양: 원술의 명령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육강’을 쫓아내고 일족들이 기아에 시달리게 죽게 만들 만큼의 원한을 품었다는 점도 상당히 기이합니다. 단순히 잔혹하다거나 성격이 유별나다고 보기엔 극단적인 반응이죠.


하지만 원술은 약속을 어기고 다른 사람을 태수로 임명합니다. 손책이 화날 법도 합니다. 아마 이때쯤 독립을 결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1) 실제적 혹은 상상 속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함. [주: 5번 기준에 있는 자살이나 자해행위는 포함하지 않음.]

: 열심히 노력하는데 버림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다니… 여러모로 손책의 마음이 원술로부터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조정이 직접 임명했던 관리 유요가 원술의 세력권인 단양에서 손책의 친인척인 오경과 손분을 쫓아내자, 손책은 원술에게 참전을 청합니다. 원술도 이를 허락해 손책은 천여 명의 병사를 이끌게 되었어요. 그뿐 아닙니다. 따르기를 원했던 빈객이 수백 명이었답니다. 역양에 도착했을 때는 오륙천 명의 병사를 얻었다니, 엄청난 매력이 느껴집니다. 손책의 오랜 친구 주유도 이때 합류하지요.


[정사]에서는 이때쯤의 손책이 “용모와 얼굴이 빼어나고, 우스갯소리를 좋아하며, 성품이 활달하면서도 남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사람을 기용하는 데 뛰어났다”고 합니다.



재치있고 활발하며 잘생긴 청년 장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 청년 장수에게 백성들은 푹 빠져 있었지요.


“손책을 만난 선비와 백성 중 진심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손책을 위해 기꺼이 죽었다”는 [정사]의 기록을 보면 정말 어지간히 인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심지어 백성들이 앞을 다퉈 고기와 술을 바쳤다고도 합니다. 손책도 군이 약탈하지 않게끔 조심했고요.


그뿐 아닙니다. 싸움도 잘해, 태사자와의 싸움은 [정사]에도 나오는 몇 안 되는 일기토가 되었습니다. 태사자는 이때 손책에게 매료되어, 남은 평생을 동오의 장수로 살다 죽습니다. 군사적 재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 유요군을 어렵지 않게 격파했습니다.


이어 손책은 왕랑과 왕성을 격파합니다. 이때 왕랑은 명성이 있어 죽이지 않았답니다 (후환 1). 왕랑은 유랑 끝에 조조군에 임관합니다. 손녀 왕원희는 사마소의 아내가 되어 진의 초대 황제인 사마염을 낳고요. 손오를 멸망시킨 사람이 바로 이 사마염입니다.


왕랑과는 달리 왕성은 명성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손견과의 인연이 있어, 손책의 어머니 오 씨가 왕성과 일족의 주살을 말렸다고 합니다. 이미 왕성의 형제와 자식이 다 죽었다면서요.


여기서 손책은 독특한 선택을 합니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왕성은 살려주면서도, 왕성의 나머지 일족을 주살했어요 (후환 2). 왕성의 나이가 이미 많으니 복수하기는 어려웠겠습니다만, 그래도 후환을 남기는 방식의 일처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그 '조조' 조차(...) 자신을 거하게 배신했던 진궁의 가족만은 살려주었는데 말이죠.  


       

게임에 등장하는 엄백호의 능력치(KOEI 삼국지 11: 엄백호. 출처 – KOEI 삼국지 11).



회계를 평정한 손책은 엄백호를 공격하러 떠납니다. KOEI 삼국지에서 고난이도 플레이를 할 때 선택하게 되는 군주 중 하나인 바로 그 엄백호입니다. [연의]에서는 ‘동오의 덕왕’이라는 거창한 호칭을 자칭한 데 반해, 너무나 한심한 모습만 보여주다가 손책에게 패배하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실 [정사]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전개 과정은 [연의]와 다릅니다.


엄백호는 아우 엄여를 보내 화친을 청했는데요, 손책 역시 이에 응해 단독 대면이 성사됩니다. 만나게 되었을 때, 손책은 뜬금없이 날이 시퍼런 칼을 빼 들고 책상을 부숩니다. 이에 엄여는 당황해서 몸을 움찔거립니다.


그러자 손책은 엄여가 무능하다고 판단, 손에 쥔 창을 엄여에게 날립니다. 엄여는 선 채로 죽었어요.


아무리 고대라 한들, 사자를 죽이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심지어 화친을 도모하기 위해 만났던 사자인데요. 게다가 엄여는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무능하다는 이유로 죽인다는 것이 올바른 사고방식일까요?

 -> 2) 과대이상화와 과소평가의 극단 사이를 반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정하고 격렬한 대인관계의 양상: 갑자기 사람을 놀래켜놓고 나서 상대방이 움찔거린다고 ‘무능’하다는 평가를 내린다니… 제가 엄여여도 움찔거리다 손책에게 창을 맞았을 것 같습니다.



용맹했던 아우 엄여가 죽은 것을 알게 된 엄백호는 두려움에 떨다가 격파당하고는 허소에게로 도망갑니다. 이때 손책은 [옛 벗인 엄백호를 돕는] 허소가 의로운 사람이라며 공격하지 않기로 합니다 (후환 3).

 -> 이 부분도 뜬금없이 허소는 의로운 사람이라 칭찬하고 공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이 일관되기 보다는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원술이 황제를 참칭합니다. 손책은 원술에게 절연장을 보내고, 조조의 반원술 연합에 들어갑니다.


이때 같은 연합의 진우와 엄백호가 손책을 공격할 계획을 세웁니다. 손책은 이를 알아차리고는 진우를 대파하고, 항복한 엄백호를 죽입니다.


사실 엄백호는 도교 선보인 [진령위업도]에 따르면 신선으로 섬겨진 인물입니다. 그만큼 인망이 깊었다는 뜻입니다. 그랬던 엄백호 형제를 죽이다니, 깡도 좋습니다(후환 4).


한편 진우는 원소에게로 도망갔습니다. 이때 진우의 조카인 진등이 복수를 맹세합니다 (후환 5).




그 후 손책은 여강태수 유훈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이때 유훈은 군량이 부족했는데요, 손책은 유훈과 거짓으로 동맹을 맺은 후 상료에서 군량을 얻을 수 있다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유훈은 병사를 이끌고 상료로 갔는데...


이는 함정이었습니다! 손책은 주유와 함께 빠르게 비어 있던 유훈의 본거지 환성을 공략하고, 유훈에게 의탁했던 원술의 일가족을 사로잡습니다.


원술의 아들 원요는 낭중령이 되었고요, 원술의 딸은 손권의 후궁이 되어 많은 총애를 받았습니다.

원술에게 원망이 있어 배신했던 것 치고, 그 가족은 제법 잘 대해주었던 모양입니다.


속임수를 쓰기는 했지만, 난세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강동이교’ 라고 불린 미녀 자매, 대교(大喬)와 소교(小喬)(4). 그림 출처-위키피디아.



손책과 주유는 여기서 바로 그 유명한 미녀 자매, 교공의 두 딸인 대교와 소교를 포로로 잡았다가 아내로 삼습니다. 약탈혼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당사자는 물론, 당사자의 아버지에게 허락도 받지 않은 주제 손책은 주유에게 태연하게 장난을 치며 말합니다.


“교공은 비록 이제 두 딸이 떠돌게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을 사위로 삼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손책 인성… 문제 있어?!?)


떠돌게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를 떠나 멀리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교공 입장에서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호전적인 외지인에게 두 딸을 뺏긴 셈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같은 사위를 얻었으니 기쁘겠다’며 우스갯소리를 던진 것이지요(후환 6).


물론 손책이나 주유나 알아주는 미남이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리 절세미남이라고 납치-약탈혼마저 용서할 수는 없잖아요?



배우 주윤발. 주유의 후손으로도 유명합니다.


*** 후손인 주윤발처럼 주유 역시 상당한 미남이었다고 합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어 악사들이 박자를 틀리면 나무라는 대신 웃으며 쳐다보았다고 하는데요, 여성 악사들은 주유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일부러 틀리게 연주했다는 속설이 있습니다(출처 – 차이나데일리).



그래도 손책을 막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조조마저도 “미친 개 같은 아이와 예봉을 다투기 어렵다”며 본인의 조카와 손책의 아우를 혼인시키고, 아들 조창과 손책의 오촌 조카를 혼인시킵니다. 물론 원소와의 일전 때문에 여유가 없었기는 하지만, 바로 그 조조마저도 꼬리를 내렸던 셈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겠지요. 고대를 죽인 일도 그래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대는 원래 명망 높은 선비로, [좌전]에 특히 정통했습니다. 손책은 고대에게 [좌전]에 대한 강론을 받고자 했는데요, 손책의 부하 중 한 명이 고대를 미워했던 모양입니다. 고대가 오기 전, 손책에게 “고대는 장군께서 단지 무력만 있는 무장이라 생각할 뿐이라, [좌전]을 논하게 되면 무조건 모른다고 답할 것”이라고 말해둡니다.


동시에 고대에게는 “주군께서는 지는 것을 싫어하니, 모든 질문에 답한다면 위태로워집니다”라고 경고했고요.


고대는 손책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간혹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손책은 부하의 말이 사실이구나 싶어 분노해 고대를 가두었고요. 고대의 의도와는 달리, 자존심이 상한 것이지요.


그 후 누각에 오른 손책은, 고대의 구명을 간청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마을을 보게 됩니다. 고대에게 쏠린 민심을 견디지 못한 손책은 고대를 죽여버립니다. 엄청난 질투심이지요. (후환 7)

 -> 2) 과대이상화와 과소평가의 극단 사이를 반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정하고 격렬한 대인관계의 양상: 명망 높은 선비라고 평가했다가,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간악한 놈이라고 판단

 -> 6) 현저한 기분의 반응성으로 인한 정동의 불안정(예: 일반적으로 수 시간 동안 지속되며 단지 드물게 수일간 지속되기도 하는 격렬한 삽화적 불쾌감, 과민성 불안): 고대가 자신은 무시하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 격렬한 분노 및 고대를 구명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급격히 발생한 불쾌, 불안감 등이 뒤섞인 끝에 고대를 죽여버리는 결정을 내리는 손책의 모습은 낮은 자존감과도 연관되어 보입니다.




이렇게 약간은 자잘한(…) 상대들과의 다툼에서 이겨왔던 손책에게 큰 무대가 펼쳐집니다. 조조와 원소의 결전이 시작된 것이죠. 손책은 이 틈을 타 허도를 급습하고자 했습니다.


성사되었다면 조조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되었겠지요. 이때 허공 역시 손책의 힘이 커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허공은 원래 오군태수였는데, 손책의 부하 주치에게 패배해 엄백호에게 의탁했다가, 엄백호가 죽으면서 손책의 부하가 된 경우거든요.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았던 셈입니다(후환 8).


헌제에게 손책을 불러들이라는 서신을 보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 서신을 입수한 손책은 허공을 교살했습니다. 허공의 어린 아들과 빈객은 강변으로 도망쳐 숨었다고 합니다 (후환 9).

 -> 이 부분은 더 이상의 자세한 묘사가 없어서 손책의 성격적인 문제로 인한 상황이라고 딱 잘라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손책이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것이 맞다면 허공에 대해 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껴(자신을 진심으로 섬긴 게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자존감 와르르) 군법에 따른 정식 처형인 ‘참수’가 아닌 교살을 해버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배신감과 분노의 여파로 판단력이 흐려져 허공의 빈객과 아들을 놓쳐버린 것일 수도 있고요(물론 처음엔 잡아 족치려고 하다가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엔 특유의 변덕에 의해 ‘어린 아이까지 해치는 것은 군자답지 못하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허공을 처리한 손책은 북상을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맞부딪친 상대는 광릉의 진등이었습니다. 진우의 조카로서 복수를 맹세했던 바로 그 진등입니다.


그러나 앞서 남겨두었던 수많은 후환이 손책의 뒤를 잡고 맙니다.


여기서 기록이 갈리는데요, [건강실록]에 따르면 진등이 엄백호의 잔당을 보내 손책의 암살을 시도했답니다. 진등은 조조의 부하였으니, 곽가의 예언이 실은 계획이었다는 반전이 되겠습니다.


반면 [강표전]에 따르면 암살 시도의 주체는 허공의 빈객들이었습니다. 사냥을 나갔던 손책이 사슴을 쫓다 홀로 떨어졌을 때의 일이랍니다. 한 세력의 수장이 사냥을 나갔다가 홀로 떨어졌다니, 매우 부주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살 중 하나는 손책의 뺨에 맞았다고 하니, [오력]에 나오는 얼굴의 상처 이야기와도 통합니다.

 -> 4) 자신을 손상할 가능성이 있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경우에서의 충동성(예: 소비, 물질남용, 좀도둑질, 부주의한 운전, 과식 등). [주: 5번 기준에 있는 자살이나 자해행위는 포함하지 않음.]

: 고대 중국에 살던 인물이기에 현대 기준의 ‘두 가지 이상의 경우에서의 충동성’이란 점을 보여주기에는 조금 애매할 수 있으나, 일국의 군주에 해당하는 인물이 사냥에 흥분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부하들과 떨어져 고립되고 암살의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점에서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치와 향락에 탐닉하였다는 사서 속의 내용은 없긴 합니다만, 워낙 이른 나이에 사망하여 그러한 유혹에 빠져들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지요(훗날 동생인 손권이 알콜 중독이 된 것을 보면 나름 가능성이...).



손책 암살의 배후로 추측되는 두 인물. 허공(좌)과 진등(우). 출처-KOEI 삼국지 12,13,14



어느 쪽이든, 손책은 살아남습니다. 치명상을 입었는데도요.


이때 도사 우길이 탁문 아래에 찾아왔답니다. 여러 장수와 빈객의 3분의 2가 누각을 내려가 우길에게 절했다고 하는데요, 손책은 우길을 잡아 가둡니다. 어머니 오 씨가 우길의 구명을 청하자, 손책이 직접 우길을 잡은 이유를 밝힙니다.


“이 요망한 자는 뭇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여러 장수들이 군신의 예를 등한시한 채 이 손책을 내버리고 누각 아래로 내려가 절하게 했으니, 없애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 자신을 뒤로 한 채 우길에게 절했다고 화났다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이것도 딱히 정상적인 반응은 아닌...)


우길은 이때 나이가 거의 백 세에 이르렀습니다. [예기]에 따르면 어린아이와 노인에게는 형을 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손책은 우길을 죽였습니다.


[수신기]에 따르면 거울에서 우길의 혼을 보았다가 죽었답니다. [연의]에서도 이 일화를 차용하죠. 다만 [수신기]는 어디까지나 지귀소설, 즉 괴담집입니다. 아마 우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책이 죽어 나온 괴담이겠지요.




그러나 실제 죽음도 당황스러운 수준입니다.


암살 미수로 부상을 입은 후의 일입니다. 의원([오력]의 기록에 따르면 화타의 제자)이 치료는 할 수 있지만 백 일 동안 움직이지 말라 당부했답니다.


그런데 거울을 본 손책이 책상을 치며 “내 얼굴이 이 지경인데 어떻게 공을 세우고 대업을 이루겠느냐!”라며 분노했답니다. 그러더니 상처가 모두 파열되어 그날 밤 죽었다고 합니다.

(관우에 이은 최악의 진상 환자T-T)

 -> 5) 반복적 자살행동, 제스처, 위협 혹은 자해행동: ‘반복’이라는 것을 관찰할 기회는 없으나 일종의 자해행동이 의심되는 이벤트

 -> 8) 부적절하게 심하게 화를 내거나 화를 조절하지 못함(예: 자주 울화통을 터뜨리거나 늘 화를 내거나, 자주 신체적 싸움을 함): 상처가 파열될 만큼의 분노

 -> 9) 일시적이고 스트레스와 연관된 피해적 사고 혹은 심한 해리 증상: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인해 자신의 미래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피해적인 사고



이 이야기에 따르면 손책은 외모 손상(자세한 묘사가 없어 실제로 안면 부위에 비가역적인 손상이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큰 부상으로 인해 전반적인 외모 상태의 저하가 일어났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이후 매우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가 100일 동안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한 의학적 권고를 무시한 채 몸을 움직이고 화를 내는 것은 진단 기준 5번에 속하는 위협이나 자해행동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서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목격자가 있다는 것이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자해행동을 하고 사망에 이른 것은, 높은 자살 시도 경향을 보이는 경계성 성격장애의 특성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5,6). 손책이 20대에 사망했기에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이후에도 자신을 힘들게 하는 큰 고비가 있을 때마다 ‘반복적인 자해행동’을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사서의 내용에는 분노하다가 상처가 파열되었다고 표현되어 있기에 실은 아주 적극적인 자해 행동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해행동까진 벌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할 수술 후 환자가 상처가 파열될 만큼의 행동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손책이 상처를 입은 부위가 어디라고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암살 시도로 인한 난전의 와중이었고 구조된 이후 팔-다리가 다쳤다는 언급은 크게 없고 의식을 잃었다거나 호흡이 안된다는 묘사 역시 없는 것을 보아 주로 부상을 당한 부위는 외모와 관련된 ‘얼굴(뇌손상은 없는 안면부)’과 ‘복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손책이 복부에 큰 상처를 입었던 것이라면, 분노의 소리지름으로 인해 ‘복압’이 올라가 상처의 파열이 일어났을 것입니다(7). 기껏 어려운 수술 끝에 환자를 살려 놓았던 의사는 손책의 황당한 사망 소식에 허탈함을 금하지 못했겠죠.



손책이 현대의 병원에 입원한 환자였다면, 손책의 수술을 담당했던 주치의는 수술 후에 진정(sedation) 및 결박(Restraint - 결박은 환자의 움직이나 몸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여 의학적 상태를 호전시키거나 부작용을 예방하는 치료행위로 정의할 수 있으며, 결박에는 물리적 도구를 이용한 신체적 결박과 약물(안정제, 마취제, 근육 이완제 등)을 이용한 화학적 결박이 있음)과 같은 방법을 선택해야 했을 것입니다(8,9). 큰 수술을 방금 마친 환자가 마구 움직이는 것은 환자의 회복에 위해가 되기에 의사는 그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어쨌든 외모의 손상이 손책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면, 그가 고대 중국에 살았던 사람이란 점이 더욱 안타까워집니다. 만약 손책이 현대의 성형외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면 재건술과 같은 치료를 받아 외모와 자신감을 상당히 회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약간의 흉터가 남았더라도 현대의 화장 기술이면 상당히 커버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한편으로는 손책이 경계성 성격장애의 성향을 지니지 않았다면, 자신의 외모 손상에 대해 이 정도로 극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충분한 안정가료 끝에 무사히 회복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국지 속의 역사는 조금쯤 그 흐름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요.


손책에게서 인수를 물려받는 손권. [출처=예슝(葉雄) 화백] [출처:중앙일보]




어쨌든 정사 속의 손책은 자신이 죽인 엄백호 혹은 허공의 잔당에게 죽었습니다. 하지만 꼭 두 사람이 아니더라도, 손책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곽가의 평대로 조심성은 없이 계속해 후환을 만들고 다녔지요.


최후조차 마찬가지입니다. 의원의 말대로 하면 살 수 있었던 것을, 제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화를 내다 죽었습니다. 게다가 저 사건에서 살아남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암살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만큼 후환이 많았으니까요.


사람들은 손책을 소패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패왕 항우와 걸맞는 용맹을 지녔다면서요.


한신은 항우에 대해서 이렇게 평합니다: "항우가 화를 내며 큰소리를 내면 모두가 그 앞에 엎드리지만, 어진 장수를 믿고 일을 맡기지 못하니 이는 그저 보통 남자의 용맹에 지나지 않습니다. 항우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말씨 역시 부드럽습니다. 누군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부하가 공을 세워 벼슬을 주어야 할 경우가 되면 인장이 닳아 깨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며 선뜻 내주지 못하니, 아녀자의 인자함일 뿐입니다."



소패왕 손책 역시 항우와 비슷합니다. 분명 용맹스럽습니다. 군사적 재능도 빼어났습니다. 매력도 상당해, 수많은 빈객과 장수, 백성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너그러움을 보여준 적도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틀림없이 후환이 생길 텐데도 사람을 살려준다거나, 공격을 멈춘다거나 등.

 

그러면서도 별 것 아닌 일에는 자신을 무시한다며 불같이 화를 내고, 과도하게 반응합니다.



이러니 손책의 죽음의 원인은 ‘불운’보다는 성격장애에 의한 ‘필연’에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고문헌>

1.     Dorina Winter et al., Lower self-positivity and its association with self-esteem in women with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Behaviour Research and Therapy. Volume 109, October 2018, Pages 84-93

2.     Robert S. Biskin, MD and Joel Paris, MD, Diagnosing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CMAJ. 2012 Nov 6; 184(16): 1789–1794.

3.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Fourth edition. Text revision. Washington (DC): The Association; 2000. p. 943

4.     [연의]에서는 적벽대전이 발발하기 전, 제갈량이 손권의 참전을 유도하고자 주유의 분노를 사기 위해 조조가 지은 동작대부에, 조조가 대교와 소교를 탐하고 싶다는 내용을 집어넣어서 불렀다고 합니다(출처-위키피디아). 교 자매의 미모를 강조하기 위해, 그리고 적벽대전의 드라마틱함을 강화하기 위해 창작한 에피소드겠지요(조조의 막장성 강화?).

5.     The Surgeon General’s call to action to prevent suicide. Washington (DC): United States Public Health Service; 1999

6.     Paris J, Zweig-Frank H. A 27-year follow-up of patients with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Compr Psychiatry 2001;42:482–7

7.     Ryan D. Rosen and Biagio Manna, Wound Dehiscence. StatPearls. 2023

8.     Maccioli GA, et al. Clinical practice guidelines for the maintenance of patient physical safety in the intensive care unit: use of restraining therapies—American College of Critical Care Medicine Task Force 2001–2002. Crit Care Med 2003;31(11):2665.

9.     Jung Sun Lee, Restraint in the Intensive Care Unit. J Neurocrit Care 2015;8(2):7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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