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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솔해 Aug 05. 2021

지방대를 나와도 행복할 수 있나요? _ 1

서울 사람이 지방대를 가봤습니다.





" 글쎄요 "라고 어느 지방대 출신인 본인이 먼저 대답한다.




당연히 10개 대학은 갈 줄 알았던 10년 전의 나는 사교육 열기가 치열하다 못해 대학에 앞서 중고등 입시에도 목숨을 거는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공부 잘하는 동네에 산다고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닌데 이상하게 사람 심리가 분위기를 따라가는지 나도 열심히 하면 올 1등급은 아니어도 1등급 반, 2등급 반은 나올 줄 알았다. 너무 긍정적이었나?



사실 2등급도 전국 상위 10% 이내에 들어야 받을 수 있는데,  무슨 생각으로 스스로가 전국 상위 10% 안에 들어 상위권 대학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열심히 하면 된다길래 진짜 되는 줄 알았지 뭐,



아니 일단, 왜 어른들은 2등급을 쉽게 말하는 건지부터 따져보자. 과연 그들은 무언가 열심히 해서 전국 20% 안에 들어갔던 경험이 있을까. 어른이 된 현재의 나는 지금 당장 공부는 물론이고 외국어로도 운동으로도 심지어 젓가락질로도 전국 상위 20% 안에 들 수 있는 게 없는 듯하다.



하지만 어른들은 본디 대학을 가려거든 못해도 2-3등급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며 전국 20% 컷을 너무 당연스럽게 요구한다.


" 대학을 갈 생각이 있으면 3은 받아야지.."

이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3 넘게 나오면 대학에 갈 생각이 없다"와 같은 것인데 애잔하게도 우리나라 학생 중 좋은 대학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냥 성적이 안 나올 뿐.




그래서인지 3등급 이하의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권리가 없는 분위기랄까?


모의고사 성적표에

1보다 2가 많이 보이고

2보다 3이 많이 보일수록

미래, 대학, 꿈에 대한 발언권들이 줄어든다.


나름 공정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법도 하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잣대 중 "공부"와 "성적"이라는 잣대로 장작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을 평가당하고 그에 맞는 인생설계를 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인 것이 맞다. 요즘 어린이들을 보면 꽤 다양한 진로를 설계하는 편이라 조금 달라졌나 싶긴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도루묵이더라.








서울의 여느 동네에서나 4등급 또는 그 뒤의 등급을 보유한 학생들에게 ' 얘는 아무래도 공부보다 다른 걸 해야겠는데..? '라고 조심스러운 척, 의문형인 척, 조언해주는 척하며 그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제한해 버리는 것, 그것을 세상의 어쩔 수 없는 진리인 듯 말하는 것, 어쩔 수 없는 학벌주의 탓을 하는 것, 우리는 그런 사회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대기업의 갑질에 대한 비판 기사에

"불만이면 공부해서 대기업 가시던가",

공기업의 비리에 대한 기사에

"불만이면 공부해서 공기업 가시던가",

공무원의 부정부패에 대한 기사에

"불만이면 공부해서 공무원을 하시던가"

라는 댓글들이 흔히 보인다. 그리고 나도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쉬워져서 그러고 살았다.



" 불만이면 공부해서 인서울 명문대 가시던가"

이 말을 들어야 하는 전국 석차등급 30% 밖의 학생들은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하며 살아갔을까, 그들은 여전히 꿈을 꿀까? 여전히 목표를 가질까? 여전히 더 나아지고 싶을까? 그리고 어떤 어른으로 컸을지 궁금해진다.





사람마다 능력과 특기가 다르다고 말하지만 결국 학창 시절을 3등급 이하로 마무리하면 지방으로 낙오될 것이라 말한다.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에게 " 지금 자면 나중에 학교 가는 기차에서도 잔다~"암울한 지방대행을 비꼬는 선생님들의 단골 멘트와 레퍼토리가 각 학교마다 존재한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지방과 지방대 혐오 및 차별 발언들이 너무나도 쉽게 들리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서울지역뿐만이 아니다. 지방에 있는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전에 과외를 하던 학생도 학교 선생님이 "너네 저기 고대 세종 갈 거면 차라리 보건대 가서 취직해라~"라고 말씀하셨다며 대전에 있는 보건대 보다 고려대 세종캠퍼스가 더 취직이 안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할 말이 없었다. "취업이야 전문대가 잘 되겠지. 근데 연봉이랑 유지취업률이 중요한 거야 임마 왜 다 4년제 가려 하겠냐"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전문대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자존심이었을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나도 내가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갈 줄은 몰랐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그만큼 노력을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3등급이 찍혔던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으면 내 인생을 통째로 돌아볼 만큼 입시에 진심이었다. 돌아볼 만큼 살지도 않은 주제에 왜 그랬나 몰라.



사실 3등급 중반만 맞아도 무려 상위 15%에 달하는 성적인데, 우리나라의 많은 상위 15%들이 10% 안에, 4% 안에 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를 질책한다. 재산으로 따지면 중산층 이상 아닌가, 내수시장 살리는 건 중산층인데...



그때의 3등급들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고, 상처 받지 않고 '3'이라는 숫자에 갇히지 않고 자랐다면 이 세상은 좀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좀 다르게 컸겠지. 3,4등급 친구들의 목표가  1,2등급을 쫓는 게 아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했다면 우리나라는 매년 상위 20-40%의 중상위권의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었겠지.




공부를 못 했으니 지방대로 가는 것,

" 당연한 거 아닌가요? "라는 생각이 드는 한 때 공부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못 했으니 지방대를 갔다고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이 나올까?. 지방대를 졸업한 나는 추측할 뿐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러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할 뿐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왜 공부를 못하면 지방대를 가야 해?, 왜 지방대를 무시해? 가 아니라



왜 학생들의 지방대행을 낙오자 취급하는지, 그렇게 어른들이 나눈 서울과 지방의 공간적 계층과 간극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가능성을 제한하는지이다.



흔한 학벌주의에 대한 규탄과 분노가 아니라 성적과 대학의 잣대를 이용해 대도시-지방의 공간적 계층과 그에 따른 차별로 지방 혐오주의를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지방대는 무시하더라도 지방은 무시하지 말자는 것.




"죽었다 깨어나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에 있는 대학은 안가!!! "

라는 말이 고등학생들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뭘 또 죽기까지 해.. 차라리 "서울에 있는 대학 갈거야!! "로 수정해주면 좋겠다. 어른들도 지방대 혐오 발언보다는 서울권 명문대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쪽이 국가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셨으면 한다. 일단 지방대를 갈까 봐 수능날 자살하는 고3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인 서울 할 거야!""지방대 절대 안가!"는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희망을 의미하지만 후자는 혐오를 뜻한다. 혐오가 강력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희망과 존중이 좀 더 지속적인 편이다. 그리고 후자의 혐오의 부작용은 너무나 크다.




혐오보다 희망으로 동기부여시킬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대학이 너무 많아 일부는 자연스럽게 사라져도 된다지만 오랜 명성을 지켜  지방의 국립대와 사학들은 분명 지역  교육의 양분을 만들어낸다. 무리해서 서울을 가지 않아도 내가 사는 곳에서 나의 방식으로 교육받고 성장할  있는 기회도 있어야 한다.  짙어져 가는 지망소멸론과 지방대의 멸망을 최대한 늦추며 지방만의 방식지방대만의 성장패턴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조금  지방과 지방의 학교들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  다음 편으로 이어 쓰겠습니다. )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하시고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댓글로 소통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찬찬히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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