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봄날 약간의 광기는
광기를 지닌 듯이 삽시간에 펼쳐지는 봄기운에 덩달아 열리고 부푸는 사람들의 마음을 광기로 표현한다. 미셸 푸코가 광기를 문화적 일탈로 문화의 적극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처럼, 이 시에서는 국가권력이 좋아하는 사회통제와 질서로 인한 불행보다, 약간의 광기로 인한 자유로움이 왕의 체제 유지에도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가진 왕에 비해 가진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인 광대는 겨울왕국에서 변화하는 엄청난 봄의 광경을 '초록의 실험'이며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것으로 고달픈 자신의 처지를 퉁쳐서 자동 상쇄시키는 것이다.
산이나 들에서 문득 봄꽃 만발한 풍경을 만나면 정말 머리에 꽃이라도 꽂고 가뭇없이 사라지고 싶은 광기가 살짝 도진다. 산에서 진달래 밭을 만나거나 철쭉무리를 만나면 그렇고, 이른 봄꽃 무더기를 만나면 푹신하게 꺼져 들어가고 싶다.
미셸 푸코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광기는 자기 자신과 유지하고 있는 상상적인 관계'이고 그 광기는 '자신을 비추어보는 사람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가정 속에 나타나는 꿈을 은밀하게 선사하는 거울과도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광기를 통해 자신과의 관계가 풍성해 지는 것일진대, 그는 광기의 역사 1권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도 광기는 리어왕이나 돈키호테에서 볼 수 있듯이 햇빛 아래 활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광기는 이성과 굳건히 결합된 감금의 요새로, 도덕성의 규칙에로, 그들에게 마련된 단조로운 밤에로 퇴각해갔다'라고 마무리한다.
동네 바보형도 머리에 꽃을 단 언니들도 마을에 존재하지 않은 지 오래 됐다. 봄이 되면 뭔지 모를 설렘으로 나물을 캐고 마을을 쏘다니다 뒷동산에서 날 저물도록 서울행 기차를 바라보곤 하던 시절, 어디로든 떠나고 싶던 울렁거림은 아지랑이같은 약간의 광기였을지도 모른다. 사춘기를 광기라고 부르며 아이를 키우면서도 사춘기에 광기를 발산하지 못하면 어떤 식으로든 골치 아프게 소환된다고 말로는 했으나 얼마나 '감금의 요새로, 도덕성의 규칙에로' 몰아 넣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봄날의 꽃사태를 핑계로 가슴 속에 묵혀 있는 광기와 만나 결대로 풀어져 볼 수 있다면 좋은 일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