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래울 May 11. 2024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잘랄루딘 루미,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여행자의 집


'이 시에서 ‘당신’은 아마 우리가 기어이 만나야 할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마주치기 싫어하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틀립 박사가 하나하나 설명했듯이 그 마음과 만나지 않는다면 ‘봄의 정원’에서 끝끝내 외롭고 힘들고 쓸쓸할 것입니다. 봄날, 밤의 정원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만나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오신다면, 정성껏 마련한 꽃과 술과 촛불은 또 얼마나 더 아름답겠습니까. 고틀립 박사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봄의 정원에서 ‘마음의 성년식’을 치렀으면 합니다. 저기, 우리 마음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낯선 그러나 아주 낯익은, 낯익은 그러나 아주 낯선 당신이!' 

                                                                                            - '샘에게 보내는 편지' 옮긴이 이문재-


 이 시를 마다 절묘한 연애시로만 여겼는데 대니얼 고틀립의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뒤적이다 저런 해석을 보았다. 봄의 정원에서 기어이 만나야할 것은 다른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며, 그것과 만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마음의 중요성으로 해석하고 있다. 독자들도 '샘'의 입장이 되어 고틀립의 진정성에 순순히 따르게 되는 독서 여정이기에 책을 관통하는 주제와 연결되는 해석에 수긍이 가면서도 언젠가 한번 저렇게 당신 외의 것을 전면 부정하는 치열한 연애편지 한 장 '봄의 정원'에서 날려 보내지 못한 채 휑한 가을 벌판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정신의학 전문의 고틀립 할아버지가 자폐 진단을 받은 손자 '샘'에게 세상과 인생살이의 지혜를 살뜰한 사랑의 편지로 들려주는 글이다. 손자에게 과연 어떤 편지를 썼을까가 새삼 궁금해져 '마음에게 말걸기'와 함께 옛날에 읽은 기억을 뒤적여 꺼내 보았다. 왼손 엄지에만 남아있는 감각으로 온전한 상담을 하며 아프고 뜨겁게 헤쳐온 인생을 손자에게 전하고 있다. 자폐 성향의 정도와 무관하게 저 깊은 영혼의 힘으로 곡진하게 빚어 보여주는 할아버지의 마음 에너지를 얻어 샘은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선물'에는 '봄의 정원으로 오라'는 시를 쓴 13세기 이슬람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여행자의 집'이 선물로 소개된다.


너는 여행자의 집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낯선 이들이 드나드는 여행자의 집.     

즐거움, 우울함, 비열함,     

순간의 깨달음이     

기다리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반갑게 맞이하라.     


그들이 집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아끼는 가구를 모두 없애는     

슬픔의 무리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환대하라.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주기 위해     

집 안을 깨끗이 비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두운 생각, 날카로운 적의,     

비겁한 속임수가 오더라도     

문 밖까지 나가 웃으며 맞이하라.     

귀한 손님처럼 안으로 모셔라.     

누가 찾아오든 고개 숙여 감사하라.     


문을 두드리는 낯선 사람은     

너의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찾아온     

미래에서 온 안내자이다.


 고틀립 할아버지는 이 시를 통해, 살아가며 느낄 기쁨과 슬픔 등의 모든 감정을 기꺼이 자기 것으로 반갑게 받아들이고 정성을 다 해 환대하라고, 그 모든 감정이 다 미래로 안내해 줄 귀한 손님이라고 전해준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슬픔보다 사랑과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는 당부와 함께. 


 앞으로 내 손자와의 시간은 어떤 빛깔일까 궁금하다. 지금 나눌 수 있는 모든 순간들을 선물로 여기며 말로 다 못하는 깊은 감정을 생생히 느끼고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 앵무새버전으로 뻔한 말이나 반복해 되뇌는 지루하고 피상적이고 유치한 할머니가 되면 어쩌나, 진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행자로 나에게 들르는 감정에 충실하다는 뜻일 터, 그 여행자를 온전히 모시고 봄의 꽃과 술과 촛불에 어우러지는 삶은 생각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작가의 이전글 국수 가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