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 미술관 & 필립 파레노 VOICES (24.03.03)
상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극 E성향의 전쟁터였다. 동네에서도 이미 유명해서 암묵적으로 동네 반장인 집이었다. 딱히 불타는 사춘기는 없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조용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출까지는 아니어도 출가를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참 따뜻한 가정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정말 진지하게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E성향의 사람이다. 그러나 가족 중에 가장 세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가족 외식을 가면 항상 긴장했다. 혹시라도 시끄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혼자 눈치 보다 보니 어느새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성격이 된 것 같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행동을 하거나 혹은 남들이 안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성격은 지금도 여전하다. 단적인 예로 주차할 때마다 아내와 실랑이를 하게 된다. 나는 주차장 표시와 적합한 주차 선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주차하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가끔은 주차 문제로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도 생긴다. 이 정도면 꽤 중증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로서는 정말 하기 싫은 행동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동 그 자체는 미움받을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같이 사는 아내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사회 기준으로는 어쩌면 모범적일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 맡기고 오늘은 지나친 배려의 역효과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남의 눈치를 보다 보면 핵심을 느긋하게 즐길 수 없다.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아마 동감하는 사람도 꽤 많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전시회를 가면 그 전시회에 메인이 되는 전시물이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포즈도 잡고 여러 가지 행위를 한다. 조금 도가 지나친 사람은 그곳에서 전세를 낸 듯 행동도 한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의 경우, 사람이 많이 몰려있으면 왠지 빠르게 그곳을 지나거나 뒤에 있는 사람에게는 피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전시물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아, 빨리 봐야지.. 아 다 봤다.' 하고 지나가게 된다. 이런 성향은 전시회의 관람시간에도 영향을 준다.
오늘 관람한 '필립 파레노의 VOICES'는 현대 미술의 거장의 전시로 말 그대로 핫하다. 그래서인지 주차할 때부터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사람은 당연히 많았고 매 전시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러다 보니 전시물을 보는 게 아니라 전시회에 온 사람들을 구경하게 된다.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전체 관람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나온 이후에 시계를 보니 50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평균 1시간 30분을 전시회장에서 보내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히 무언가 생략됐다. 이러다 보니 과거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거의 40대가 다 된 아저씨가 대체 어떤 시선이 신경이 쓰여서 마음껏 관람하지 못하고 불만족하는 걸까?
지나친 배려의 결과 값이 불만족이라는 사실을 포착한 것은 대학시절부터인 것 같다. 다 같이 놀러 갔다가 돌아오면 많은 친구들은 '와, 정말 재밌었다. 또 가자!'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어~ 정말 맞아.' 정도의 겉치레를 했지만 속으로는 '.. 그렇게 재밌었나?... 나는 좀 피곤한 것 같았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연애도 다르지 않다. 데이트에서 주로 하는 것은 전시회 혹은 영화를 관람하거나 좋은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것이다. 그것마저도 좋은 취향을 가지고 최상위를 찾아 헤매지만 막상 도착해서 즐기는 시간은 꽤 짧다. 왠지 모르겠지만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상황에 눈치를 보고 아주 짧게 즐기고 퇴장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거 원 뭘 해도 돈이 아까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것도 오래 지나고 나면 오히려 그 불만족의 시간의 가치를 높게 치다 보니 돈이 아깝기보다는 '원래 그런 건 그 정도 돈이 필요해. 더 즐거우려면 더 벌면 될 거야'라는 생각이 판을 친다. '근데 이게 맞아?'라는 생각은 꽤 오랫동안 해온 것 같다.
예술을 즐기러 갔다 와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글이 되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일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를 찾아가는 점은 꽤 고무적인 일이다. 요즘 친구와 이야기하며 주제로 삼는 것이 있다. 바로 '중년의 위기'라는 키워드이다. 뭐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를지 모르지만 '중년의 위기'를 '목표 설정의 위기'라고 표현하면 지금 그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보니 지나친 배려는 눈치를 의미하고 나의 지금까지의 인생은 너무 밖을 바라보면서 진행이 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명함만 보면 꽤 좋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의 가치의 무게가 불만족스럽다. 그래서인지 꽤 삐걱되는데 그 삐걱됨을 인지하고 있다. 단순히 삶의 목표에 대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전시회에서 느낀 것을 보니 어쩌면 내 삶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주제가 될 것 같다.
필립 파레노의 유명세와 현대 미술은 잘 모른다. 전시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은 눈에 띄지만 오늘 난 내 개인적인 이유로 불만족하고 말았다. 필립 파레노는 잘못이 없다. 온전히 내 '지나친 배려'의 성향 탓에 전부를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좋다는 라고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귀머거리의 집'이라는 영상 예술이었다. 철거된 고야의 집을 소리를 중심으로 영상화했는데, 유화를 빛으로 비추면서 여러 가지 각도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나오는 소리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것을 두 번이나 보기 위해 해당 전시장에 재입장한 것이 아마도 '지나친 배려' 쟁이의 가장 큰 용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이렇게 온전히 즐기는 경험이 하나둘씩 늘어나다 보니 왠지 조금 더 만족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지나친 배려'가 '불만족'이 되는 것은 어쩌면 성향이 가진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을 할 때는 문제 정의가 가장 중요하다. 최근의 위기에 대한 문제가 '지나친 배려'라고 생각하면 결국 조금 더 나다운 것을 찾고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 한다. 한편으로는 한 번쯤은 나 자신이 만들어온 결과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며 칭찬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위로해 본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챙겨봐야겠다.
(실내에서 녹고 있는 눈사람은 무엇을 의미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