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nch Toast Mafia Feb 12. 2022

Great Resignation시대를 살다

    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가 이직을 한단다. 요즘 흔하게 보이는 오고 가는 소식이 아니라,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Dreams do come true! 급의 대단한 경사인 듯했다. 링크드인에 올라온 글에 묻어나는 설렘, 기쁨, 환희 온갖 긍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덮쳤다. 처음 탁 든 느낌은, 부러움. 좋겠다... 정말이지, 너무 부러워서 속이 살짝 울렁거릴 정도로. 그런데 말이지. 왜 이렇게까지 질투심이 드는 걸까?


    Great Resignation. 말 그대로 대 퇴사의 시기를 살아내고 있다. 작년 초부터 시작한 퇴사 러시는 그 기세가 꺾일 줄을 모른다. 회사 내부만의 일이 아니라 업계 공통적인 현상임을 어렴풋이 느끼는 계기 중 하나가 링크드인을 뒤덮는 이직 소식이고, 또 하나는 공석을 채우기 위한 인터뷰에서 지원자들의 각기 다른 이직 동기를 들을 때이다. 일종의 대전환 국면(Reshuffling)이랄까? 그 안에서 멈추어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퇴사자와 입사자의 거대한 썰물과 밀물 속에서 마음만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첫 몇 달은 아직 코로나 기세가 드센데 이동하기는 이르지 않나? 하며 퍽이나 무심하게 - 그리고 또 쿨하게 떠나는 이들을  보내주었다. 그러다 작년 중순쯤 가도 퇴사 행렬이 꾸준한 것을 보고는 메인 줄도 없이 외양간 떠날 줄 모르는 내가 멍청한 건가 하는 생각이 고갤 들었다. 전에 없이 구직자가 갑인 Seller's market이 찾아왔는데 넌 그냥 떠날 용기가 없는 게 아니야? 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안주해버린 걸까? 마음에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웠고 덩달아 내 엉덩이도 들싹거렸다.


    누군가는 제 사업을 시작해보기로 했다며 비장하게 돌아 섰고, 또 누군가는 연로하신 아버지를 가까이서 간병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룹의 수장 격이었던 누군가가 시작한 스타트업 쪽으로의 인력 유출도 몇몇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크게 흔든 일은 나를 가장 믿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상사 둘의 퇴사 소식. 한 분은 갓 대학을 졸업한 나를 직접 뽑고 오랜 시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은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내 직속 상사로 위 아래로 인정받는 매니저였다. (좋은 매니저는 하늘에서 내려준다고 한다던데... 난 이제 망한 건가) 둘 다 워낙 뛰어나 가까이 함께 일할 수 있음에 든든했으나 결국 그 능력을 인정받아 훨씬 좋은 조건으로 이직해 회사를 떠났다.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을 지도. 그분들이 나의 성장을 한껏 축하해준 것처럼 나도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기뻐했지만, 한 편으론 끈 떨어진 연 마냥 쓸쓸해졌다. 내가 다시 새로운 사람과 믿음을 쌓고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이 컸다. 하지만 그때도 이런 꼬장꼬장하고 못난 질투의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아.


    Dreams come true. 그 말부리에 마음이 걸려 넘어졌다. 단순히 조금 더 나은 조건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이상향에 다가가는 느낌, 그 희열이 너무 부러웠다. 꿈이라니! 학생 때야 세상 물정 모르고 저만의 꿈을 꾸고 상상하며 행복감에 젖어들기 쉬웠지, 어른이 된 지금은 단어를 입에 올림과 동시에 101가지 장애물과 불가능한 이유가 같이 떠올라 괜스레 부끄러워지고 만다.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도 꿈이 갖고 싶어'가 아니라 '나도 스스럼없이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쪽에 가깝달까? 저렇게 공공연한 장소에서 감히 이상에 대해 말하고 쟁취했다고 선언할 수 있는 대담함(dare)이 탐이 났다.




    Great Resignation에 대한 Hardvard Business Review 기사를 읽었다. 이직 및 퇴사의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는 중간급 직원들이 있다는데, 어머 이거 나잖아? 이유 중 하나로 들고 있는 코로나 기간 동안의 번아웃도 내 얘기만 같고, 역시 팬데믹과 맞물려 고용주들이 훈련이 필요한 신입 대신 즉시 전력이 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새 직원을 뽑는 입장에 있던 내 입장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우리 그룹도 똘똘한 여러 사람의 공석을 메우느라 꽤나 고전했다. 빈자리는 공석 이상의 인력 고갈을 가져온다. 없는 사람 몫만큼의 업무뿐만 아니라, 그 공석을 채우기 위해 지난한 채용 과정에 끌려다니는 현업자들의 시간 낭비와 피로도 상당하다. 경력직 자리를 대충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군다나 모든 사람들이 원격 근무하는 현 상황에서는 금방 일을 배우고 바로 업무에 뛰어들 수 있는, Self-starter 자질이 충분한 사람을 찾아야 하니 유니콘 찾기나 다름 없을 밖에.

    

    좋은 지원자를 찾았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관리자 일을 하는 내 친구는 회사에서 주 며칠은 출근해야 한다는 정책을 고수하는 바람에 구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단다. 오퍼(합격 통보)를 받고도 출근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지원자들의 흥미가 짜게 식는다고. 조건은 얼마든지 맞추어 준다는 경쟁사가 줄을 섰는데, 요즘 같은 때 출근 같은 조건을 달다니 무슨 시대를 역행하는 헛소리래? 하며 양껏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넌지시 '아 이 회사는 아니군.' x자를 긋는다. 이럴 때 새삼 깨닫는다. 코로나 2년이 얼마나 세상을 바꾸어 놓았는지.


    어쩌면 2-3년마다 찾아오는 퇴사병일지도 모르겠다. 하필 시기가 맞물려 나가야만 할 것 같은 핑계를 더욱 쉽게 접하는 걸지도 모른다.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 (뜻풀이로는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다' - 미국 버전의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표현이다) 그런 거라니까. 한차례 퇴사병치레를 하고 난 다음에는 떠나는 데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있는 자리에서 희망을 찾고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도 큰 인내와 단단함이 있어야 했다는 소소한 위안이 늘 남곤 했다. 사실 거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집에서든, 건넛집에서든 내가 하는 일이 결국 잡초 뽑는 일이면 잔디가 좀 푸르면 어떻고, 누런 색이면 또 무슨 상관이겠는 가. 꼬꼬마 때부터 나를 봐온 멘토는 상담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 적재적소에 묻곤 하는 데, 어찌 된 일인지 같은 질문에 시간이 갈수록 대답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결국은 도돌이표. 어떤 쪽이든 나는 dare를 갈망한다. "Daring Greatly."*


말 나온 김에 Brené Brown quote으로 마무리 -


You either walk inside your story and own it or you stand outside your story and hustle for your worthiness.



*Daring Greatly는 사회 복지 및 심리 연구원이자 작가인 Brené Brown의 책 제목이다. 한국 번역서 제목은 "완벽을 강요하는 세상의 틀에 대담하게 맞서기" - 라는 데 이게 최선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완전 봉쇄 중 팀 이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