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_우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사랑하는 김ㅇㅇ, 졸업축하 합니다! 와아~!! “
생일파티와 같은 왁자지껄한 분위기, 수많은 이들이 모여서 축하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고 있다.
다름 아닌 송별회. 동료 활동가의 마지막 출근일이다. 축하 노래와 함께 케이크에 촛불을 끄고 롤링페이퍼와 감사장을 전달한다.
그는 자신이 일하던 동안 줄곧 외부 파트너에게 전달했던 것과 똑같은 감사장을 받고 보도자료에 뿌려질 법한 기념사진을 찍는다. 많은 동료들에게 선물과 꽃다발을 받고 짤막한 인사말을 전한 뒤 단체사진을 찍고 뒤풀이 장소로 향한다.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며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은 동료의 퇴사소식이다. 함께 고생하며 일하던 동료가 떠나는 아쉬움도 그렇지만 남은 이들이 동료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마치 잘 가라고 떠미는 것 같아 매번 새롭다. 아마도 함께 해온 시간에 대한 감사와 떠나는 이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방식일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가 떠날 때는 그와 함께했던 일 경험이 떠오른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프로젝트,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관점과 일을 풀어가는 방식, 호흡이 잘 맞았던 부분도 있고 견해차이를 좁히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어쩌면 그의 일하는 방식을 통해 나의 일을 바라보고 성장의 계기로 삼았던 것은 아닐까?
문득 그 덕분에 내가 성장할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마도 우리는 사람을 통해 성장하는 듯하다.
최근 전 세계의 직장인들은 성장의 기회를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이 때문에 이직이나 퇴사를 결심하는 경우도 많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전 세계의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 중 절반가량은 2년 내에 현직장을 떠나 본인이 더 성장하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경쟁이 가속화되는 사회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전문성과 커리어 개발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MZ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들에게 성장이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실제로 팀원들과의 미팅을 해보면 성장을 향한 그들의 진지함과 간절함이 느낄 수 있는데, 그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업종과 직종을 떠나 어쨌든 성장을 바라는 시대, 과연 우리는 어떻게 성장하는 것일까?
학교와 학원에서 선생님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배워오던 우리에게 편하고 익숙한 성장의 공식은 ‘학습을 통한 성장'일 것이다. 이 방법은 새로운 지식, 이론, 방법론 등을 이미 알고 있는 선생이나 선배에게 전달받는 것이다. 이 공식은 시험점수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성장여부를 확인한다.
학습의 방식은 익숙하고 빠르고 체계적이지만, 배우는 사람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하는지에 따라 그 효과에 큰 차이가 있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성인학습, 지식노동 영역의 학습인 경우 학습자의 참여도가 더욱 중요하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직무교육에 참여하고 다양한 책을 읽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기도 하지만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학습을 통한 성장을 기대했지만 그 한계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새로운 것을 배우면 자연스럽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상향의 직선형태의 성장과정을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장 과정은 나선형의 계단처럼 멈춰 서거나 돌아가다가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상승의 폭에는 개인차이가 있으며, 초보를 넘어서 고급과정으로 들어갈수록, 그리고 지식정보와 기술의 복잡도와 다양성이 커질수록 성장의 경로는 더욱 복잡해진다.
효과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묵묵히 한 계단, 한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가끔 멈춰 서서 돌아보며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을 적용해 보고, 회고의 과정을 거치며,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학습의 결과가 나의 역량이 되어 한 단계 높은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배운 것을 스스로 적용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습'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살펴보자.
‘배울 학'과 '익힐 습'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학'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익히고 적용하는 '습'의 과정도 놓쳐서는 안 된다.
특히 업무와 관련한 역량의 성장은 배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 정보, 방법론, 노하우 등을 자신의 업무에 직접 적용하고 경험하여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운동을 할 때 바른 자세를 지속적으로 연습해서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과 비슷한 적용의 과정은 성장을 위한 기본기를 다지는데 놓쳐서는 안 될 필수적인 부분이다.
직업인들은 결국 일을 통해 성장한다. 그 경험의 농도가 다를 뿐, 대부분의 일경험은 성장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업무의 반복이 성장으로 이어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효과적인 성장경험을 쌓기 위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업무에 익숙해지고 같은 일을 보다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면 스스로 성장했다고 여길수 있는데, 사실 익숙해지는 것과 성장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일을 통한 성장은 업무의 기본기를 충실히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업무과정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추고 자신의 일을 넘어 팀의 상황과 유관부서의 입장,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여 전체적인 성과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완결성을 갖추는 과정이다.
단지 나의 일을 더 빨리 처리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일을 조망하는 시각과 영향력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같은 방식으로 업무를 반복하지 않고 자신의 업무 과정을 돌아보고 개선할 지점들을 찾아내는 회고의 시간들이 필요하다.
반복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일의 과정을 돌아보며 개선이 필요한 지점들을 찾아내고 하나씩 변화를 시도해 보는 과정에서 성장은 시작된다. 담당 업무의 효과성을 개선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시선으로 일을 조망하여 스스로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가끔은 의도적으로 자신보다 더 높은 직책의 입장에서 사업과 일을 바라보는 노력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의 입장, 팀의 입장을 넘어 조직 전반의 성과와 미션달성을 위해 스스로의 일을 어떻게 확장해 가야 할지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즌마다 돌아오는 평가와 계획 기간을 집중적인 회고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식적으로 주어진 그 기간에 스스로의 업무를 평가해 볼 수 있으며, 리더의 피드백도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그리고 개선된 목표를 수립하여 보다 도전적이고 발전된 목표를 향해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일 경험은 성장으로 이어지며, 의도적인 회고의 과정은 보다 효과적으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의 생각과 관점을 보고 배우며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면서, 반대로 자신의 일경험을 나눠주기도 한다.
나와 다른 경계를 확인하고 그 경계의 각각의 색이 겹쳐지고 섞이는 과정에서 나의 색은 옅어지고 경계가 허물어지며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비영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비영리 단체는 삶의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데, 이들이 가진 삶과 일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에서 제법 많은 것들을 배웠던 듯하다.
단기적인 업무결과를 넘어 일의 과정과 장기적인 임팩트까지 고려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살펴볼 수 있는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다.
연차가 쌓이고 선배입장이 되면서 후배 활동가에게 기존의 경험을 가르쳐주면서 성장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를 가르쳐주는 과정은 스스로 그 내용을 다시 학습하고 정리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은 가장 큰 배움의 계기가 된다.
일은 사람이 한다고 했던가?
일 보다는 사람 때문에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또다시 사람 덕분에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오늘도 우리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성장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동료가 떠나는 것은 더 이상 그와 함께 일경험을 주고받으며 성장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이기에 씁쓸하다. 떠나는 동료를 응원하며 남은 우리의 성장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