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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 Jul 14. 2023

일상의 활동지향

ep4_활동가의 퇴근 후 일상적 활동에 대하여

비영리 단체의 활동가라는 타이틀은 직장인의 그것과 다른 나름의 무게감이 있는데, 퇴근 후의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이를 마주하게 된다.


일터에 출근해서는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업무이자 활동을 한다. 더 나은 과정과 결과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일은 명분을 얻게 된다.


하지만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일터에서의 활동과는 또 다른 일상의 활동이 시작된다. 이것은 생활문화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시민의식이라고 해도 좋지만 가끔은 일상생활에 대한 철저한 자기 검열로 다가오기도 한다.


식재료나 음식을 고를 때는 로컬음식인지 살피고 생협을 이용해야 한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며, 비건을 지향하는 식생활을 해야 할 것만 같다. SPA브랜드는 피하고 업사이클링 제품에 관심을 갖고, 동물가죽으로 만든 제품들을 입을 수는 없다. 아이들과 생활할 때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부모의 의견을 강요해선 안된다. 동물권에 관심을 갖고 주변의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본다. 물과 전기 등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쓰레기를 버릴 때는 분리배출을 철저하게 한다. 자동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리를 양보하며, 책을 읽어도 뭔가 의식적이고 교양 넘치는 책을 읽어야 한다. 사회 이슈와 정치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곳에서 일어나는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광장에 나가 연대한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생활이지만, 사실 참 피곤한 일이다.


아무도 이러한 일상을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마다 보다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을 안겨준다.


활동가들도 퇴근 이후에는 소셜이고 나발이고 스위치를 끄고 아무런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의 편안한 일상을 살고 싶은 것이 사실이지만 일상의 매 순간마다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물건을 하나 구입하는 것도 쉽지 않고 버리는 것은 더어렵다.



요즘 동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코인과 주식 이야기가 종종 들리는데, 처음에는 그게 너무 생경하게 느껴졌다.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담론을 논하지는 못하더라도 투자와 자본증식에 대한 이야기를 일터에서 하는 것이 괜찮은 것일까?


물론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구성원으로 투자도 하고 치솟는 물가상승에 대비하여 살 궁리를 하는 것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며,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러한 생각들이 스스로에게 닿으며 개인의 일상에 검열 아닌 검열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영리 활동가들이 일상 속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결국 시민의식이 확대되고 시민들의 영향력을 확장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시민활동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활동가 개인의 삶은 너무 옅어져 버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영리 활동가들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개인으로 자유로운 삶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더불어 이렇게 엄격하고 근엄한 활동가의 삶을 선택할 만한 후배 활동가들이 존재할 지도 우려스럽다.


후배 활동가들이 살아온 삶의 배경은 우리 때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다른 시공간을 살아온 그들에게 비영리 활동은 선배들의 치열한 운동과는 다른 형태로 인식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는 개인의 투자가 저성장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디폴트 값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그것마저 훈수를 두는 것은 지혜로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지혜로운 균형감이 필요하다.


그것은 후배활동가들을 향해서도, 우리 스스로를 향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무겁고 엄중한 사회적 가치와 기준을 따지는 방식 말고 보다 유연한 시각과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활동가라는 정체성이 부끄럽지 않도록 한 명의 시민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은 '비건 지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식생활에서 비건을 추구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는 나름 유연한 선택을 할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강제하여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갖는 것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지켜가겠다는 의지로 느껴진다.


이제부터 일상에서 활동 지향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활동가의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을 만큼의 시민의식을 견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자유로운 개인의 삶의 영역을 지켜갈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긴 호흡의 활동을 이어갔으면 한다.

많은 활동가들이 즐거운 일상을 즐기는 개인으로서 건강하고 자유로운 일상과 활동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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