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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Nov 25. 2023

두 달간의 미장반

무위의 시간은 없다

학원에 준비물을 사간 그 날, 나의 첫 수업이 있던 그 시간을 내가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건 왜 일까?

솔직히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그대로 기억하고 살기는 했다. 망각이란 신이 주인 선물이라고 누군가 그러던데, 어떤 기억들은 오히려 망각하지 못하고 투명할 정도로 맑게 남기도 했다.

그 기억들이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기억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나의 기억들은 그렇지 않은 편 이었다. 그래, 나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도 건강하지도 못했다.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내내 그 기억들을 안고 살았다. 언젠가 한번쯤은 괜찮다고 말해주었을 법도 한데, 실은 나는 상처를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법을 배우지를 못했다. 뭐든 배우고 익혀야 제대로 나아갈 수 있었던 나였다. 


그래서 일까?


20살에 겪었던 수능의 실패, 21살에 겪었던 가족간의 화합의 실패, 22살에 겪었던 인간 관계에 실패.


실패의 실패가 아주 길게 연속해서 내내 이어졌다. 어떤 사람은 그런게 대체 무어라고 너 스스로를 옥죄느냐고 쉽사리 말할 수도 있다. 자신도 그런 경우라면 나는 너처럼 하지 않겠다고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온통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별처럼 많다. 비슷하다는 건,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기본적인 의식주는 비슷할 지라도, 성향은 다르다는 말이다. MBTI가 유행이고, 훨씬 이전에는 별자리와 혈액형이 유행이던 시절에 성향 또한 비슷한 무리끼리 묶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도 그렇다는 것에 놀랄 뿐.


나는 이 세상은 온통 다른 별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실패와 너의 실패가 다르고 나의 성공과 너의 성공도 다르다. 똑같은 실패와 똑같은 성공속에서도 각자가 겪는 감정의 무게가 다르다는 말이다. 나는 표현에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고, 머릿속에 그리는 단어들을 밖으로 제대로  내뱉지 않는다.


그런 내가 서비스직을 했을 때, 나는 세상에서 내가 그 일을 제일 잘한다는 착각을 했고, 착각은 당연한 결과로 나를 향해서 부메랑처럼 날카로운 끝으로 날아왔다.


그 시기에 내가 만난 미장반 선생님들은 나의 자존감 지킴이가 되어주었다. 그래서일거였다.


내가 그들을 기억하고, 그 첫 시간을 기억하는 이유가. 


태어나서 칭찬을 들어본 적은 유치원때가 처음 이었다. 교회가 운영하던 유치원이었는데 성경책을 외우면 상으로 달란트를 주기도 하고, 수련회에 따라가면 착한 언니, 오빠들이 우리를 우쭈쭈해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읽을 줄 알자마자 성경책을 외워서 시험을 봤는데 2등을 했다. 2등 상품은 크레파스!! 무려 36가지 색이었다. 크레파스를 받은 나는 얼마나 기뻤던지 그 이후에 짜장면도 사주고, 크리스마스때는 연극에도 출연하기도 했었다. 칭찬을 듣기 위해서!


그 다음엔 학교에서 공부를 해서 칭찬을 받았고, 이후에는 칭찬을 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가족도 칭찬을 하지 않았으니, 누구에게 칭찬을 들으려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그래야만 외모도, 내면도 아름답지 않은 내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나 스스로를 죽이는 것임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나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움직이다보면, 내가 아닌 타인이 투영하는 잘하는 남같은 내가 되어버린다.

<내가> 라고 해도, 진짜 <나>는 아닌 것이다.


그러다보면 나는 사라지고, 세상에 타인들만 존재한다.


나는 그렇게 쌓아온 나의 세상의 탑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몰랐는데, 미장반에서 알게 됐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처음이니 못해도 상관없다는 것, 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그 벽을 다시 허물고, 마르기를 잠깐 기다렸다가 발라야 하는 데, 성격 급한 나는 물기가 촉촉한 벽에 다시 시멘트를 발랐다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경험도 다시 하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말라야 시멘트 반죽이 잘 붙는다, 너무 많이 말라서도 안되고, 너무 물기가 있어도 안된다. 적당함을 잘 알아야 한다. 그게 벽에 시멘트 반죽을 바를 때 중요한 부분이다. 비가 오는 날도, 날씨가 더운 날도, 추운 날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도, 모든 온도와 습도, 다른 조건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멘트 반죽이 흘러내리지도 않고, 딱딱하게 굳어서 갈라지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깨달음이라는 거창한 생각은 아니고, 나의 적당함을 찾자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미장반에 있을 두달 동안 그 길을 한번 찾아보자고. 타인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안달난 10대부터 30대에 들어선 나를 버리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눈치를 채지도 말고, 그냥 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다시 긁고 하는 하루 6시간을 통해서 나를 찾아보자고.


겉으로만 쿨한 척 하며 안으로는 덜덜 떨며 누군가 나를 싫어할까봐 눈치를 보던 과거의 나도 그렇게 벽을 벗기듯이 찢어내 보자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미장반에서의 2달을 보냈다. 2달 내내 나는 벽을 보고 시멘트를 바르고 다시 긁어서 통에 넣고, 믹싱기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바르는 시간들.

이글을 읽는 어떤 사람은 낭비를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낭비의 시간은 없다.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도 실은 나 스스로를 충전하고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려면 그 전에 터널을 걸어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無爲(무위)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시멘트를 바르는 그 시간동안 나는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 이걸 깨달아야지 하고 작정하고 덤벼들었다기 보다는, 하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그런 생각들이 예전의 나를 비우고 다시 채우게 만들었다. 세상을 살면서 그냥 하는 일에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다. 거창하게 걸으면서 눈에 띈 사랑방 신문에서 시작된 위대한 첫 걸음이 아니라, 걷다보니 손에 잡힌 신문이, 활자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글자들을 읽어내는 나의 사소한 습관이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가게 된 직업학교에 달랑 미장반과 타일반 두 개의 반만 있었다는 웃지 못할 우연이 만들어 낸 것 이니 말이다. 


이 모든 건 그냥 걷다가 이루어진 단지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다.


두 달간의 미장반의 경험을 통해서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집에 오면 밥을 두 그릇은 먹는 인간이 되었고, 샤워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쓰게 된 웹소설은 50화 완결도 지을 수 있는 끈기도 배웠다.

늦봄을 지나, 초여름, 그리고 여름이 되던 날, 나는 드디어 타일반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타일반 선생님께 들었다.


두달간 있었던 미장반에서 타일반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 벽을 넘어서 나는 타일반으로 갈 준비를 했다. 내가 미장 연습을 했던 자리는 나보다 다음 기수에 들어온 다른 선생님의 자리로 돌아갔고, 그 선생님에게 나는 믹싱을 하는 법을 알려주는 한 기수 위 선배가 되었다.


그리고 나만 있던 미장반에 여자가 무려 3명이나 들어왔다. 얏호!


하지만, 나는 타일반으로 갔다. 그 전에, 미장 자격증 시험을 보러 저 먼 .. 경기도 안성까지 가는 길고 험난한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단은 타일반으로 옮겨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미장 자격증 시험 준비도!


두달의 미장반에서의 시간을 통해 나는 미장반 에이스(?)가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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