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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현 팀장 Jun 21. 2024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

내가 배우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 이 글은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성장해왔지만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삶과 커리어를 밟아가고 있는 당신을 위한 칼럼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당신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배웠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배우지 못했는지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careerners/223460293877




https://blog.naver.com/careerners/223473549440




저는 최근 두 편에 걸쳐서 자퇴를 고민하고 있거나 자퇴를 한 분들을 위한 칼럼을 작성했습니다. 그것도 꽤나 긴 분량으로 말이죠. 





최종 결과물이 100% 제 만족에 들지 않길래, 무엇이 문제일까를 지난 몇일 동안 고민해 봤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위의 2편의 칼럼을 읽는 대상을 고등학생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니다. 저는 조금 많이 직설적인 편이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전부해 버릴 경우, 고등학생 시절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지독한 회의주의에 사로잡혀서 앞으로의 삶과 커리어를 긍정적으로 가져가는 데 꽤나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희의 글들을 읽는 대부분의 구독자분들은 사회 생활을 할 준비를 하는 취준생이나 열심히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회인들, 즉 성인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을 거친 성인들을 위한 글을 써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학교에서 어떤 것을 배웠고 어떤 것을 배우지 못했는지를 지난 20년 간의 사회 생활과 비교 및 정리해서, 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야 할지를 가늠하는 글을 써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해서, 15~30년 전에 바뀌었어야 할 시스템이 개선되거나 바뀌지 않아서, 결국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글들에서 몇차례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우리나라의 자살률과 출산율의 1등 공신이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어떤 결과에 기인하는 단일 요인은 없습니다만, 가장 공헌도가 큰 주범이 '교육' 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어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학습하도록 강요받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이게 잘 먹혔으나, 시대가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낡고 고루하기 짝이 없는 모델이 되어 버렸죠. 




우리가 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기 위함뿐만 아니라,
졸업 후 '실제 세상'에서 생존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인데,
졸업한 학생들이 생존은 커녕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이것은 명명백백하게 학교가 무언가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그래서 제가 학교를 배웠을 때 느꼈던 감정들과, 사회에서 느꼈던 아쉬움들을 이 글을 빌어서 배설해 보겠습니다. 



1.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무엇일까?



여러분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제가 이렇게 물으시면 대부분의 분들은 국어와 영어와 수학과 사회와 과학을 배웠다고 말할 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careerners/223238273867


그렇다면 제가 위의 글에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 던져봐야 겠네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신가요?
16년 동안 죽어라 공부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야아할지를 
감조차 잡지 못하는 당신의 상태를 말이에요.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하면 쌩뚱맞게 들리실 수 있습니다만, 사실 저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제가 죽을 때까지 매일 같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 일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저는 항상 배우는 것을 사랑해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교를 다니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혹시 당신은 학교를 좋아하셨나요?


저는 학교에서 급우들과 대화를 하고, 장난을 치고, 축구공을 가지고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맞춰서 공부를 하는 것은 싫어했습니다. 제가 당시에 의식하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공부를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3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 번재는, 제가 공부를 하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제가 하는 공부가 실용적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세 번째는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겪었던 사건을 통해서 수학을 몇년 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해봐야 겠네요.


저는 수능에서 수리 영역을 1등급 받았습니다만, 중학교 2학년 때 수학 선생님께서 제게 하셨던 말 때문에 수학이라는 과목을 3~4년 동안 싫어했습니다. 덕분에 7등급에서 1등급까지 복구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죠. 당시 선생님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구체적인 디테일까지는 기억나질 않지만 대략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선생님: 동현아, 너 뭐하고 있니?
동현: 확률 계산하고 있어요.

선생님: 어떤 확률? 교과서에서 나오는 내용이 아닌 것 같네?
동현: 네, 우리나라가 얼마 전 4강을 같잖아요.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에 기사를 얼마 전에 읽어서요. 그래서 얼마 전에 배운 확률를 활용해서 계산해 보려구요.

선생님: 그런건 시험에 안나와. 너 그러다가 시험 망친다? 시험 망쳐서 대학 안갈래? 얼른 집어넣고 선생님이 시킨 문제나 풀어.




제 기억이 맞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저는 축구와 야구에 빠져 있는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수학 시간에 배웠던 확률로 승률을 점쳐서 친구들끼리 내기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죠. 다행히 눈치가 빠른(?) 저는 친구들과의 내기를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제가 중학교 때 배운 확률은 저의 승산을 높여주는 아주 유용한 도구였습니다. 물론 당시에 제가 배웠던 확률은 기초적인 수준이었기에 제 계산법은 모두 엉터리였을테지만 말이죠. 


하지만 수학은 제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수학이라는 도구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난생 처음으로 삶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수학이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깨닫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들었지만, 선생님한테 혼난 이후로는 저는 수업 시간에 느리게 흘러가는 시계바늘이나 쳐다보면서 시간을 죽이는 방식으로 수학을 활용했습니다. (아직도 수업이 끝나려면 40분이나 남았네. 이 말은 2,400초나 남았다는 거잖아. 저 선생이 5분 일찍 끝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일주일에 저 양반이 5번 들어오고, 지난 학기가 몇 주였으니까... 거지 같구만...)


저는 위에서 언급한 사례와 같이, 저는 학교에서 아주 유용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 눈치를 보는 법
• 권위에 복종하는 법
• 선생님을 따라하는 법
• 지식을 암기하는 법
• 생각하지 않는 법
•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법



이 지식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굉장히 유용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법'은 굉장히 쓸모가 있었습니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어른들이 선생님들이 알려주는 것만 열심히 공부하면, 미래에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내용 말이죠. 


저는 고등학생 때 중학생 동창이 학교 폭력으로 인해서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친구가 참아왔던 것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이런 의문을 품어서는 안됐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의문들을 갖기 시작한다는 것은, 제 미래를 망치는 길이었으니까 말이죠.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는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제가 to 부정사와 be to 용법의 차이가 이해가 안된다고 질문을 했더니, 선생님은 "서류 업무도 바빠죽겠는데 이런 쉬운 것으로 물어보면 어떻게 하니?" 라면서 제게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고 질문을 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을 하고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니, 
저는 생각을 하는 방법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은 것이면, 선생님이 대충 넘어가는 것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군.'이라는 매우 실용적인 기적의 논리로 저는 이 이후로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을 질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질문을 하는 것을 멈추자 친구들도 좋아했습니다. 매 시간마다 쉬는 시간을 1~2분을 갉아 먹는 저라는 녀석 때문에 불만을 품고 있던 친구들은, 의문을 갖지 않는 저를 치켜세워 주었습니다. 


한번은 제 질문에 답변하느라 선생님께서 늘 수업을 늦게 끝내주시길래, 저는 수업을 마무리하고 제 질문에 답변해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그러면 질문이 많아지기 때문에 안된다라는 선생님의 답변은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저보다는 남을 위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충실히 사회화(socializaiton) 되어갔습니다. 


이런 식으로 비슷하게 저는 학교에서 수동적으로 학습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실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간에, 저는 선생님들과 어른들 의견을 카피하는 법을 배웠고, 그들이 제작한 교과서와 문제집의 관점을 저의 관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학교에서 남들의 관점을 모방하며 저의 프레임을 형성해 나갔습니다.


저는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만,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남들보다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고 취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사회에서는 학교에서 알려준 방법들이 잘 먹히지 않았습니다.




나는 해야만 하는 것을 했다. 달리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2. 내가 사회에서 느낀 것은 무엇인가?



제가 약 20년이라는 기간 동안 사회에서 느낀 것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졸라' 쓸모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잘 먹히는 줄 알았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선배, 상사, 대표, 고객들의 옳다는 말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기면서 살아가면서, 저는 저를 포기하는 대가로 소정의 월급과 보너스를 받았습니다. 




성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모든 좋은 마취제가 다 그렇듯이
그때까지는 꽤나 못마땅하다고 느꼈던 세계와 완전히 타협하기에 이르렀다.
―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저는 이게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진짜 '인생(人生)'인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남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돈을 모으고, 애인과 결혼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아서 정년까지 일을 하면 저도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씩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제가 '책임'이라는 것을 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제 방식이 먹히지 않던 것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상사가 작년에 했던 것처럼, 올해도 똑같이 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 잘못이 전적으로 제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처럼, 상사가 알려준 대로 했을 뿐인데, 이게 왜 제 잘못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회사에서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남들과 똑같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이 해서 오히려 망하는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죠. 예를 들어, 주식 투자를 남들과 똑같이 해서 망하거나, 이직 준비를 남들과 똑같이 해서 떨어지거나, 타인의 조언을 듣고 연애를 하다가 망치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당연했습니다.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내가 남들과 똑같이 한다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올 수는 없던 것이었죠. 


왜 이제까지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저는 헤어진 여친의 말처럼 제가 '바보-멍청이-멍게-해삼-말미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생각없이 살아온 것이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저는 이렇게 완벽하게 사회화된 인간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3년 동안 투병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https://blog.naver.com/careerners/222699352206



당신이 제가 발행한 글들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분이시라면 잘 아시겠지만, 저는 제 몸에 큰 병이 생기고 나서야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엄밀히 말해서, 그동안 내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관성적으로 학교 선생님이 제게 말씀해주신,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라"는 말처럼,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나가다가 제 몸에 이상 신호가 생기는 줄도 모르고 달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일을 하지 않고 병상에서, 집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이곳저곳에서 애초에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꼼꼼히 체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은 복합적이기에 단일적인 요소를 뽑을 수는 없습니다만, 이 글의 주제가 교육 시스템을 까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냥 확정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제가 지목한 가장 큰 범인은 철저하게 효율적인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시스템, 
남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무시하는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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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제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배우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가 다른 것 같이,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제 친구는 10년이 넘게 헬스를 하면서 몸에 근육을 기르는 성장을 추구하지만, 저는 제 뇌세포의 근육을 기르는 성장을 추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대기업에서 일을 하는 커리어를 선호하지만, 저는 I(ntrovert) 성향을 지닌 사람으로서 남들의 인정보다는 제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커리어를 원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모두가 똑같은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모두가 똑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모두가 똑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주제가 '학교'라서 그렇지, 이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리고 이 글을 작성하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너무 잘 받아와서, 우리가 무슨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채, 자본주의의 가장 더러운 사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강요해왔습니다. 



• 공부를 잘하는 것이 최고다.
• 좋은 대학교에 가면 배우자의 얼굴이 바뀐다.
•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한 삶이다.
•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다.
•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저는 학교라는 장소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인생에서 돈이 가장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이며,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퍼뜨린 주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통치를 받으며
우리의 생각을 주조하고, 취향을 형성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



이러한 사상을 주입받은 청년들은 왜 1년도 안돼서 퇴사를 하는 것일까요? 그 좋은 직장을 6개월 만에 팽개치고 집에서 아무일도 안하겠다고 선언하는 청년들은 어른들의 말처럼 의지가 없고, 배가 불러서 하는 말일까요? 

청년들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명확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자신이 살아온 삶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3년 동안 사색을 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고민했던 시간처럼 말이죠. 

우리는 학교에셔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은 어른들의 말처럼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회사를 들어갔는데, 거기서도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니, 더 현실적으로,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라고 말하는 것을 포함해서, 기업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제가 뇌와 심장을 수술할 정도로 큰 병에 걸린 것은 제 잘못입니다만, 저는 부분적으로나마 이 사회의 시스템이 제 생각을 거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옳은 삶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을 위해서 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키만 크고 수염만 길게 자란 너무나 말을 잘 듣는 아이같은 아이였던 것이죠.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면서 살아갑니다. 학교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쉴 수 있었던 것처럼, 청년들은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쉴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 것이죠. 

아니, 18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는데도 자신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상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휴대폰으로 약속에 못나간다고 말하는 현실을 자각하면서 그들은 얼마나 비통한 심정을 느꼈을까요? 우리는 언제까지 시계의 분침초침만을 쳐다보면서 내가 누리고 싶은 삶을 위해서 '기다려야', 현재를 '희생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모든 교육 시스템은 특정 종류의 인간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 앨런 블룸(Allan Bloom)


4. 이 나라의 시스템은 자발적 노예를 생산한다



https://blog.naver.com/careerners/222220371649




저희 커리어너스가 사용하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제가 위의 글에서 상세하게 설명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수동적 프레임에 입각해서 살 것을 강요해왔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스토리로 예시를 든 것처럼, 자신의 능동적 프레임에 입각해서 한 행동들은 모두 악(惡, evil)이라고 규정하며, 자신들이 미리 정해놓은 선(善, good)에 해당하는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체벌과 벌점, 그리고 학교생활기록부라는 잔혹한 방식으로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찍습니다. 

저는 가끔 요즘 청년들이 배가 불러서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어른들을 볼 때면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가는 것을 회피하는 이유는 중소기업이라는 커리어 자체가 낙인이 되어서 자신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데, 이러한 낙인을 찍는 사람이 바로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저런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죠. (뇌과학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이를 의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큰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사람이 죽는다면 이는 큰 잘못입니다.)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들려서 거부감이 드실 수 있겠습니다만, 이곳은 제 블로그이므로 하고 싶은 말은 말해야 겠습니다. 

저는 자기 자신이 낙인을 만든 당사자인지도 모르고, 낙인을 찍고 살아가는 사람을 볼 때면, 저는 자신이 자유를 얻었다고 착각하는 노예들이 생각납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노예를 고용한다면 둘 중에 어떤 노예를 고를 것인가요?



A. 자신이 노예인 줄 알고 있는 노예
B. 자신이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노예



학교 성적으로 노예의 등급을 나누고, 학교 서열로 노예의 등급을 나누고, 연봉으로 노예의 등급을 나누고, 자신이 타고 다니는 차로 등급을 나누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로 등급을 나누고, 자신의 위치로 등급을 나누는 사람들은 A에 해당할가요, B에 해당할까요?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의 모습은 마치 약 100년 전에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멋진 신세계》라는 작품에서 소름끼치게 묘사했던 장면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 그들이 받는 길들이기 훈련은 지정된 궤도 안에서만 달리게끔 목책을 둘러놓는 셈입니다. 그들에게는 미리 운명이 결정되어 있으므로 어쩔 수가 없어요. 숙성기가 끝난 다음이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병 속에 머무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죠. 유아기와 태아기의 고정관념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병 속에 갇혀 살아갑니다. 물론 우리들도 저마다 병 속에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

“전반적인 개념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설명하고는 했다. 그 까닭은 물론 그들이 똑똑하게 일을 수행하도록 만들려면 어떤 개괄적인 인식을 주입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훌륭하고 행복한 사회 구성원이 되려면 가능한 한 그런 인식은 조금만 깨우쳐줘야 했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독특한 개성이란 미덕과 행복에 이바지하지만 보편성이란 지적인 필요악이기 때문이다. (···)

(···) 바퀴들은 끊임없이 돌아가야 하지만 누가 돌보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 바퀴들을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 축에 달린 바퀴들만큼이나 꿋꿋한 사람들이, 건전한 사람들이, 순종하는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삶에서 안정을 찾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

《멋진 신세계》




https://blog.naver.com/careerners/223411420575


자신이 자유를 얻었다고 착각하는 노예보다는 위 글에서 설명했던 노예의 신분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에픽테토스와 같은 사람이 더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요?

제가 비판하는 사람들, 이 글을 읽는 당신, 그리고 제 스스로도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쉽고 자연스럽게 남들을 평가해왔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쉽게 남들을 평가해왔고, 제가 날린 화살이 제게 돌아와 제 심장과 뇌를 망가뜨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만들어 내고 있는 수많은 화살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인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삶을 살아간다.
― 가브리엘 외팅겐(Gabriele Oettingen)


5. 결론: 우리가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것


글이 너무 길이졌으니, 마무리를 해봐야 겠습니다. 

당신이 커리어너스의 구독자라면, 어쩌면 지금까지의 글을 읽고 혼선을 겪으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careerners/223344378920



그러니까, 제가 교육 시스템의 원형인 학교를 강도높게 비판한 나머지, 제가 그동안 위와 같은 글에서 '수동적 프레임'도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 내용이 다 헛된 것이 아닌지가 궁금할 수 있습니다. 혹은 당신이 "학교는 왠만하면 다니는 것이 좋다"라는 글을 읽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자퇴를 고려했던 학생이라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글에서 강도높게 교육 시스템을 비판했습니다만, 학교는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여전히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없었다면 애초에 저는 이런 글을 쓸 정도의 지식을 가지지도 못했을 것이며, 학교가 없었다면 저는 제가 노예로 살아왔다는 사실마저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학교는 어딘가에 얽매여 있는 삶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나답게 살기 위한 기초 체력을 쌓게 해주는 나쁘지 않은 곳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글에서 강도높게 비판한 이유는 학교가 더 나아지기 바라기 때문입니다. 제가 평생동안 자라온 이 곳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의 한계가 과거보다 훨씬 명확해 졌습니다. 이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취업을 못해서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기거나, 남들과의 비교로 자신의 목숨을 끊거나, 6등급이라는 낙인 때문에 늘 우울증 약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바라보는 세상의 피해자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피해자이다.
―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저는 우리나라를 빛 좋은 개살구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외형은 탄탄해 보이지만, 속으로 보이는 내형은 암세포가 창궐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는 실용적 이상주의(Pragmatic Idealism)자로서, 이 글을 통해서 저와 당신이 이 나라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시작하기는 어렵지만, 한 번 시작한 후에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수동적 프레임에 입각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를 인지하고, 나의 능동적 프레임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남들에게 낙인을 찍고 비교하려 하는 시스템에 의해서 학습된 나의 사회적 본능을 억누르고, 타인들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존중하고 격려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형식의 혁명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혁명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영혼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글이 당신의 내면에 혁명의 불꽃을 피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도 타인의 내면에 불꽃을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p.s.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무엇(what)'을 생각할지는 잘 가르쳐줍니다. 그 어떤 곳보다 효율적으로요.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how)' 생각할지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는 불가능합니다. 당신 개인만큼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에 대한 방법을 설명하는 글은 저희 블로그에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 글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careerners/223128436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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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 후 검정고시를 고민하는 친구들을 위한 초현실적 조언 (ft. 도대체 학교는 왜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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