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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지 Dec 17. 2021

말라위의 결혼식은 참석자 모두의 행사다

말라위 부자의 결혼식 이야기 

 나는 지금까지 친구들의 결혼식에 단 한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돌잔치를 하는 동안 나는 항상 한국에 있지 않았다. 그런 미안함 때문일까, 나는 외국에서 누군가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도 가지 않았다. 정말 오래된 친구들의 결혼식도 가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이 있으니, 대충 알고 지낸 사람들이나 새로 사귄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돼 버렸는데, 릴롱궤로 거주지를 옮겨 생활하다 보니 사교의 목적으로 현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초대한 친구는 릴롱궤에 위치한 모 사립학교(초/중/고) 교장으로 젊은 나이에 교장인 게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역시나 백두혈통이었다. 내 이름이 씌여진 초대 카드를 보니 결혼식 장소는 Area 44에 위치한 쿰발리(Kumbali) 롯지였고, 평소 쿰발리에 가 보고 싶었던 나는 결혼식 초대를 수락했다.


곧 다가오는 우기와 크리스마스로 인해 매년 11월은 결혼식 성수기라고 한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느라 돈 들어갈 일이 많기 때문에 그 전에 결혼식을 서두르려는 것이다. 오후 4시에 결혼식이 시작된다는 초대 카드와 달리, 15분 정도 늦어서 눈치를 보며 들어가보니 역시나 결혼식은 시작도 안했다. 점심 때 쯤 진행하는 일반적인 결혼식과 달리 이 친구의 결혼식은 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일몰 전에 시작하기로 했다고 했다. 늦게 도착한 덕택에 시원한 바람을 내뿜는 대형 선풍기 바로 앞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앞줄의 사람들은 더운지 연신 부채를 부치고 엄마 품에 안긴 아기들도 칭얼대는데, 나는 선풍기 바람을 쐬며 여유 있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보통 현지인의 결혼식은 치텐제(Chitenje 아프리카 옷감)로 만든 전통의상을 입은 하객들이 많은데, 이 친구의 결혼식은 대부분 정장, 드레스를 입은 하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사진에 다 담진 못했지만 정말 화려하고 멋진 옷을 입은 여성들도 많아서 마치 패션쇼를 방불케 했다. 나는 하객룩이라 할 것 없이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포멀한 옷을 입고 갔는데, 형형색색의 터번을 쓴 여성들을 보니 이것이 바로 상류사회인가 싶었다. 주인공들의 입장을 기다리는 하객들 앞에서 결혼식 진행자들은 화동들의 동선을 맞추고 입장 순서를 리마인드 했다. 결혼식 리허설을 하객들 앞에서 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전자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신랑 신부가 입장했는데, 말라위 방식으로 환호하는 분위기는 마치 서구문화와 전통문화의 조화를 보여주는 듯 했다. 입안의 혀를 좌우로 움직여 내는 소리는 어떤 악기보다 흥을 돋우는 능력이 뛰어나다. 결혼식은 모두 영어로 진행돼서 이해하기가 쉬웠지만 주례, 축사, 서명 등의 순서가 길어서 조금은 지루했다.


결혼식 중간 중간 바이올린 연주와 노래가 있어서 하객들도 신나게 즐기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하객들 앞에서 결혼에 대한 서약을 한 신랑과 신부가 여러 서류에 서명을 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하객들은 "싸이나(Sign)"라고 노래를 부르며 어서 서명 하라고 흥겹게 재촉했다. 서명 시간이 꽤 길어서 나중엔 하객들도 지쳤는지 싸이나~ 노래는 소리가 작아졌다. 몇몇 하객들은 귓속말로 "도대체 서류가 몇 장이냐"며 술렁이기도 했다.

결혼식을 마친 후 피로연은 쿰발리의 정원으로 옮겨 진행됐다. 쿰발리의 내부는 목재로 장식돼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고, 쿰발리의 땅 전체가 꽤 넓어서 다양한 목적의 건물들이 많았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화장실에 손을 씻으러 갔는데 비누가 없었던 점이었다. 세면대 옆에 비누가 없다고 직원들에게 말하니, 한 직원이 "결혼식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는 날은 비누가 사라지기도 해서 아예 비누를 꺼내놓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그렇지 코시국에 비누를 내놓지 않는 건 좀 황당하기도 했다. 다행히 가방 안에 손소독제가 있어서 나의 위생은 챙길 수 있었다.

잔디에 물을 잘 주지 않는 건지 듬성듬성 메마른 잔디들이 보였다. 하긴 워낙 넓어서 잔디에 물을 풍족하게 주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롯지 직원들이 하객들이 앉을 테이블과 의자를 셋팅하고, 뷔페를 위한 준비를 마칠 무렵 해가 져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피로연이 열렸다. 결혼식에는 참석 안하고 피로연만 참석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신랑 측, 신부 측 하객들이 따로 나뉘어 앉은 걸 보니 양측 집안 모두 하객들의 적정 비율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정원 한쪽에는 포토월이 있어서 하객들이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젊은 루이 암스트롱 같은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테이블을 돌아다니니 마치 디너쇼의 한 장면 같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를 불렀는데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 잘 감상할 수 있었다. 이윽고 하객들을 대상으로 신랑과 신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댄스타임이 열렸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 춤을 출 수 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추는 바람에 나의 춤은 기록 당하고 말았다. 저녁 8시가 넘자 피로가 몰려왔던 나는 피로연이 끝날 때까지 있으려다, 아무래도 이 밤을 찢어버릴 것 같은 피로연 분위기를 보고 안되겠다 싶어 귀가를 결정했다. 방명록에 결혼 축하 메시지를 남기는데 할당된 한 페이지를 모두 채워야 할 것 같아 내가 잘(자주) 그리는 산, 나무, 해, 하트를 그렸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러하듯 말라위도 결혼식에 막대한 비용을 치룬다. 내가 결혼식을 참석하고 나서 느낀 점은 결혼식이 단순한 개인과 개인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사회공동체에서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즐길거리가 부족한 사회에서는 결혼식을 통해 패션쇼, 콘서트, 댄스대회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사교의 장으로써의 기능도 하기 때문에 결혼식은 참석자 모두의 행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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