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다지 Dec 17. 2021

인도인이 자살하던 날

우간다의 인도인들

출처: https://youtu.be/23pbmbDlyoA

 인도에 한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우간다에서 일하는 동안 인도인들을 가까운 위치에서 지켜보며 굳이 인도여행에 대한 로망을 갖지 않게 되었다. 한번 아니면 뒤도 안 돌아봤던 나는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어제의 적과도 웃으며 악수하는 인도인들이 무척 신기했고, 그들의 유연함을 통해 마음 속 원한이나 증오를 감추고 이익을 좇는 자세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었다.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이 파악했다는 전형적인 인도인의 모습-서로를 질투하고 이간질하는-은 민족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일 뿐이었다. 때로는 상급자에게 아부를 떠느라 같은 인도인 직원들을 험담하고, 나이가 한참 어린 한국인 직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 모두 결국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발악이었다.


적은 월급을 아껴 고국에 보낼 요량으로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돈을 모으느라 밀크티 한 잔, 짜파티 한 장에도 인색하여 늘 내게 계산을 종용했던 그들도 한 주가 끝나는 토요일 저녁이 되면 멋진 옷차림으로 클럽에 가서 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철이 없었던 나는 언젠가 "치불리 Chibuli"라는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너희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잖아"라며 장난처럼 말했고, 그 말에 화가 난 친구는 내 머리를 쥐어 박았다. 인도인들은 가난에 대한 수치심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졌다.


물론 돈 많은 인도인 친구들도 많아서 술이고 밥이고 몽땅 책임지는 통큰 대접도 수없이 받았다. 태생적인 수전노는 아무도 없었다. 주머니에 충분한 돈이 있으면 인심 좋게 베풀 수 있는 것이 인간이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은 어디에서나 틀리지 않았다. 만 실링, 2만 실링에는 쪼잔할 정도로 집요하게 굴면서도 기분 좋을 때는 10만 실링, 100만 실링에는 눈 하나 꿈쩍 안하는 사람들이 돈 많은 인도인들이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우간다의 유명한 갑부는 수딜(Sudhir)이라는 인도인이었는데 그가 카지노에 떴다 하면 그의 돈을 따기 위해 캄팔라의 모든 도박꾼들이 몰려들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무얼 해서 돈을 잃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돈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돈을 잃었을 때 남는 건 절망 뿐이다. 2013년 9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에 시내를 산책하던 나는 한 건물 앞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을 본 일이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인파를 지나치려던 나의 시선은 건물 난간에 서 있는 한 남자에게 향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가 자살을 시도하려고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 건물 아래서 남자를 지켜보는 인파의 대부분은 우간다인들이었는데 자살하려는 남자를 향해 박수를 치고 환호하였다. 장난 가득한 분위기 탓에 나 또한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그 곳을 떠났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인도인이 투신자살을 했다는 소식에 캄팔라의 거리가 소란스러워졌다. 그가 정말 난간 너머로 몸을 던질 줄 몰랐던 건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인파의 분위기 탓이었을까.


자살한 이는 구자라트(Gujarat) 출신으로 여러 군데에서 돈을 빌려 도박으로 날리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했다. 돈을 갚을 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생(生)의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절망하는 인도인을 향한 비웃음과 박수, 환호성과 함께였다. 누군가 촬영한 그의 자살은 왓츠앱과 유튜브를 떠돌았고 바닥에 떨어진 주검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이 애도 대신 휘파람을 불며 즐거워 하는 모습은 소름끼치도록 끔찍했다. 절망에 빠진 인도인에게 어서 뛰어내리라며 충동질 하는 모습은 인간성을 포기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 후 인도인들은 자살한 남자의 장례식을 치루는 한편 그의 가족에게도 얼마간의 돈을 보내주었다고 했다. 악착같이 돈을 벌며 부(富)와 가족을 자가증식하듯이 늘려가는 사람들이라고 여겼던 인도인들 또한 유혹에 빠져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절망에 빠져 삶을 놓아버리는 선택을 하기도 하는 보통의 인간이었다. 죽음 앞에서 어느 나라 사람은 이렇고, 어느 나라 사람은 저렇다는 건 없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기도, 희망 속에서 절망만 찾으려 애쓰기도 하는 게 한 없이 약한 우리 인간들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짐승처럼 말하지 말고 영어로 말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