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음악 전담을 맡으며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있다. 매일 리코더를 연습하자는 다짐이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 음악실에서 리코더를 부는 일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닝루틴이 되었다. 문제는 2학기부터였다. 학예회 때문에 음악실에서 외부 강사가 난타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졸지에 난 음악실이 아닌 교실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아침에 음악실에서 몇 번 연습하다가 일찍 오신 국악강사님과 민망하게 마주친 이후로는 연습을 접었다. 아쉽기 그지 없었다.
일주일에 두 세시간 몰아서 집중 연습하는 것도 좋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지속할 때 실력이 크게 향상되는 경험한 터였다. 작년 2학기가 그랬다. 리코더 공연을 앞두고 난 패닉에 빠졌다. 멋진 홀을 예약하고 손님들은 모셔 놓고 그 앞에서 실수를 할까봐 오금이 다 저렸다. 내가 왜 이런 걸 시작해서 사서 고생이냐 싶었다.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연습뿐이었다. 그래서 짬만 나면 계속 똑같은 곡을 불었다. 처음에는 불가능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악기가 손에 붙었다. 소리가 안정되는걸 내 자신도 느끼니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의 한계를 딛고 나를 넘어서는 경험이었다.
새로운 행복을 찾은 기분이 이런 것일까. 어제와 다른 내가 되는 순간이었다. 또 다시 이런 경험을 하고 싶었다. 악보에 있는 음표가 만족스럽게 내 귀로 전달될 때의 뿌듯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루틴을 이어갈 다른 장소, 시간을 찾아야 했다.
보조 가방에 리코더를 늘 가지고 다니며 기회를 엿보았다. 과학실에서 과학 수업을 할 때에는 쉬는 시간 10분을 이용했다. 교실로 수업을 들어갈 때에는 체육관 강당의 빈 공간에서 연습을 했다. 식사 후 정리를 마친 급식실에서도 악기를 불어보았다. 그러다가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 학교는 3-4학년은 5교시까지 수업을 하고 식사를 하고 5-6학년은 4교시 후 배식을 받는다. 배식 시차 때문에 한 층 복도 전체가 모두 비는 시간이 발생한다. 교과실 바로 옆에 있는 교실 담임쌤은 동학년을 함께 했었던 막역한 사이다. 심지어 내가 과학을 들어가는 반이 아닌가! 텅빈 복도, 텅빈 교실이라니! 20분간의 자유가 참 소중하다. 내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끝내는 시간이 바로 이 교실 친구들이 교실 불을 끄고 급식실로 향하는 시간이 된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오는 20분 동안 난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에서 리코더 연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반 담임 쌤에게도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유레카! 역시 방법이 있었다. 점심 시간에 리코더를 연습하니 또 다른 장점이 생겼다.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놀이를 하던 아이들 중 몇몇이 내 주변에 오더니 함께 리코더 합주를 하자고 제안해 오는 것이다.
집에서 연습해왔다는 곡도 들려주고 어려운 악보도 프린트해 와서 같이 연주하자고 청하기도 한다. 심지어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오늘도 점심에 우리 반 오실꺼죠?"
라고 물어보며 리코더 연습하러 꼭 오라고 말해준다. 책을 보는 어린이가 있길래 시끄러울까봐 나간다고 했더니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