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1초만에 '카라바조'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그에 대해서 알게 된건 얼마 되지 않는다.
올 여름 바로크 미술책을 넘기던 나는 익숙한 악기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스톱'을 외쳤다. 네가 왜 거기서 나오는 거니.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지만 분명 리코더였다.
기타같이 생긴 악기 류트를 켜는 사람이 이 그림의 주인공이다. 그 밑에 악보도 보이고 바이올린도 있다. 악보 옆에 삼각형으로 된 신기한 악기도 있고 마지막으로 두둥~! 나의 관심사 '리코더'가 화면 하단부에 자리한다. 허리가 잘록한 브레산 식은 아니지만 앞에 7개의 홀을 가진 르네상스식 리코더가 맞다. 자다가도 리코더 소리만 들으면 번쩍 일어나는 내가 바로크시대의 그림에서 리코더를 찾았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군가 알고 싶어졌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카라바조'는 이탈리아 화가다. 157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1610년 3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와 동명이인이다. 나이는 더 어리다. 태어나 보니 미켈란젤로라는 위대한 화가가 세상에 먼저 이름을 알렸다. 따라서 자신의 출신 지역 카라바조를 예명삼아 활동할 수 밖에 없던 비운의 사나이다.
우리 나라에는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이탈리아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한가보다. 유로화 이전 이탈리아 화폐에도 그의 얼굴이 등장했다고 하니 한국사람으로 따지면 이순신, 세종대왕 급인 거다. 이탈리아에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3대 화가로 손꼽히며 국민적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기존의 질서를 확 탈피하는 본인만의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다. 특히 어둠과 빛을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알았고 성화 속 인물들을 실제 삶에서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사람처럼 그렸다.
카라바조의 그림 중에는 까만 배경이 많다. 인물에는 환한 빛으로 핀조명을 쓰듯 스포트라이트가 펼쳐진다. 과연 드라마틱한 표현의 대가답다. 연극적인 효과가 가득한 그의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나도 그 현장을 지금 함께 참여하며 관람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더욱 몰입하게 된다.
'류트연주자'는 다양한 버전이 남아있다. 맨 처음 작품은 뉴욕메트로폴리탄에서 볼 수 있으며 아래 그림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아타슈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류트연주자는 변함이 없으나 아래 그림에서는 리코더가 빠졌다. 대신 꽃병과 과일이 왼쪽에 자리한다. 꽃과 과일은 금방 시들고 썪는다. '바니타스' 즉 인생 무상, 화무십일홍의 교훈을 전달하는 상징이 잘 나타난다.
우연히 발견한 그의 그림 속 '리코더' 덕분에 '카라바조'는 나의 최애 작가로 등극했다. 마네, 모네, 고흐만 알았지 카라바조는 낯설었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만 바로크 미술 3대장으로 외웠지 그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내 마음에 일번 화가로 저장하게 된 것은 다 '리코더' 덕분이다.
지금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쉽게도 그의 그림 '류트 연주자'는 이번 전시 목록에는 없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다른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탈리아에 가지 않아도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오픈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그의 작품을 비롯한 바로크 시대의 명화 57점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멋진 전시회였다. 관심있는 분들은 꼭 방문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