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오글 글쓰기 클럽 탈주기
나만 이상한 게 아니어서 다행이야
육아휴직 중인 후배와 일 년 만에 만났다. 서로 근황 토크를 하는 중에 글쓰기 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저 얼마 전 온라인 글쓰기 모임 나갔었어요. 집에서 기저귀 찬 아기랑만 하루 종일 있으려니 무료해서요. 그런데 영 맘에 들지 않아서 곧 그만두었어요."
"왜?"
"첫째, 너무 오글거렸어요. 하나도 안 감동적인데 서로 다 막 칭찬해 줘요. "
나도 이런 경험이 있어서 박장대소를 했다. 나 역시 동화 쓰기를 배우다가 6개월 만에 오글거려서 그만둔 전력이 있다. 음, 마치 가요무대 방청객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발라드 가수 팬인데 미스터트롯 방청석에 앉아 있어서 마지못해 박수치는 그 느낌. 다들 좋다는데 나는 감동이 없으니 영 찜찜했다. 글쓰기 모임에서 서로 하는 이야기는 서로 상처주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공허한 메아리였다.
가끔 동료장학 공개수업을 할 때 서로 서로 칭찬하는 그런 분위기와도 비슷했다. 그 수업 전혀 안봤어도 나는 협의록을 쓸 수 있다. 활발한 상호작용, 동기유발이 좋았다, 유의미한 학습활동 등의 마법의 단어가 있다. 내가 가입한 동화 모임 수강생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생긴 문제인 줄 알았는데 이거 보편적인 거구나. 장르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둘째, 모임을 주재하시는 분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 출신이세요. 그런데 이 분이 첨삭해 주신다고 하는 게 솔직히 맘에 안 들어요. 대입 논술시험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 글을 주술관계나 문장 호응, 맞춤법 정도만 손 봐줄 수 있는 거지, 전체적인 아이디어나 이런 건 건드릴 수 없는 거잖아요."
와, 이거 나도 진짜 공감한다. 합평이라는 것이 독자에게 와닿을까를 고민하는 건 맞는데 솔직히 말로 두드려 맞는 거 이것도 속상하고 상처받는다. 개인의 취향인지라 기준도 모호하고 말이다.
"셋째, 글쓰기 모임에서 제시한 책이 제 맘에 안 들어요. 문장 수집 정도의 책인데 사람들은 좋다고 하니 별 수 있나요."
취향에 맞는 글쓰기 공동체를 만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같은 장르 안에서도 수많은 색깔이 있으니 서로의 선호는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난 나만 끈덕지게 왜 뭘 오래 배우질 못하나 자책했는데 네 말을 들으니 뭔가 위로가 된다. 오글거리면 탈출할 수 밖에 없잖아."
서로의 글쓰기 공동체 체험 탈주기를 나누었더니 속이 다 시원했다. 수업도 글쓰기도 예술이라지만 모든 건 다 취향이란게 있는 법. 남의 말보다 내가 느끼는 걸 얼마나 진실하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법이니 너무 팔랑귀가 되면 안 되겠다. 반고흐도 생전에 그림 딱 한 점 팔았다고 하지 않는가. 난 무엇에 감동하는지 잘 살펴봐야지. 그리고 잘 기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