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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치기 해변과 성산일출봉

올레길 1구간(하)

by 슈히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서둘러 인근 식당으로 들어갔다. 상호는 바다 풍경이었다. 15시 30분부터 재료 준비 시간이라는데, 시간을 확인하니 아슬아슬하게 15시 28분이었다.

전복 뚝배기와 회국수 사이에서 고민했다. 밥과 면 중에 뭘 먹을지, 갈등이 생겼다.

‘어제는 회덮밥 먹었으니, 오늘은 회국수를 먹자!’

결단력 있게 면 요리를 선택했다.

옥구슬 씨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곧 음식이 나왔다. 점원들은 외국인들이었다. 아마도 동남아인 같았다. 면과 회를 비벼 섞어 먹으라는 설명 대신, 손으로 버무리는 시늉을 했다. 이윽고, 그들은 퇴근했다.

옥구슬 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끊었다. 서둘러 식사했다. 음식은 싱싱했고, 남김없이 싹쓸이했다. 반찬에서 짧은 머리칼이 한 가닥 나왔으나, 건져내고 식사에 열중했다. 몸이 지쳐서 따질 기운도 없었고, 좋은 곳에 왔는데 그런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업주에게 물었다.

“힘들다는 제주어로 어떻게 말해요?”

“못쩐지다.”

“못 견디다는 말로 들리네요.”

열정적인 섭취를 마치자, 창 너머로 노랑 반소매 상의를 입은 사내가 지나갔다. 그동안 사진으로 줄곧 봐서 낯익은 모습이었다. 영락없는 기복 오빠였다.

“여기예요!”

내가 소리치자,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화장실, 화장실!”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서둘러 계산하고, 자리를 떴다. 식당 사장님이 인사했다.

“잘 갑서예.”

밖으로 나오자, 기복 오빠는 흡연 중이었다.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선물이요.”

그도 뭍에서 준비한 선물을 내게 건넸다. 선물을 주고받는 훈훈한 첫 만남이었다.

기복 오빠는 선물을 펼쳐 들고 성산일출봉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옷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이 사진을 단체 대화방에 올리자, 누군가 질문했다.

“들고 있는 건 뭐예요?”

“제가 입던 옷 벗어드렸어요.”

종점인 광치기 해변으로 가는 중, 잠시 방향을 헤맸다.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서, 갈팡질팡했다. 기복 오빠는 휴대전화를 보며 긴가민가했다.

“어디지?”

근처에서 대화 중이던 도민 중 한 분이 친절하게 길을 일러주었다.



광치기 해변

썰물 때면 드넓은 평야와 같은 암반 지대가 펼쳐진다. 그 모습이 광야 같다고 하여 광치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광치기는 제주어로 빌레너럭바위가 넓다는 뜻. 해조류, 패류, 어류가 풍부하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복 오빠는 본인 모습을 사진 찍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번거로웠지만 순순히 따랐다. 그는 내가 사진을 못 찍는다며, 투덜거렸다.

“그 자세 말고 다른 모습도 좀 취해봐요! 식상하잖아요!”

그가 즐겨하는 고정적인 동작이 있는데, 하도 많이 봐서 변화가 필요했다.

도장 보관함에서 도장을 꺼냈는데, 2구간 시작 도장뿐이었다.

“어? 1구간 마지막 도장이 필요한데. 왜 2구간 밖에 없지?”

당황했다. 다행히 도장이 하나 더 있었고, 그걸 기복 오빠가 알아차렸다.

“천재다, 천재!”

환호성을 질렀다. 마지막 도장을 찍으니, 시흥 초등학교의 모습이 아로새겨졌다. 뿌듯했다. 목표를 달성했고, 무사히 인증에 성공했다. 주변에 활짝 핀 유채밭에 들어가 기복 오빠와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기복 오빠가 함께 온 친구에게 전화해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인근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와서, 고작 카페라니! 관광하려고 차 빌린 거 아니에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축구 보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대요.”

그런데, 셋이 만나서 또 카페를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모두 식사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배가 안 고팠기 때문이었다.

카페에 갔다. 빵을 먹고, 음료를 마셨다. 음료값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해가 저무니, 낮과는 달리 해풍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기복 오빠와 올레길 수첩을 들고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뻗은 수첩 너머로 성산일출봉과 바다가 보였다. 기념적인 순간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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