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마을 시흥리

올레길 1구간(상)

by 슈히

서귀포의 시작, 그리고 제주 올레의 첫 마을 시흥리(始興理)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제주도는 제주, 정의, 대정 등 3개의 행정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시흥리가 속한 당시 정의군의 ‘채수강’ 군수가 ‘맨 처음 마을’이란 뜻으로 ‘시흥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주에 부임한 목사가 맨 처음 제주를 둘러볼 때면 시흥리에서 시작해 종달리에서 순찰을 마쳤다고 한다. 시흥리의 설촌은 약 5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산봉(말미오름)을 중심으로 여러 성 씨들이 살다가 해안가 쪽으로 내려와서 살았으며 이 마을의 옛 이름은 힘센 사람이 많아 ‘심돌(力乭)’마을이라고 했다. 시흥리에서는 453세대, 1,157명(2009년 11월 말 기준)이 거주하고 있다.



올레길 1구간 안내소에서 수첩에 시작 도장을 찍고, 오늘 날짜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부분만 펼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새로운 도전을 이제 막 시작하는 벅찬 순간이었다. 스스로 감개무량했다.

한편, 기복 오빠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친구 한 명을 데려온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라는 분은 피곤해서 올레길은 안 걷는다고 했다.

‘잉, 세 명이 여행 와서 각자 따로 노네?’

아까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여행자들 몇 명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다들 초행길인가 싶었다. 그중 한 여성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말미오름


말의 머리처럼 생긴 이 오름의 다른 이름은 두산봉. 아래로는 성산포의 들판이 펼쳐져 있고, 정면에 성산일출봉, 그 왼쪽에 우도가 한눈에 보인다.



“저, 수첩 샀어요!”

크게 외치자, 그녀가 돌아봤다. 그때부터 우리의 대화는 쭉 이어졌다. 민주 선생님은 올레길을 이미 한번 완주했는데도, 올레길 수첩을 하나 더 사서 두 번째 도전 중이었다.

“대단하시다! 그런데, 같은 길을 한 번 더 걸을 만큼 올레길이 의미가 있나요? 전 한 번 간 곳은 안 가는 주의거든요. 다른 곳 가야죠!”

그러자, 민주 선생님이 대답했다.

“그땐 동행이 있어서 그냥 따라가기만 했거든요. 이번에 혼자서 걸어보려고 왔어요. 두 번은 가야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걷기도 좋아하고, 등산도 즐겨해요.”

그녀는 블랙야크 명산 100도 현재 도전 중이었다.



알오름


이름처럼 새 알을 닮은 오름이다. 말산메라고도 부른다. 성산포의 들판, 성산일출봉, 우도, 한라산, 다랑쉬오름 등 제주 동부의 오름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마 평지만 걸을 거라고 막연히 예상했으나, 오름은 영락없는 등산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힘겨웠다. 처음엔 그럭저럭 견딜만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발뒤꿈치가 아팠다.

‘다음엔 두꺼운 등산용 양말 한 겹 덧신어야겠다. 운동화 터지겠네.’

종달리 초등학교, 회관을 지나 마을로 들어섰다. 새로 단장한 티가 역력한 화려한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문구도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아름다운 마을 종달리.’

그런데, 그보다 더 강력한 자연과 마주쳤다. 꽃나무의 키가 집채만 해서, 한참 우러러봤다.

“겹동백이에요.”

민주 선생님이 알려줬다. 흔히 보던 동백보다 꽃의 크기가 크고, 잎이 풍성해서 화려했으며, 붉은빛이 선명했다. 꽃이 귀한 이른 시기에 겹동백을 만나서 더욱 반갑고, 신비로웠다. 민주 선생님이 떨어진 꽃송이를 주워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았다.

정자 그늘에 앉아 민주 선생님이 건넨 달걀을 하나 까먹고, 목을 축였다. 구석에 자리 잡은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는 연인이 아니고 그냥 친구 사이인 듯 보였다. 그냥 풍기는 분위기가 그랬다. 둘 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입은 옷매무새가 보기 좋아서, 잠시 관찰했다. 우리는 오래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다.

올레길 1구간 목화휴게소에서 중간 지점 도장을 찍었다. 해안도로 가장자리엔 말린 오징어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것 또한 사진 찍어서 옥구슬 씨에게 보냈다.

“꼴뚜기 왕자의 친구.”

기복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제 막 시작점에서 출발한다는 연락이었다. 뛰어오는 모양이었다. 그의 가뿐 숨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정오를 지난 한낮의 열기는 한여름 수준이었다. 모자도 빠뜨리고, 장갑도 안 챙겨서 봉변을 당했다. 나중에 얼굴과 손등이 햇빛에 벌겋게 탄 걸 알아차리고, 마음도 새카맣게 타버렸다.

문득 고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작년 5월에 이호 테우 해변으로 가는 올레길을 혼자 걸었을 때였다. 그때도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멋모르고 와서, 직사광선에 호되게 데었다.

하지만, 모자를 쓰지 않은 것은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유채꽃을 배경으로 화사한 인물 사진을 남기겠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올레길 1구간에는 지천에 유채꽃이 만발했다. 우측엔 저 멀리 오름이 보이고, 황금빛 유채가 들판을 빼곡히 메웠다. 좌측엔 푸른 하늘과 그보다 더 파란 바다가 굽이쳤다. 그곳에도 역시 드문드문 유채가 노랗게 피어나고 있었다.

“와, 아름다워!”

이 식물은 다가오는 봄에 대한 희망처럼 느껴졌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발걸음을 멈춰 눈과 마음에 고이고이 풍경을 담았다. 사진으로도 많이 남겼다. 반면, 민주 선생님은 별 감흥 없이 지나쳤다. 그녀가 저만치 가 있으면, 바삐 달려가서 거리를 좁혀야만 했다.



조끄뜨레 안장 커피 마시당 갑써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해변에서 위 문구를 접했다. 제주어가 귀엽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쉬었다 가고픈 마음이 간절했으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주 선생님은 맛집도 카페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목표는 1구간 한 개가 아니라, 2구간까지 두 개를 걷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계획은 1구간 하나 완주하기 하나였다. 물론, 일단 걸어보고 힘들면 절반만 가도 될 일이었다. 무리했다 병이 날까 봐 걱정됐다.



그리운 바다

-이생진


내가 돈보다 좋아하는 것은

바다

꽃도 바다고 열매도 바다다

나비도 바다고 꿀벌도 바다다

가까운 고향도 바다고

먼 원수도 바다다

내가 그리워 못 견디는 그리움이

모두 바다 되었다

끝판에는 나도 바다 되려고

마지막까지 바다에 남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다가 삼킨 바다

나도 세월이 다 가면

바다가 삼킨 바다로

태어날 거다



성산일출봉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서 읽은 시는 옥구슬 씨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산보다 바다를 사랑하고, 늘 돈과 물질에 대한 예찬론을 펼치는 이이다.

“옥구슬 씨는 바다보다 돈이 더 좋죠?”




간세Ganse


제주 조랑말을 표현한 제주 올레 상징. ‘게으름뱅이’란 뜻의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쯤 되니, 허기가 졌다. 지치기도 지쳤다. 쉬고 싶었다. 또, 조금만 더 가면 광치기 해변이다. 이렇게 종점까지 가버리면, 아직 만나지 않은 기복 오빠와는 아무런 추억이 없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웃으며 말했다.

띠동갑인 그녀는 두 딸의 어머니이며, 결혼도 이혼도 일찍 경험했다고 말했다. 특히, 배우자가 갖출 덕목으로 책임감을 강조했다.

“안 가본 곳, 안 먹어본 음식, 안 해본 경험 등 새것을 좋아해요. ”

싫증을 잘 낸다고 했더니, 그녀는 내 성격이 변덕스럽다고 말했다. 스스로 변덕스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여태 없었다.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관점이었다.

“길에서, 또 만나요.”

민주 선생님이 말했다. 홀로 내내 외로울 뻔했는데, 그녀 덕분에 전혀 쓸쓸하지 않았다. 올레길 1구간에서 만난 첫 번째 동행과 작별했다.


20220316_114252.jpg
20220316_114234.jpg
20220316_125202.jpg
20220316_130936.jpg
20220316_130957.jpg
20220316_131018.jpg
20220316_131028.jpg
20220316_겹동백.jpg
20220316_131227.jpg
20220316_131456.jpg
20220316_133535.jpg
20220316_133721.jpg
20220316_133725.jpg
20220316_133729.jpg
20220316_133734.jpg
20220316_135239.jpg
20220316_141238.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책 없는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