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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l 08. 2024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14)

신묘한 침향의 세계

  다음으로 간 곳은 침향 판매장이었다. 침향은 난생처음 접하는 상품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었고, 생소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침향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직원의 설명을 듣기 위해 탁자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앉았다.

  사회자는 통통한 몸집에 푸근한 인상을 지닌 아저씨였다. 

  "여러분! 이걸 한 포씩 드시고, 트림이 언제 나오는지 알려주세요. 비위가 약하신 분은, 숨을 참고 드세요."

손님들은 그가 나눠준 가루 영양제를 일제히 입에 털어 넣었다. 냄새가 얼마나 지독하길래, 싶어서 숨을 들이마시며 약을 삼켰는데, 괴로웠다.

  "웩, 너무 비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어르신 한 명이 손을 들며 말했다. 짧은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할머니였다.

  "트림 나왔어요."

  인상 좋은 사회자는 별 대꾸 없이 설명회를 진행했다.

  "콜라겐의 원료가 뭔지, 아세요?"

머릿속에는 그저 돼지 껍질만 떠오를 뿐이었다. 좌중은 조용했다.

  "콜라겐은 명태로 만듭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재료였다.

  "이제, 침향을 손등에 소량 발라 드릴게요. 어떤 향이 나는지, 맡아보세요."

  남자 직원은 침향이라고 부른 알약 하나를 들고 객석 사이를 누볐다. 노란 알맹이를 손등에 문지르니, 고체에서 물기가 촉촉이 배어 나왔다.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으니, 뭔가 느껴지긴 했으나 무슨 향기라고 정의하긴 어려웠다. 애매했다.

  "어떤 향기가 나세요?" 

  직원이 청중에게 질문했으나,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떨떠름하게 앉아 있었다.

  "썩은 내를 맡으는 분?"

그러자, 어르신들 몇 명이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호랑이 연고 냄새를 느끼신 분?"

  "아, 저요!"

뭔가 톡 쏘는 듯한 느낌 같기도 하고, 파스 내음 같기도 한데 강도는 희미했다. 구체화하기 어려운데 그나마 호랑이 연고와 그나마 비슷한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자는 설명을 이었다.

  "지금은 6월이라서 없지만, 7, 8월 여름 방학엔 10, 20대 젊은이들이 관광하러 이곳에 많이 옵니다. 그들에게 질문하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해요. '레몬향, 콜라향이요'."

그러자, 우측에 앉은 귀남 오빠가 대뜸 말했다.

  "콜라향이 나."

의문이 들어서, 그의 손등에 코를 가까이 댔다. 내 손등에서 나는 향보다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는데, 콜라향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반신반의했고, 어리둥절했다. 

  '술, 담배를 모두 즐기는 귀남 오빠의 신체 나이가 설마 20대 일리는 없는데......!'

  아저씨가 이번에는 서로의 귓불을 관찰하라고 말했다.

  "귓불에 주름이 있는 분은 혈관 건강이 좋지 않은 거예요. 자, 다음 영상을 함께 보시죠."

연예인이 수술 받는 영상이었는데, 개그맨 이경규의 귓불에는 주름이 선명하기 그지없었다. 골이 깊숙이 파여서 심각했다. 유명 연예인이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자, 남일 같지 않았다. 너무 안타까웠다.

  다랑의 귀를 보자, 한쪽 귓불에 주름이 있었다. 귀남 오빠도 역시 한쪽 귓불에 주름이 있었다. 

  "어! 주름이 있어. 혈관 건강이 나쁜 거야? 침향 사서 먹어야겠네!"

그런데, 내 귀에도 역시 주름이 있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으악, 나도 주름이 있잖아?"

  "아냐, 누나는 귀걸이 때문에 살이 눌려서 생긴 주름이야. 시간 지나면 없어질걸?"

걱정스러웠으나, 귀걸이를 착용하지 않고 며칠 놔두니 주름은 저절로 사라졌다. 다행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 어르신의 귓불에도 주름이 뚜렷했다. 걱정의 한 마디를 건네자, 어르신이 대답했다.

  "귓불 주름은 어릴 때부터 있었어."

나 역시 초등학생 시절부터 목주름이 있었기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침향을 구매하시는 것보다, 중국에서 사시는 게 훨씬 저렴합니다. 중국에서 침향을 생산하거든요. 그래서, 비교적 쌉니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직원들도 강연장으로 들어와 영업했다. 

  침향은 건강 보조 식품인데, 인터넷을 검색하니 만병통치약에 가까웠다. 그 명성에 걸맞게, 고가였다. 다랑의 귓불 주름을 보니, 그의 건강이 염려됐다. 하지만, 워낙 값이 비싸서 구매하라고 권유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아까 라텍스 침구를 구매하느라 출혈이 큰 상태였다.

  한편, 귀남 오빠는 곧 지를 기세였다. 여직원 한 명이 다가와 그에게 적극적으로 영업했다.

  "오빠는 술, 담배 끊어야 건강해져요. 하지만, 안 끊을 거죠?"

  "어."

  "그럼, 침향 사서 먹어야겠네요. 살 거면, 빨리 사요! 그래야 우리가 다음 장소로 이동하죠."

  "슈히, 너 진짜 영업 잘한다! 네가 사라고 해서 아까 라텍스 샀는데, 이번에 침향도 산다." 

  귀남 오빠는 라텍스 침구와 침향을 사느라 약 300만 원을 탕진했다. 여행 경비보다 쇼핑비가 두 배 이상 든 셈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그는 침향 복용 전의 혈관 모습과 침향 복용 후의 혈관 모습을 비교하고자 했다. 귀국 후, 병원에서 즉각 혈관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됐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강연장을 나왔는데, 갑자기 트림이 꺽 하고 올라왔다. 약을 먹은 지 한참이나 시간이 경과한 후였다. 사회자에게 말하니, 그가 웃으며 영양제를 한 포 더 건넸다. 트림에 대해 특별히 안내는 없었다. 일행 중 한 어르신에게 말했더니, 그녀가 대신 설명했다.

  "다른 곳에서 침향 체험해 봐서, 알지. 노인들은 침향을 먹자마자 트림해요.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거죠. 반면, 젊은이들은 건강하니까 효력이 늦게 나타나는 거고요. 젊어서, 트림 늦게 한 거예요. 아직은 침향이 필요 없을 시기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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