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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yo May 29. 2021

일에게 화풀이 하지는 않으려고요.

이틀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나니 눈 앞 세상이 흐릿하다. 처음부터 이번 과제가 지금과 같은 모양새로 우리 팀에 떨어진 것은 제대로 따지고 들자면 거부한다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 없는 억지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리 잘해 놓아도 썩 마음이 흡족하진 않을 것 같은 찝찝한 기분, 처음 이 일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다. 받기에도 거부하기에도 애매했던 일을 들고 한다면 함께 할 팀원과 의논했을 때 다행히 해보자 라는 반응이었다. ('다행히'라는 표현을 쓴 걸 보니 처음부터 나는 이 일이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시작하며 나름 합리화를 해 보았던 우리의 노력이 무색하게 일은 걷잡을 수 없이 방향을 잃고 흔들렸다. 왜 인지 알면서 나설 수 없었고, 틀어보고자 하는 소심한 노력마저 다른 의도를 의심받았다. 누구든 얼마나 대단한 결심을 했다 한들 불합리한 상황과 오고 가는 무례한 말들에 의욕을 잃고 주저앉아 마땅한 분위기였다.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날카로운 송곳에 긁히는데 기한이 다가오는 일을 버릴 순 없어 뜨끈뜨끈한 가슴을 부여잡고 그저 매일을 견뎠다. 보다 못한 팀원은 "팀장님, 왜 아직도 영혼을 실으려 하세요. 마음 안 상하세요?"라며 편을 드는 듯, 또는 원망하는 듯 화를 쏟아냈다. 왜 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 같아 뇌를 거치지 않고 흘려버린 나의 대답은 "일에다 화풀이하지는 않으려고. 일이 무슨 죄니."였다.


스물아홉, 남편을 처음 만나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남편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공부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지인들은 언제 끝날 지 기약 없는 공부를 시작하는 남자와 굳이 결혼을 하겠다는 나에게 걱정의 말들을 전했다. 다행히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만한 부모님의 반응은 "우리가 너 이만큼 키워놓았으면 너도 니 밥벌이해야지. 그 친구가 꼭 너를 먹여 살려야 할 이유는 없지 않니?"였다. 무엇보다 졸업 후 일을 막 시작한 나는 세상에 뭐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일이 좋았다. 매일 야근에 연애 3개월 차에 벨기에로 파견을 보내버린 야속한 회사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의미' 정확히 그것에 아주 꽂혀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자의식이란 것이 크지 않았던 때라 내가 특별히 일에 더 흥미를 느끼고 정성을 쏟는 사람이라는 것도 잘 인식하지 못했다. 그냥 하루하루 말 그대로 나의 '최선'을 쏟았고, 그 끝엔 언제나 선물 같은 성취감이 있었다. 벨기에 근무 중 작은 법인 하나를 만들고 사무실 포함 제반 환경을 구축하는 일을 진행했었는데, 사람의 오고 감이 많지 않을 사무실을 조용한 주거지역에 얻었다. 현지인을 채용하여 업무를 인계하고 귀국하기 전까지 사무실에 붙어 있는 방에서 생활을 했는데, 큰 통유리 창 밖으로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는 공간이었다. 아침에 눈 떠 창밖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고, 바로 옆 사무실 공간으로 옮겨 (무얼 마셔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벨기에 커피 한잔을 타 놓고 PC를 켜는 순간, 아직도 눈에 선한 그리운 기억이다.


첫 단추.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2007년 출발 선에 있었던 나는 일을 하고 싶어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13년 동안 다른 조건들을 고려한다면 고민해볼 만한 이직의 기회들을 별생각 없이 스쳐 보낸 것도 그 순간 하고 있는 '나의 일'에 아무런 싫증도 불만도 없었기 때문이다. 원칙을 세워놓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사는 성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직장 생활과 관련된 하나의 철칙이 있다면 사람과 상황이 싫어 움직이지는 말자는 것이다. 일이 싫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대안도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더 안 맞는 사람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고, 상황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있는 곳에서 벌어진 참지 못할 상황이 새로운 곳에서 더 크게 부풀려진 상태로 나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게 기대에 미치지 못한 변화를 맞닥뜨린 와중에 좋아하는 일마저 두고 온 상태라면, 그 후회를 감당해 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직장 생활이란 모두의 조언처럼 매일같이 부딪히는 다양한 고비들을 넘겨내는 과정이었지만, 단 한 번도 내 방식이 아닌 것으로 대응해 본 적은 없다. 살갑지 못해 아부도 안되고, 잔머리가 빈약해 정치도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미련해 보일 수 있을 만큼 한 땀 한 땀 일 해 딱 한 것만큼의 결과를 얻길 바라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해도 회사에서 주어지는 보상과 혜택에 떳떳해야만 매일 기분 좋게 회사에 들어설 수 있다. 그것을 맞다 하는 사람보다 미련하게 보는 사람이, 대단하다 하는 사람보다 유난스럽다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의 눈에 미련하고 유난스럽게 보이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하루하루를 내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게 살고 싶었고 그러자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야 했다. 그렇게 13년이라는 시간을 월요병 한번 없었던 괴상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회사에 가면 내가 머리를 굴려주길 기다리는 일이 있었고, 그 어떤 공간보다 아늑한 나의 자리가 있었고, 지칠만 하면 툭 하고 위로와 격려를 던져주는 동료들이 있었다. 남들 보기에 참 쓸데없다 싶을 정도로 회사라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에 애정을 느꼈다.


지난밤 잠들기 전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놀란 남편이 이유를 물었고, 나는 "오빠. 나 회사 가기 싫어.. 이게 말이되... "라 내뱉고 더욱더 서럽게 울었다. 늘 노력한 만큼의 기쁨을 안겨주던 일이 어느 순간 나를 배신한 듯했고, 무엇보다 '나의 일이 갖는 의미'에 대해 선뜻 답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 나는 누군가는 부러워할지 모르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다 늦게 중2병이라도 앓듯 방황하고 있었다. 어쩌면 전보다 훨씬 적은 공을 들여 훨씬 큰 일을 해냈다 뽐낼 수 있는, 생색내고 어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지 모르는 일. 굳이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누린다면 그저 행복할 수도 있는 상황. 이 지점에서 나는 왜인지 맞고 틀린 것을 따지고 빛나기보다 떳떳해 지길 원하고 있다. 이 또한 누군가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나의 성향인지라 털어놓지 못하는 외로움까지 더해진 기분이다. 힘없어 보이는 외모에 비해 속은 잘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남편은 한밤중에 눈물바람을 하는 내 모습에 적잖게 놀랐고 분노했다. 과정 상에 부당함이 산재해 있는 일을 그냥 놓아버리라 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하기 싫다는 낯선 기분을 안고 회사에 들어선 아침. 한없는 안락함을 선사했던 나의 자리는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차가운 공간이 되어 있었다. 새벽 별 보며 일할 때면 늘 off 하는 순간 수고했다 쓰다듬어 주었던 PC는 고약하게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 손대기 조차 싫었다.

그래도 남은 애정을 모조리 실어 책상을 한번 쓱 닦아 주고 조심스럽게 PC를 켜 본다. 분노가 솟구쳐도 할 수 없다.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네 마음을 그렇게 지치게 한 일이, 그 긴 시간 너를 포기하지 않게 지탱해 주기도 했어. 다 좋은데, 일에다 화풀이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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