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운영 칼럼 중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책방을 열었는데,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방을 운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하루하루 체감하고 있다.
나의 책방은 종종 문을 닫고 자주 단축 영업을 한다. 어영부영 굴러가는 책방을 보며 몇몇 사람들은 ‘초심을 잃은 게 아니냐?’고 하는데 틀렸다. 나는 아주 한결같은 사람이다. 한결같이 제멋대로다. 다행인 점은 집과 책방의 거리가 멀지 않아 영업시간 외에도 책방을 찾는 전화가 오면 5분 만에 달려가 문을 열고 있다.
책방은 대부분의 공간이 개인 사무실로 이루어진 건물의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진관과 책방이 유일한 영업장인 우리 층에는 외부인 출입이 드물다. 정정한다. 사진관을 찾는 손님 외에는 인적이 드물다. (이 글을 작성한 시점으로 다음 날, 사진관이 이사를 한다고.. 이제 처절하게 나만 남은 것이다.)
여태 가는 곳마다 손님을 몰고 다니는 이상한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내 영업장만큼은 예외인가 보다. 내가 책방에 있을 때는 손님이 없고, 내가 책방에 없을 때 손님이 온다. 역시 삶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나는 모든 손님을 기억한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시간과 날짜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뛰어난 기억력 덕분은 아니고 그저 손님이 몇 없기 때문이다. 재방문하는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중 1분만 머물다 가는 손님이 있다. 그 ‘1분 손님’의 첫마디는 “와~ 여기 다들 어떻게 찾아와요?”였다. “그러게요. 아무도 안 찾아오더라고요.” 손님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는데 농담인 줄 아는 게 분명했다. 책장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매대에 올려진 책을 덥석 집어 들었다. 인간의 본질을 다룬 사회심리학자의 책이었다. “책 좋아하시나 봐요?” 물었더니 “이제 읽어 보려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황급히 “저는 그 책이 조금 어렵더라고요.” 했다. 이제 막 책에 관심을 가져보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역시 책은 불친절해.’라는 생각을 (굳이) 내 책방에서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했다. 비교적 흥미로운 책을 꺼내 주려 눈알을 굴리고 있는데, 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며 1분 만에 계산하고 떠났다. ‘두 번은 못 뵙겠구나’ 나는 생각했다.
열흘 후 오후 3시쯤 되었을까. 그 ‘1분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갑자기 책방 문이 열리면 적잖이 당황한다. 마치 내 방에 누가 들어온 것처럼. 손님은 당연히 예고 없이 들어오는 게 맞는데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책방에 출입한 사람이 나를 제외하고 이 손님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마 열리는 책방 문짝도 어색해할 것이다. 손님은 지난번에 사 갔던 작가의 다른 책을 사고 싶다고 했다. “지난번 책은 어떠셨어요?.” 했더니, 어려워서 검색하며 읽었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나약한 인내심을 가졌을 거라 넘겨짚었던 내 생각을 반성했다. 이번에도 다른 책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계산 후 1분 만에 책방을 떠났다. 바쁜 와중에 책방을 찾아 주시는 걸까 싶어, 손님이 떠난 후 비슷한 심리학자들의 책 몇 권을 꺼내 매대에 진열해 두었다. 이런 점이 독립서점의 매력이다. 두세 번 방문하면 책방지기는 손님이 집어 든 책들을 기준으로 더 취향에 맞는 책을 추천해 줄 수가 있다.
손님들이 책방에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어느 하나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는 이 작은 공간에서 벽에 붙은 내 강아지 사진도 봐줬으면 좋겠고, 필사 한 문장들도 함께 나누고 싶고, 시원한 음료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다과도 먹고 갔으면 좋겠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마다 인덱스를 붙여 둔 소장책들도 읽고 갔으면 한다. 머물다 간 손님들의 인사가 담긴 방명록에도 흔적을 더해줬으면 한다. 대형 서점에는 없는, 독립 서점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몽땅 누리고 갔으면 좋겠다.
책방 소개 글에 ‘가장 큰 위로는 책이 해줍니다.’라는 문장을 적어 두었다. 위로가 되는 책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소설에서, 다른 누군가는 에세이나 시에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나는 사람에게서 받는 위로보다 책에게 받는 위로가 더 큰 힘이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지칠 때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추천해 줬던 책을 읽고 정성이 담긴 후기를 보내주는데, 그럴 때마다 책방을 운영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아마도 가장 큰 위로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글이 해주는가 보다.
슬프지만 우리 모두 바쁜 이 삶 속에서, 1분이면 손가락으로 책 구매가 가능한 이 편리한 세상에서, 눈과 귀로 쉴 새 없이 떠밀려 오는 영상매체들 속에서. 누군가는 비효율적이라 말하는 책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고마운 마음들과, 시간을 내어 책방을 찾아주는 귀한 발걸음을 위해 오늘도 책방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