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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빈한 May 09. 2023

수사기관에서 거짓말을 해도 될까?

경찰 및 검찰 조사에서 올바른 대처법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짓말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그래서인지 경찰 조사에 입회하여 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검사나 수사관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선량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피조사자의 입장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 수사기관이 괘씸하게 생각하여 자신의 억울함과 무고함을 전혀 믿어주지 않을까 매우 우려한다. 반면에 수사기관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에게 거짓말을 했다가는 마치 큰일 날 것처럼 심리적으로 압박하면서 조사를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조사경험이 적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수사기관에서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도적인 허위진술은 수사절차에 혼선을 초래하고, 다른 허위진술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당사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만, 거짓말에도 워낙 다양한 종류가 있고, 진술하는 상황도 천차만별이라 이를 일률적으로 답하기는 어려운 측면은 있다. 범죄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자백하는 상황에서는 굳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할 실익이 없겠지만, 범죄혐의를 부인하거나 여죄가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입장이 다를 수 있다.


먼저, 피의자가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없다고 일응 부인하거나,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고 진술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설사 그 과정에서 객관적 사실과 다른 진술이 일부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명시된 형사상 피의자에게 보장된 권리(자백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권리 등)를 행사한 것으로 보아 특별히 문제 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피의자가 범행을 단순 부인하는 수준을 넘어,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오인이나 착각을 유발하거나 수사절차에 큰 혼선을 야기하는 거짓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피의자가 범죄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위의 알리바이'를 만들어낸다거나 '허위의 증거'를 제출하는 경우에는 그 자체로 증거인멸의 염려 등 구속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 더군다나 범행을 부인하는 과정에서 '허위의 인물' 내세워 범인 바꿔치기를 시도한다거나, 주요 증거자료를 위조, 변조하는 경우에는 범인도피(교사), 증거인멸(교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등이 별도로 성립하여 가중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형사상 진술거부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헌법 제12조 제2항 후단,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제286조). 이처럼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수사기관과 피의자가 서로 간에 지위나 무기가 대등하지 않다는 점을 전제로, 당사자평등 및 무기대등의 관점에서 1)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권리(헌법 제12조 제2항 후단), 2)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헌법 제12조 제4항) 일정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피의자가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혐의로 조사를 받는 순간에는 과연 헌법상 진술거부권이 인정되는지, 수사기관이 과도하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실제로 조사과정에 참여하다 보면, 수사기관이 이미 유죄의 확증을 갖고서 의뢰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피의자로서는 검사나 수사관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개진하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고, 여러 명의 수사관들이 말꼬투리를 잡아가며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의자로서는 범행을 부인하거나 진술을 거부하는 행위가 마치 거짓말을 하거나 수사에 협조하기 않는 것처럼 비쳐, 자신에게 불이익한 간접증거로 사용되거나 양형에서 불리하게 적용되는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서, 수사기관에서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필자는 형사전문변호사 사건을 이끌어감에 있어 의뢰인에게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라고 조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필자는 담당변호인으로서 의뢰인에게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수사과정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피의자에게 객관적 사실만을 강요할 수 없다는 형사법의 기본원리와 대법원 판례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준다.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헌법상 인정되는 권리와 기본원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검사나 수사관 앞에서 일관된 입장을 진술함에 있어 큰 자신감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형사전문변호사로서 때로는 수사기관과 기싸움을 하면서까지 변호인으로서 법적 양심에 따라 적절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수사기관에 피의자의 입장만을 강변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형사사건에서 의뢰인들은 자신의 혐의를 입증하려는 국가기관과 치열한 다툼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형사사건에서의 변호인의 역할도 결코 가벼울 수 없다고 생각된다. 절박함과 불안함 속에서도 변호인에게 한 줄기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의뢰인들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형사전문변호사로서의 기본적인 역할과 사명에 충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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