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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Sep 09. 2021

가네코 후미코의 책을읽고 나니,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보이지 않으면 쉽게잊히는것들이었다.


후미코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런 그녀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모든 것을 다 들킬 것 같았다. 나는 그녀 앞에서 발가벗고 있었고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뉴스 속 세상에선 여자들이 죽어나가고, 아이들은 학대당하고,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다는데 TV를 끄면 너무나 평온한 세상이었다. 당장 먹을 것과 누울 곳이 있었다. 어떤 것들은 나에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쉽게 잊히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고 읽지 않았으며 듣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한없이 예민해서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점점 더 귀찮아지는 기분이었다. 어떤 날은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으려 책을 들었는데 읽다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어 다시 덮었다. 귀찮았다. 궁금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무뎌지는 것들이 무서웠는데 이젠 그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뉴스를 읽다가 화가 나는 기사가 있으면 SNS에 공유하는 것이 전부였고, 나는 그것이 나를 대외적으로 멋있고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읽는 신문 사설들과 기사들에 밑줄을 쳐가며 읽었고 그런 나 자신이 꽤 뿌듯했다. 그게 다였다. 나는 이내 다시 침대에 누워 요새 유행한다는 것들을 찾아보고 웃고 모든 것들을 잊고 다시 잠에 들었다. 


나는 후미코가 부러웠다. 이 모든 감정들을 애써 무시하는 나 자신에겐 화가 났고 나와 다른 후미코에겐 질투심을 느꼈다. 나의 세상은 후미코의 세상과 별 다를 게 없는데 나는 후미코와 다르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내가 바라는 건 뭘까. 나는 내가 그러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에 다행스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나의 두 손으로 TV를 꺼버린 건 아닐까.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애써 위로했던 건 아닐까. 이 수많은 고민들을 뒤로하고 결국 나는 노트북을 덮고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이 들 거라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미웠다. 


나는 다시 돌아와서, 고개를 들어 후미코를 쳐다보았고, 후미코는 나에게 뭐라 말을 하는 듯했다. 그게 잘 들리지 않아 후미코 쪽으로 몸을 기울이니 그녀는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이 글은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인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장현주 역/더스토리>를 읽고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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