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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May 27. 2021

헤어지기 아쉽다는 말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 우리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갈까?’라고 내 친구는 말했고 나는 태어나서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곤 이내 그 친구가 부러워졌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솔직하지 못한 편이다. 좋으면서 좋지 않은 척, 싫은데 싫지 않은 척. 무언가 평온해 보이는 사람이었으면 했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었으면 했다. 사실 그전에 상처 받기 싫어서 그랬던 것도 있다. 


무언가 사랑하는 일은 끝끝내 나에게 상처로 돌아왔다. 나는 우리 집 강아지 마리를 사랑했고 마리는 이제 내 곁에 없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사랑하지만 나에겐 커다란 족쇄이기도 하다. 


나는 마리가 떠날 것을 알면서도 좋아했고 다큐멘터리로 먹고살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또다시 다큐를 생각했다. 나는 뾰족하게 날이 서있는 것들이 나를 옭아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모든 것을 아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더 마음이 커 보여서 나를 쉽게 떠나가면 어떡하지. 나를 우습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만 바보가 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에 감정을 죽이고 표현을 하지 않았다. 헤어지기 아쉬운데 괜찮은 척. 서운한데 서운하지 않은 척. 애써 나를 달래고 꾸역꾸역 넘어가야 했다. 그래야 내가 나중에 상처 받지 않을 테니까. 내가 나를 아끼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런 와중에 친구의 저 말을 들었다. 저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너무. 너무너무 고마웠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어서.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이라고 말해주어서.


그리고 이내 나는 여태까지 내 곁을 스쳐 지나간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즐거웠는데, 그들과 함께여서 즐겁다는 말을 전해주지 못했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겐 솔직하게 나를 표현하기로 했다.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써버려야지. 그러고 나는 또 다른 나만의 것들로 나를 채워야지. 나도 내 친구처럼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2021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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