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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숲 Aug 11. 2021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마음

나는 꿈꾸는 직업이 많았다. 관심 있는 학문도 많았고 여러 분야에 흥미도 많았다. 학창 시절 가장 원했던 직업은 기자였지만 어쩌다 보니 지금은 교사를 하고 있다. 처음부터 교사만을 열렬히 원했던 것이 아니어서인지 나는 ‘참 교사’라는 단어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참 교사란 어떤 교사를 말하는 걸까. 교사가 일률적인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는 존재인 걸까. 교사로 임용되면서도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어떤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크게 없었다. 그저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교사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신규 교사로 시작한 첫 3월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선생님과 학생 중에 누구 한 명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온종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업무 처리하랴 수업하랴 진이 다 빠졌다. 업무 메신저에서는 수십 개씩 메시지들이 쏟아졌고, 아직 학교 곳곳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나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만나는 수업 현장은 생기가 넘치고 좋았다. 태풍 속에 피어난 꽃처럼 수업은 아름다웠다.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토대로 하여 나만의 수업을 기획하고 자료를 만들고 교구를 제작하는 과정은 너무나 즐거웠다. 그렇게 준비한 수업을 학생들과 함께 현장에서 구현할 때는 신나고 행복했다. 수업에서 학생들과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수업 자체를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수업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교사라는 직업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업무들도 거뜬히 해결해냈고, 나에게 부과된 다양한 업무들 속에서 기쁨을 찾으려 노력했다. 평소 완벽주의 기질이 있어서인지 업무를 칼같이 처리하다 보니 업무 처리 와중에 느껴지는 희열도 있었다. 점점 학교라는 공간에 애정이 생겼다.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보석같이 예뻤고, 어쩌다 사춘기가 심하게 온 아이들이 반항이라도 할 때면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귀여워 보였다. 물론 생활지도가 쉽지 않은 아이들도 꽤 있었지만 과거에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났던 나로서는 일반 학교에 있는 학생들이 저지르는 실수들은 큰 무게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늘 나에게 “선생님은 늘 웃는 얼굴이라 좋아요.” 혹은 “선생님은 매일 뭐가 그렇게 즐거워요?”라고 물었다. 고단했던 시간도 많았지만 수업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에너지가 넘쳤고, 입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업은 시 쓰기 창작 프로젝트였다. 단어를 던져주고 떠오르는 것들을 써 보는 연습을 한 다음 하나의 주제로 시를 쓰는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시’라는 단어에 부담감을 느꼈지만 우리가 쉽게 부르는 노랫말이나 가사도 모두 시라고 이야기해주자 편안한 태도도 써 보기 시작했다. 창작까지는 성공하더라도 문제는 발표였다. 아이들은 자신이 쓴 시를 스스로 발표하는 것을 끔찍이 부담스러워했고 그건 내가 당사자라도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무작위로 뽑기였다. 교탁 위에 시를 쓴 종이들을 뒤집어 카드처럼 펼쳐 놓은 뒤 랜덤으로 나온 발표자가 한 장을 뽑아 시 낭송을 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시를 쓴 사람을 익명으로 하기 위해 이름 적힌 종이 윗부분을 꼼꼼히 접어서 제출하게 했다. 누가 쓴지 모른 채 시 낭송을 듣는 아이들은 그 시를 누가 적었을까 추리하며 매우 신나 했다. 종종 너무 감동적인 시가 등장할 때 눈물짓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모인 시들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한 출판사의 문집 제작 프로젝트에 응모한 뒤, 편집팀을 꾸려 학생들 스스로 시들을 편집하고 책을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게 했다. 결과물로 나온 책은 학생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매년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게 힘든 시기도 많았지만 책을 받아보고 난 뒤의 아이들 표정을 생각하면 포기하기 어려웠다. 열심히 만든 덕분인지 출판사에서 주는 문집 제작 상을 받기도 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교사로서 열정적으로 살아온 나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한순간에 학교와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 벌써 육아휴직 4년 차다. 4년간의 공백 후 내년에 복직하는 나는 다시 신규교사로 돌아가는 마음이 든다. 학교와 학생들은 그간 많이 바뀌었을 테고 업무 환경도 꽤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수라장 같은 3월을 또 버텨내야 한다. 게다가 이제는 홑몸도 아니라 딸린 식구도 많아졌다. 육아와 노동 사이에서 균형점을 잘 찾을 수 있을까, 양쪽에서 모두 부족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등 여러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교사로서의 나의 삶도 엄마로서의 나의 삶도 내겐 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힘들고 좌절되는 순간이 무수히 많겠지만 그 속에서 만나는 반짝반짝하는 순간들을 떠올리며 버텨나갈 것이다. 힘든 육아 속에서 아기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찾았던 것처럼, 일과 육아에 매몰되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찾아 나갈 생각이다. 엉망진창일지 모르지만 집에서의 아기들과 학교에서의 아이들 속에서 지지고 볶으며 빛나는 순간을 발견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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