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무일푼이었다. 기약 없는 시험공부를 하고 있던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일상에 서서히 스며들었고, 긴 ‘썸’을 타는 동안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부정하려고 애써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소품에 대한 애정 등 그와 나는 비슷한 취향이 너무 많았다. 사귀기 전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지칭할 정도로 마음이 잘 맞았고, 대화를 시작하면 그칠 줄을 몰랐다. 주변에서는 서른이 넘은 내 나이를 두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자를 만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그가 가진 다른 조건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그와 함께 살고 싶었다. 수험생이었던 우리는 주로 도서관에서 만났고, 밥을 먹으며 데이트를 했다.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다행히 둘이 같은 해에 시험에 합격했고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안착했다.
사실 결혼에 큰 뜻이 없었던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가기보다는 그와 그냥 같이 살고 싶었다. 결혼식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맏딸인 나의 결혼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은 달랐다. 웨딩홀에서 치러지는 일반적인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서울 외곽에 있는 정원이 딸린 레스토랑에서 하우스 웨딩을 했다. 준비과정은 길고 복잡했지만 우리만의 결혼식이라는 생각에 즐거웠다. 결혼식에서 그와 함께 나란히 입장했고, 서로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하며 편지를 읽었다. 책을 좋아했던 우리는 장식과 테이블 곳곳에 책을 배치해 책을 테마로 한 웨딩을 만들었다. 하객 수도 많지 않게 조정했고, 화환도 받지 않았다.
우리는 연인이자 부부이자 소울메이트였고,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였다. 주말이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맛있는 것들을 먹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러 다녔다. 여름방학에는 근교로 여행을 갔고, 겨울방학에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시험 기간이면 서로 출제한 문제를 교차 검토하기도 하고,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나 수업에서 느끼는 희열을 공유했다. 우리의 일상은 느슨했고 여유로웠다.
아기를 낳으면서 그런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기를 출산한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여유로운 부부가 아니었다. 아기를 키우는 일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이었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 비슷했던 우리의 삶은 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달라졌다. 나는 24시간 풀타임 육아에 매몰되어가고 있었고, 그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힘들어했다. 갑작스럽게 둘째까지 생기면서 육아의 강도는 훨씬 심해졌고 서로에게 부과되는 책임과 짐들도 늘어났다. 서로 지쳐있다 보니 작은 말투에도 종종 다툼이 생겼다. 그러다 한순간 서로를 향한 공격은 우리를 좀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전쟁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전우였다. 한 팀끼리 다툰다는 것은 모두에게 해로운 일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후 감정의 부딪힘이 줄어들었다.
아기들이 조금 자라면서 우리는 다시 일상을 회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기들이 블록 놀이를 하는 곁에서 함께 짬을 내서 책을 읽기도 하고, 아기들의 간식 타임에 우리가 좋아하는 커피를 같이 준비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티타임을 갖기도 한다. 아기들을 재우고 나면 서로 찍은 아기들 영상을 보여주며 낄낄대기도 하고,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오늘의 육아에 대한 평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각자의 취미에 몰두하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아직은 미미한 일상의 회복이지만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둘이 있어 즐거웠던 우리는 이제 넷이 되어 조금 더 행복해졌다. 아기들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겪으며 두 아이를 키워나가는 우리의 역사는 단단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