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딸인 나는 어릴 적부터 아들처럼 자랐다. 딸 둘인 집에서 나는 아들 역할을, 동생은 막내딸 역할을 하며 성장했다. 유아기부터 키가 컸고, 거침없는 성격이었던 나는 나보다 나이도 세 살이 어리고 키도 작고 여리게 생긴 동생에게 늘 권위적인 언니였다. 적어도 스무 살 전까지는 그랬다. 동생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소탈하고 재밌는 언니가 되어주기도 했지만 동생과 다툼이 생기면 권위로 눌러버리는 언니이기도 했다.
외강내유형이었던 나와 달리 동생은 외유내강형이었다. 겉으로만 씩씩했던 나는 마음이 약해 실은 혼자 우는 일이 많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간단한 인사만 하고 내 방에 들어가 혼자 책을 읽거나 라디오를 들었다. 친구들과 잘 놀고 고민도 잘 들어주어 친구도 많았지만 정작 내 얘기를 터놓는 친구는 소수에 불과했다. 동생은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딸이 없는 어른들이 동생을 딸로 삼고 싶다는 이야기도 자주 했다.(물론 드세 보이는 나를 데려가겠다는 어른은 없었다.) 어른들이 바라는 일등 신붓감 같은 동생은 나보다 훨씬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나보다 겁도 없었고, 성숙한 모습이 많았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종종 동생이 언니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몇 년 전, 엄마가 갑상샘암 수술을 받을 때였다. 엄마는 우리가 걱정할까 봐 아빠에게도 우리에게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매일 엄마랑 통화하던 동생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아빠에게 캐묻기 시작했고, 결국 엄마가 수술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생과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멀리 있는 병원으로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 기차에서 나는 내내 울기만 했고, 동생은 차분하게 나를 달랬다. 엄마에게 잘못한 게 워낙 많은 나는 감정적으로 울기만 했지만 동생은 오히려 그런 나를 위로해주었다. 다행히 엄마의 수술을 잘 끝났고, 그때도 나는 동생이 언니 같다고 생각했다.
동생과 나는 결혼과 출산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 작년 초에 동생이 내가 사는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됐다. 나의 아기 둘과 조카가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언제 이렇게 아기 엄마가 되었나 싶기도 하다. 주변에 보면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면서 조리원 동기나 육아 친구처럼 새로운 관계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는 워낙 그런 관계를 어색해해서 조리원도 개인실을 썼고, 육아로 만난 친구도 많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동생은 가장 가까운 육아 친구였다. 무작정 부딪쳐보는 스타일인 나로서는 미리 준비하고 꼼꼼하게 분석해서 육아하는 동생에게 배울 점이 많았다. 서로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자매에서 친구 같은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도 나는 맏딸로서 집안의 대소사는 책임감 있게 챙기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께 다정한 연락을 하거나 안부를 묻는 건 여전히 제대로 하지 못한다. 동생은 한결같이 매일 엄마와 통화하고 아빠의 안부를 살뜰하게 챙긴다. 요리 못하는 나는 조카에게 그럴듯한 밥상 한 번 차려주지 못했는데, 동생은 아기들 데리고 동생 집에 갈 때마다 우리 네 식구 식사를 맛있게 차려주곤 한다. 동생에게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그런 동생이 있어서 나는 많이 고맙다. 엄마 아빠가 둘째까지 낳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언니보다는 친구 같은 존재로 동생에게 따뜻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다. 동생이 육아에 지칠 때 빵빵 터지며 활짝 웃으며 지낼 수 있게 유머러스한 언니의 모습도 좀 더 갈고닦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