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임신했을 때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이 아기의 이름이었다. 한글 이름, 그리고 중성적인 이름으로 지어주자는 것이 남편과 나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가능하다면 성과 이름이 하나의 단어로 이루어진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추가로 여자아이라면 조금 강한 느낌으로, 남자아이라면 부드러운 느낌의 이름으로 짓기로 했다. 사전도 들춰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책도 찾아봤지만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푸른 바다 사진을 보다가 일렁이는 물결을 보고 ‘윤슬’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뜻의 윤슬. 남편의 성이 윤이라 이름을 ‘슬’로 하면 성과 이름이 하나의 단어로도 가능했다. 검색해보니 이윤슬, 박윤슬처럼 윤슬이 이름인 친구들은 꽤 있었지만 성이 윤, 이름이 슬인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해서 첫째 아들의 이름은 ‘윤슬’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둘째 아기는 딸이었다. 우리는 또다시 이름 고민을 시작했고, 첫째인 슬이 이름을 정할 때 후보로 저장해 둔 이름들을 찾아봤다. 그중 마지막 후보였던 이름이 ‘결’이었다. ‘결’은 다양한 뜻을 가진 단어였지만 우리가 고른 뜻은 ‘곧고 바른 마음’이었다. 그리고 ‘과단성 있는 성미’라는 뜻도 마음에 들었다. 딸에게 단단한 이름을 주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과도 일치했다. 둘째 딸의 이름은 그렇게 ‘윤결’이 되었다. 아기 둘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이 아들과 딸의 이름을 바꿔서 부른다. 첫째 아들을 결이로, 둘째 딸은 슬이로 생각하고 바꿔서 부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슬이가 여자 이름 같고, 결이가 남자 이름이 더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고정관념을 뒤집은 이름으로 지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슬이와 결이는 이름처럼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슬이는 따뜻하고 섬세하고 예민한 기질을 가진 남자아이인 데 반해, 결이는 와일드하고 단순하고 고집 있는 여자 아이다. 수줍음이 많은 슬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친해지고 나면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늦거나 함께하지 못하면 꼭 챙기고, 사과 한 쪽을 자기 입에 넣으면 다른 한쪽은 엄마 입에 넣어주는 따뜻한 성품을 가졌다. 슬이를 임신했을 때, 뱃속의 아가에게 ‘아빠 성품을 닮으라’고 주문처럼 이야기하곤 했는데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는 아빠의 성품과 많이 닮았다. 눈웃음이 가득한 결이는 흥이 많다. 음악이 나오면 바로 춤을 추고, 어디서든 에너지가 넘친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너무나 신나고, 얻지 못하면 주저앉아서 펑펑 울어버린다.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센 모습은 나의 어린 시절 모습과 닮았다.
연년생 남매인 슬이와 결이는 같은 어린이집 옆반에 다닌다. 선생님들 말로는 어린이집에서 마주치기만 하면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한다고 한다. 놀이터 나갈 때도 둘이 손잡고 나가고, 하원할 때 신발장에서 서로의 신발을 챙겨주기도 한다. 아직 네 살,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기들이 서로를 아끼는 모습을 보면 감동할 때가 많다. 물론 종종 다툴 때도 많다. 규칙과 질서를 중시하는 슬이가 모든 장난감을 줄 세우고, 소유욕이 강해 자기 장난감을 동생에게 건드리지 못하게 해 자주 다툼도 일어난다. 슬이가 바르게 정렬해놓은 장난감을 결이는 한 손으로 툭 하고 무너뜨려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슬이는 질서를, 결이는 혼돈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다투고, 화해하고, 부둥켜안고, 뽀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하루가 지난다. 슬이는 늘 결이를 챙겨주고 싶어 하고, 결이는 오빠와 모든 것을 같이 하고 싶어 한다. 두 아이가 오빠와 동생이라는 관계에 갇히지 말고, 친한 친구처럼 자랐으면 좋겠다. 첫째라는 책임감이나 둘째가 가지는 서러움 같은 감정보다는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로 성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슬이와 결이가 서로에게 세상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되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