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기우진 Jul 09. 2024

이차대전 중 & 후의 독일과 일본사회의 대응 1

후세 다쓰지

* 표지사진: 일본의 쉰들러라 불리는 후세 다쓰지 변호사


어느 인간 사회이던, 불의의 정권하에 그 정권이 아무리 엄혹해도, 불의에 맞서는 의로운 사람들은 항상 있지 않을까.


이차대전 동안, 나치독일과 일본 극우 제국주의 정권하에서 양심에 따라 저항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나치하에서 저항운동을 벌였던 그룹들 중에 잘 알려진 그룹들은 1944년 7월 20일 히틀러를 암살하려 폭탄을 터트린 군인들이 중심이었던 20 July plot 그룹과 1942년 6월 말부터 주동자들이 체포된 1943년 2월 18일 까지 반나치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던 뮌헨대학 학생들이 중심이었던 White Ross 그룹이다. 일본에서는 1910년 메이지 천황의 암살모의사건인 고토쿠 사건 (Kotoku Incident)이 있었고, 그이후 천황 히로히토를 암살하려는 시도도 세차례 있었다. 우리가 잘아는 두차례의 시도들은 1925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시도와 1932년 이봉창 열사의 시도다. 또 한차례의 시도는 1923년 12월에 24세의 일본청년 난바 다이스케가 엽총으로 히로히토를 암살하려던 시도였다. 난바 다이스케는 1923년 9월에 발생한 간도대지진 직후에 일본 극우에 의해 자행되었던 조선인과 일본 좌익들에 대한 대학살에 분노하여, 히로히토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다한다. 그 실행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현장에서 잡혀 1924년 11월 15일에 사형된다.


고토쿠 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사형에 처해졌던 무정부 사회주의자 고토쿠 슈스이를 법정에서 대변한 변호사는 일본의 쉰들러라 불리는 후세 다쓰지였다. 2004년에 한국정부로부터 일본인 최초로 건국훈장을 받을 만큼 그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변호에 헌신을 다했다. '조선 문제는 결코 조선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조선 문제는 동양의 발칸 문제이다. 조선은 세계 평화와 혼란을 좌우하는 열쇠이다. 전 세계의 문제이자 전 인류의 문제다.'라는 글을 남겼다하니,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


이렇게 나치와 일제하에 불의에 항거했던 독일인들과 일본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 나치독일과 일제가 패망한 후, 독일과 일본사회는 자신들의 과거를 어떻게 반추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오펜하이머> 3, 현대과학기술의 본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