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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Apr 01. 2024

2024년의 부활

2000여년 전의 예수님 부활을 21세기 오늘 경험하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 어느 한국본당에 주임신부로 일하시는 미국 신부님으로부터 부활에 대해 들은 강론은 내 인생의 든든한 길잡이로 마음에 새겨져 있다. 예수님의 큰 부활을 매일매일의 삶에서 경험하는 이야기였다. 엄청난 에네지로 세상을 살아오던 내가 노쇠해 가는 열병으로 거의 10여 년을 서서히 죽어가는 것같이 몸의 변화에 마음도 흔들려가며 그 흔들림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던 중 오늘 우연히 아르헨티나의 성당 앞을 힘들게 지나가던 부활절에 예수님과 함께 나도 새로 살아났음을 느낀다!!


아르헨티나 바릴로체의 고성당 Cathedral Our Lady of Nahuel Huap

저녁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아침에 호텔을 떠나 주변을 무작정 돌아다녔다. 휠체어로 달릴 때 내리막 경사로는 환호와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그와 동시에 나이가 들자 돌아올 때의 오르막에 대한 걱정이 갈까 말까 망설이게 한다. 가진 돈도 다 썼는데 밥을 사먹을 돈도 없고 택시를 탈 형편도 안된다. 제대로 가지고 온 아르헨티나 페소를 모두 쓴 것이다. 무거운 백팩은 호텔에 맡겨놓고 나와 진짜 빈털터리로 거리를 나선 때라 내리막 길은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며 머리를 굴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잘 사귀어 논 호텔 지배인에게 문자를 보내 데리려 와 달라고 해도 되고 며칠 동안 여행스케줄을 잡아주었던 여행사 직원에게도 연락을 해 차를 보내달라고 하고 호텔에 도착해 크레디트카드로 계산을 해 주어도 되겠다는 좋은 옵션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고 팔로 젓지 않아도 신나게 내려갈 수 있는 내리막 길에 자신감이 뿜뿜! 아! 그런데 울퉁불퉁한 거리가 나의 가속을 막아섰다. 뭐 그래도 올라가는 것보다는 쉬워서 기분이 좋았다. 저 아래쪽에는 큰 호수가 있어 꼭 가까이 가고 싶었다.   


Lake Najuel Huapi in Bariloche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옵션을 생각해 놓는 것은 중요하지만 나는 꼭 도움이 필요한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호수 주변도로로 내려왔지만 그쪽은 대부분 순환도로로 자동차들만 다니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문 닫은 지 오래됐는지 허름하게 무너져 내리는 호텔도 있었다. 인도는 갈수록 점점 거칠어졌고 신나게 내려왔던 곳을 올라가려고 올려다보니 천야만야한 절벽 같은 느낌에 시도해 보려는 엄두조차 나지 않게 보도블록들도 여기저기 파손된 가파른 인도였다. 도움을 청할까 생각하던 중 갑자기 웅장해 보이는 돌로 지은 고성당으로 이어지는 한 오솔길 경사로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혼자서도 올라가는 게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움을 청할까 도전을 해볼까 두리번 대던 중 나는 이미 끌리듯 오르기 시작한 자신을 보았다. 가끔 보이는 사람들이 걱정하고 도와주겠다고 덤빌까 봐 중간중간에 쉬며 사진을 찍어가며 올랐다. 우리나라 시골길 같은 흙길로 거대한 성당 (Cathedral Our Lady of Nahuel Huap)의 건물옆을 따라 준비된 아주 긴 오르막길을 따라가다가 문득 예수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 길은 성당으로 이르는 길이었고 오늘은 바로 부활절이다.   


성당옆 오솔길

 이는 분명 힘이 들어도 해낼 수 있는 길로 나를 인도 하심이었다. 오르막 흙길이면서도 평지를 가는 정도의 힘만 들었다. 천천히 내 안에 자꾸만 졸아들던 나 자신이 다시 자신감으로 가득 찰 수 있게 된 것이다. 죽을 것같이 힘들어하던 잃었던 생명에서 다시 자신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되는 것이 오래전 한 신부님이 하셨던 매일매일 우리에게 일어나는 부활의 경험이라는 강론도 내 마음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Cathedral Our Lady of Nahuel Huap 성당 입구와 장미가든

이번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대학생들로 구성된 찬양대를 만나 고등학교 대학교 때 열심히 참석하던 예수전도단의 뜨거운 모임 때의 뜨거운 가슴을 느끼게 하고 이곳에서 시간을 마지막 하는 순간에 예수님의 부활을 내 삶 속에서까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냥 우연히 생길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내년에 돌아와 이 대학생 팀들과 파타고니아의 안데스 산맥을 따라 남극까지 지방 현지인들을 위한 강의투어 겸 자동차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도 벌써 설레며 견뎌낼 자신감이 있다. 이제 몇 주일 후면 정년을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나를 준비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이었음을 깊이 느끼는 좋은 시간이었다.


Adios por un rato! 잠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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