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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May 05. 2024

종교의 자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사실이네...

아주 아주 전에 나는 수녀회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물론 수녀가 되려고 간 것은 아니라 수녀님들도 돕고 내가 원하던 사회사업가가 되기 위해서 경험을 쌓는 기회가 되었던 곳이다. 그중에 한 여성은 나에게 수녀가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도 하며 그의 영적경험을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의 가르멜수녀원에 입회를 했다. 우리 몇 명은 그를 따라 가르멜수녀원을 갔었다. 수녀원들은 각 수녀원마다 봉사하고 헌신하는 분야가 다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녀님이 속했던 성심수녀원은 예전에 춘천의 성심대학과 같이 고등교육을 기본 이념으로 삼고 있다. 메리놀 수녀원은 6.25 전쟁직후 많은 간호사 수녀님들을 한국에 파견해 봉사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 가르멜 수녀원은 매우 달랐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가르멜 수녀원은 폐쇄 수녀원으로 그곳 수녀님들은 세속과 완전히 단절을 하고 수녀원 내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헌신하는 수녀원이었다. 


친구는 그 험한 기도의 길을 간다고 했고 수녀원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많은 예비수녀님들과 그들의 친인척으로 수녀원은 붐볐었다. 세속인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가족들과 나누고 부모님들 축복과 아쉬움을 뒷전으로 하고 수녀님의 인도를 따라 수녀원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한참이 지나 예비수녀복으로 갈아입고 창문 너머 저쪽에 등장을 했고 우리들은 이쪽에서 그들을 눈물을 흘리며 응원했다. 그때 예상치 않게 우리 친구가 원장 수녀님에게 나를 가리키며 저 친구가 수녀가 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내가 장애인인 것을 보셨던 원장 수녀님은 장애인은 수녀가 될 수 없지만 장애인들끼리 모여 운영하는 수녀원을 시작하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수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거니와 장애인만 분리된 수녀원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당시는 장애인 수녀원이 없었다. 1983년 장애인 공동체로 시작된 모임으로부터 장애인에게 복음전파를 목적으로 "작은 예수 수녀회"가 1992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성당에서는 비장애인 신부님, 수사님, 수녀님들로 구성된 견고한 교회체계에서 장애인 교우와 그의 부모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마련되고 있지 않아 안타깝다. 


불교는 어떠한가? 나와는 달리 우리 엄마는 찐 불교인이다. 밤마다 밤마다 천수경을 읊조리시며 열심히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했고 크고 작은 소원을 낱낱이 빌곤 하셨다. 종교가 다른 엄마와 나는 서로의 종교를 다른 가족에게 전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적에는 엄마를 따라 이 절 저 절을 많이 다녀본 경험이 있다. 땅꼬마일 적에는 몸이 불편한 나를 부처님께 낫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리기 위해 안양의 어떤 절에 얼마동안 머물게 한 적도 있었다. 엄마도 없이 조용한 절간의 사랑채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때마다 내 또래의 꼬마스님이 와서 내 손을 이끌고 산에 올라가 큰 나무에 줄을 매달아 그네를 만들어 주기도 했던 좋은 기억도 있다. 그런데 성당보다도 절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더욱 없다. 무엇보다도 왜 그렇게 절은 다 경치가 아름다운 깊은 산속에 있는지 사람이 만든 절의 위치와 건물은 장애인에게 전혀 종교의 자유를 허락지 않는다. 요즘은 불교에서도 도시에 들어온 곳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첩첩산중에 높은 계단과 휠체어가 다니기는 불가능한 요새에 위치하고 있다. 


이제 나는 교회를 다닌다. 장애인의 선교를 목표로 하는 밀알선교단에 자원봉사도 하고 여기저기 장애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회에 강의를 다니기도 한다. 작은 교회에서도 목사님, 전도사님, 또는 신자들의 관심에 따라 큰 조직인 성당이나 불교보다는 쉽게 크고 작은 장애인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교회에서는 장애인끼리 따로 예배를 보는 프로그램에서 점점 일반 신자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통합예배까지 추진되는 쪽으로 발전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본당에서 강의를 하러 가는 경우마다 의아하게 생각되는 게 있다.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는 단은 높은 단상 위에 있고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다 계단이 있다. 성산 (에스겔 28:14-16)은 교회 혹은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문자적으로는 시온의 "언덕"을 말한다. 그리고 성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집인 성전에 들어가 제단에 번제와 희생을 드린다 (사 56:7). 또 야곱은 자다가 꿈꾸고 일어나 제단을 쌓았는데 (창세기 28:10-19), 어감상 "성산" "성전" "제단" "올라가" "쌓으라"등은 확실히 장애인의 접근권이 수월할 것 같지 않다. 


성당과 교회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갈라진 사건의 해석이다. 휘장이 갈라져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오심으로 누구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성당에서는 신부님께 죄를 고하는 고백성사를 중요시하지만 교회에서는 그냥 내가 직접 기도로 죄를 인정하고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해석한다. 나는 성소의 휘장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고 우리 곁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이 참 좋다. 마치 그것은 내가 갈 수 없는 "높은 곳"의 하나님이 내가 있는 "낮은 곳"으로 내려와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휘장 찢어짐의 사건은 "단"과 "계단"의 없어짐이라고 느껴진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며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데, 왜 교회에는 아직도 높은 단을 설치해 장애인이 갈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곳에 임재하시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니 굳이 단상 위로 올라가고 말고도 필요하진 않겠지만 예수님이 죽음으로 부숴버리신 장애물들이 왜 있는지 늘 궁금하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짧은 생각일 거라며 예수님과 나는 피식하며 엷은 미소를 나눈다.


이슬람교는 어떠한가? 이슬람에 대한 공부를 해보면 흥미롭고 매력적인 종교이긴 하다. 튀르키예에 갔을 때 이슬람 성전을 찾은 적이 있다. 웅장하게 지어진 이슬람 성전의 입구는 반드시 성전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위엄을 자랑하고 있고 신자들은 계단을 올라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꼭 신발을 벗고 선 자세에서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는데 계단부터 장애인은 들어갈 수가 없다.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이슬람 제1의 성지인 메카를 가보는 것이다. 메카에 있는 검은 천으로 덮인 카마 신전을 도는 그 광경은 참으로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슬람 교인이라면 생전에 꼭 한번 가야 한다는데 비이슬람 사람은 허락이 되지 않는다니 내가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더 나아가 이슬람 여성들은 남성 보호자 없이는 혼자 갈 수가 없었던 곳이다. 다행히 이슬람 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 2021년부터 여성이 혼자 순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 장애인은 혼자 갈 수 있을까? 한국의 이슬람 사원은 가 보지를 않아서 엘리베이터나 리프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이슬람 사원과 비슷하게 건축된 이태원의 사원도 앞의 압도하는 계단이 있을 것 같다. 


이렇듯이 장애인에게도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지만 인간이 만들어놓은 환경적 제제로 인해 실질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도 없고 주장할 수도 없다. 종교는 어떤 종교이든지 믿는 모든 사람에게 소속감과 안전함을 준다. 각 종교지도자들은 진정으로 그들이 믿는 신의 뜻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경배할 수 있도록 교회의 접근권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All means All" "장애인의 영적생명도 소중하다"라는 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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