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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Sep 15. 2024

tl;dr

넘 길어, 안 읽음

아직도 그때의 경험이 생생한데 돌아가지지는 않는다. 책이 귀했던 어렸을 때 우연히 "비밀의 정원"이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비밀의 정원 (The Secret Garden)은 영국계 미국인인 프랜시스 버넷 (Frances Burnett)가 저자로 1911년에 처음 발행된 어린이 소설이다. 책 줄거리는 부모의 죽음으로 고모부 댁으로 가서 살게 된 메리가 그 집에 오랫동안 방치해 두고 발길을 금했던 정원을 발견하고 비밀리에 그곳을 드나들며 건강도 회복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는 이야기이다. 


메리가 한 마리 울새의 도움으로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찾고 어른들 몰래 들어가 정원을 가꾸게 되는데 그곳에 하인의 남동생과 장애로 인해 골방에 갇혀 살고 있던 사촌동생인 콜린과 함께 정원에서 뛰어놀곤 했다. 그들이 아무도 모르게 살금살금 정원으로 가서 열쇠로 문을 여는 순간 그들만의 세계인 정원이 눈앞에 펼쳐지는 그 구절을 읽는 순간마다 나는 바로 그 아이들과 함께 몰래 정원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정원에서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지내다가 그 책을 덮음으로 현실로 돌아오는 경험을 매일 밤 했었다. 


그렇게 책 속의 주인공과 그들의 정원으로 들어가 함께 움직이는 강한 몰입경험은 나이가 들며 조금씩 퇴색되었다. 나이가 좀 들어서는 작가가 표현해 내는 주인공과 공감하며 꼭 한번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게 책을 펴고 읽는 동안에는 그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같이 생명체로 느껴지는데 책을 덮으면 생명이 없는 그림 속의 사람으로 느껴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지금도 책을 읽을 그렇게 몰입해 장면으로 빨려 들어가 주인공의 일부가 되는 느낌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 


지금은 읽는 것도 듣는 것도 집중이 어렵다. 드라마도 유튜브에 올라오는 동영상도 첫 몇 초간에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며 과감하게 바로 떠나는 것이다. 그 첫 몇 초 사이에 나의 관심을 끌려면은 역시 과감하고 자극적인 내용이 획기적인 속도로 내용이 전개되어야만 한다. 요즘 밀레니엄 세대가 그렇다는데 학생을 가르치느라 새로운 텍크롤로지를 대하고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다 보니 나의 특성도 그들과 비슷해진 것 같다. 요즘 내가 독서하는 방법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오디오 버전을 틀고 귀로 들으며 눈으로 책의 구절을 따라 읽는 것이다. 


"tl;dr" 일명 Too Long; Don't Read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즉 "넘 길어 안 읽어"인데 백 퍼센트 나의 특성을 대변한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이 30-40대 젊은 층이다 보니 어린 자녀와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과에서 일하는 교수는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오기도 한다. 제자들도 자녀를 데리고 오는데 하나같이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일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핸드폰을 쥐어준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빠른 영상과 음악으로 아이의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서너 살만 되면 이미 핸드폰 작동법을 부모보다 더 빠르게 잘하기도 한다. 


맞다. 그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테크놀로지가 기초가 될 테니 어려서부터 자주 접하고 사용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하지만 테크놀로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는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질문하는 능력"이라는 점이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말에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봐야 갖고 싶어 진다. 뭔가 원하려면 역시 많은 세상경험을 해야 정확하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뛰어놀고, 가보고, 경험해 보고, 읽어봐야 한다. 소비자 입장보다는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 현실 이야기뿐만 아니라 상상을 자극하는 경험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것은 역시 느린 삶의 "읽기"를 통해서이다. 아이들에게 손쉬운 핸드폰을 건네기보다 책을 쥐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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