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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Jun 09. 2024

멀리건과 노인우대

무제한 멀리건을 좋아해야 해?

어렸을 때 나는 연세가 많으신 유모와 컸다. 키도 자그마하시고 허리도 약간 구부정하셨는데 웃는 얼굴에는 평평한 곳이 없이 주름이 가득하셨다. 그런데 그분을 향해 드는 내 맘은 불쌍하다는 감정이 있었다. 그 당시 사람이 늙어 간다는 개념이 없던 나는 나는 꼬마로 오빠는 청년으로 노인은 노인으로 태어난다고 생각을 했고 힘이 넘치는 젊은 이웃집 사람들과 비교해 힘이 적어 보이던 모습에서 노인으로 태어나신 게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어리게 태어난 나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초중고를 지나는 동안에도 막내였던 나는 늘 애취급을 받았기에 키는 커지지만 나이가 든다는 생각도, 어른이 되어간다는 생각도 못해봤다. 대학생이 되어 첫여름방학을 맞았을 때는 이제는 내가 내 삶을 설계하고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지만 세월은 계속 흐르는 것이고 나를 포함한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정말 내 중심으로 모든 결정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정말 내 멋대로 살며 산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너무 좋았다. 나를 찾는 사람도 있었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가르쳐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를 무섭게 달려도 피곤함이란 단어의 의미조차도 몰랐다.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머릿속에서는 새소리와 음악소리가 들렸고 새로운 하루에 가슴이 뛰었으며 그날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빨리 달려들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했다. 그러며 40대 초반쯤이 되었을 때 무슨 일이었는지 “내가 그 일을 하기에는 좀 어려서”라고 말을 하자 듣고 있던 제자가 “교수님이 뭘 어려요”라고 외쳤다. 나는 그 소리에 소스라 치며 놀랬다. 내가 다른 사람의 눈에 “나이”가 든 중년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잠시 스친 나이 듦에 대한 자각은 바로 잊혔다.


나에게는 늘 넘치는 에너지가 있었다. 모든 하는 일에 남들의 두서너 배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곤 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인 나에게 누군가가 골프를 권했다. 대학원을 다닐 때 한번 접해 본 적이 있는 운동이다. 그 당시 조그만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라는 골프가 일단 공이 너무 작았고 스포츠라고 하기엔 너무 정적인 것 같아서 매력적이지 않았다. 30대가 넘어선 어느 때 교회에서 한 집사님의 간증내용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음주운전으로 자동차 사고가 나서 차가 폐차 수준이 되었는데 술이 한참 오른 중에도 뒷 트렁크를 열어 골프채 가방을 가슴에 안고 경찰을 맞이하자 경찰이 골프채를 함께 걱정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상상이 안되면서도 너무 웃겼다. 그 집사님이 간증 후 바로 내 옆에 앉게 되었다. "전도사님 내가 골프 가르쳐 줄까?"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는 나름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집사님의 간증으로 나는 골프에 입문을 했다. 


집사님을 두어 번 연습장에 만나 이런저런 레슨을 하고서는 그 이후에는 바쁘다며 나오지 않았다. 이미 나는 그분의 추천으로 엄청 비싼 골프채를 구입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책을 사서 읽어가며 혼자 매일 골프장을 찾아 연습했다. 집사님의 성공비결은 1-2대가 넘는 덤프트럭에 담긴만큼의 골프공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 이상을 친 것 같다. 내가 연습하는 동안 골프공의 거리와 탄도를 본 어떤 여자분이 나에게 "선수요?" 하며 물으며 "나도 보기 (Bogey) 플레이는 해"하셨다. 그때 나는 그게 얼마나 잘 치는 것인지 몰라 어정쩡했던 내 반응에 지금도 미안하다.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많은 칭찬과 놀라움을 표할 것이다. 한 1년쯤 지나 장애가 있음에도 나도 남들만큼 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4명의 팀을 만들지 않아도 그냥 골프장에 가서 네 명의 썸을 만들어 필드로 나갈 수 있어서 골프친구가 없는 나는 늘 새로운 사람들과 골프를 쳤다. 


골프가 지루한 운동이라 매력이 없다고 한 생각을 지울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몰입했다. 골프는 마치 붓글씨를 쓰는 상황과 비슷하게 나의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 너무 좋았고 매번 그 이후의 샷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그 넓은 골프장을 스스로 계획하고 작전을 짜는 것이 매번 다르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골프를 쳤다. 한국사람들이 워낙 골프인구가 많아 어디를 가던 한국인 팀과 만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 노인분들은 골프를 진짜 잘 치신다. 그런데 비해 미국 노인분들은 취미생활 정도이기 때문에 잘 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한 번은 금발의 키가 큰 할머니 팀과 골프를 치게 되었다. 첫 번째 홀에서 처음 티샷이 잘 못 맞으면 벌점 없이 한번 더 치게 배려해 주는 것을 멀리건이라고 한다. 키다리 할머니가 두 번째도 실패를 하자 같이 치러 나온 친구들이 다시 치라고 격려했다. 키다리 할머니가 짜증 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자기 팀에서는 70대까지는 멀리건을 한번 주고 80이 넘으면 치고 싶을 만큼 준다는 것이다. 그러며 할머니는 "80이 넘으면 힘이 없어서 멀리건을 줘도 못 쳐"하며 웃는 것이었다. 솔직한 그 할머니 하고 치는 것이 즐거웠다. 


우대를 줘도 사용할 수 없다던 할머니의 말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결국 우대가 우대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노인우대, 장애인 우대, 노약자 우대등 많은 우대의 기회가 있다. "우대"는 일반인보다 우대의 대상은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일반인의 배려심과 동정심에 의존해야 할 뿐만 아니라 획일적인 우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평등(Equality)"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등은 강자나 약자나 다 같은 조건이 주어질 때이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한 장의 투표권을 갖고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권과 사회권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한 서비스는 사람들의 개인적 다양성 때문에 평등함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바로 "형평성(Equity)"를 고려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서비스 없이, 어떤 사람은 약간의 서비스로, 또 어떤 사람은 좀 더 많은 서비스가 주어줘야 평등하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형평성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려면 우대보다는 누구나 모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차별이 없어야 하고 참여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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