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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책과 노트

추억의 물건

by 스마일맘

추억의 물건6

책장 앞으로 가서 오래된 요가 책과 이론 공부를 적은 노트를 꺼내었다. 요가 책에 표시했던 포스트잇은 아직도 빼곡히 붙어 있고, 동작 하나하나를 빼곡히 그리고 적은 노트도 그대로였다. 20년전 이때는 아들 셋을 돌보며 살림하느라 아주 정신없던 시절이었는데도 건강을 절실히 원했기에 시간을 내어 요가를 배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건강하지 않았다. 갑상선 항진증으로 늘 피곤했었고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고, 그래서 ‘나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렵게 시간을 내어서 요가를 시작했다. 처음 요가를 배울 때 선생님은 내 몸이 너무 굳었다며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요가를 하면 할수록 몸이 점점 유연해지고, 굳었던 몸이 점점 유연해지면서 내 몸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고, 어깨와 허리의 긴장이 풀리며 허리 라인이 예뻐졌다. ‘아, 나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겠구나’ 하는 기분을 처음 느꼈던 것도 그때였다.


그때에 나는 살기 위해 요가에 푹 빠졌다. 이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트에는 호흡법, 근육의 사용법, 명상의 의미까지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강사의 꿈도 꾸게 되었다. 강사가 되어 나처럼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요가로 건강을 되찾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정말 허벅지 안쪽이 피먹이 들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


그런데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수업을 맡아해 주었던 요가 선생님은 자격증 시험 등록을 자꾸 미루고 또 미루었다. “아직 물구나무서기가 덜 준비됐어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결국 우리는 자격증 시험 기회를 아예 얻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낸 레슨비와 등록비를 선생님이 다 써버렸다는 것을. 나와 함께 배우던 동생, 그리고 무용과 학생 여섯 명 모두 허탈하게 남겨졌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지 않고 자취를 감춰 버리다니~~~


​그때의 배신감과 허망함은 컸지만, 지금 돌아보면 웃음이 난다.


물론 그때의 내 마음은 심각했지만..


요가 자격증은 따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때 배운 요가의 기운은 내 삶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남편의 몸이 불편하고 뭉치면 내가 수련했던 동작으로 풀어주곤 한다. 자격증 못 딴 것을 억울하다고 할 때면 남편은 농담처럼 말한다.


"그래도 나한테 가르쳤으니 괜찮아"라고 말하곤 했다.


​요가 선생님과 인연은 비록 이렇게 끝났지만, 그분이 가르친 열정만큼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어찌나 독하게 연습을 시키는지 허벅지 안쪽에 피멍이 들 정도로 다리 찢기 자세를 연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고통의 시간 끝에 몸이 조금씩 열리고 자세가 곧아지면서, 선생님께 “처음 보다 몸 라인이 제일 예뻐졌다"라는 칭찬을 들었을 때의 뿌듯함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지금은 그때처럼 강도 높은 수련은 하지 않지만, 아침과 저녁으로 태양 요가 자세를 하며 몸을 푼다. 덕분에 하루의 리듬이 정돈되고, 마음도 고요해진다.


책장에서 다시 꺼낸 요가 노트를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그때의 나, 정말 대단했어.”


열정적으로 배웠지만, 강사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요가를 놓지 않았던 시간. 비록 자격증은 내 손에 없지만, 나는 여전히 요가를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자격증보다 중요한 건, 내 몸과 마음의 근육이 함께 성장한 나 자신이었다.”


​요가 책과 노트가 살며시 속삭인다.

​“넌 이미 충분히 해냈어.”

감사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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