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두운 이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미국원주민들이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들이 살았던 방식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다른 나라의 근원이 되는 이야기를 읽어 본 경험이 없기에 나의 흥미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고, 원주민 소설가 데브라 액파이 얼링 작가님 이력도 한몫을 했다.
책을 이루는 글의 많은 부분들이 원주민 자치지구를 은은하면서 부드러운 터치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단어들로 서술하지만 내용만큼은 표현 방식과는 사뭇 다르게 직설적이면서도 강하고 쓸쓸하면서도 외로움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먼저,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한 후 표지를 열고 첫 문장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첫 문장부터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내 상상력의 밑천을 금방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한 장 한 장 뒤로 넘어갈수록 내 머릿속은 책 속의 문장들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공간과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곳의 향기와 바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깊이 빠지게 된다.
내용도 이렇게 평온하고 온화하면 좋겠지만 사실 내용은 읽을수록 마음이 힘들어지는 내용이 나오게 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힘들어 책을 닫게는 되지 않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퍼마 레드: 가장 어두운 이름]은 원주민 자치지구에서 살아가는 원주민 엄마와 백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루이스가 십 대 시절을 거치면서 내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루이스가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네 명의 사람들이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 역시나 가장 중요한 사람은 그녀를 키워 준 할머니, 그리고 루이스에게 집착하는 원주민 남자 바티스트, 원주민 자치구에 사는 백인 남자 하비 스토너, 원주민이면서 자치구 경찰인 찰리이다.
[퍼마 레드] 이게 무슨 뜻인지 여러분은 무척이나 궁금하실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제일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책을 읽으면 제목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니 미리 알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 불길의 파란 혀에 벅스킨 낙엽송이 탄다.
. 불빛은 작은 촛불이 된다. 깜빡이더니 사그라지면서 흰색이 되고 또다시 사그라져 연기가 된다.
. 겨울비 가은 은색 너울에 올라타서 루이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 건조한 피부가 그녀의 피부에 닿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침을 꿀꺽 삼켰고,
. 루이스에게서는 레몬과 소금 냄새, 달콤하기까지 한 냄새가 났다. 팔에 닭살이 돋았다.
. 너무 무거웠던 비는 낮은 하늘에서 천 개의 은색 물줄기를 마친 듯이 퍼부었다.
. 원주민은 어리석기 때문에 죽었다. 수녀들은 나에게 원주민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끊임없이 말했다. 하도 많이 말해서 나는 우리가 어리석다고 믿기 시작했다.
. '개나 원주민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 피부 하얀 혼혈 자식들은 공터 가장자리의 따뜻한 톱밥에 쭈그리고 앉아 있거나 티피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서는 튀긴 빵을 파는 가판대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 루이스는 혼현인으로 사는 게 어떤 건지 알았다. 그녀는 평생을 자치 지구에서 살았다. 이곳이 자신의 고향이기는 했지만, 자신도 원주민이지만, 이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 무르익어가는 늦은 오후의 빛, 낮이 끝날 무렵의 소강하는 빛,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그 빛이 세바스찬 수녀의 반달 모양의 안경에 고였다.
. 바티스트는 인이던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디언이 되었다. 상대가 좋아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인디언이었다.
. 그의 피 안에 든 독이 자신의 심장을 불보다 빨리 쪼그라들게 하기 전에, 그에게 자신을 줌으로써 그의 욕망을 질식시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루이스는 게으른 태양이 느릿느릿 맴도는 오후가 좋았고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의 보라색 배가 좋았다.
. 차창을 내렸더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했다.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다. 밝은 오렌지색으로 시든 잎을 보자 아찔해졌다. 계절의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다.
. 번지르르한 땀이 메마른 태양 아래 소금으로 변하는 걸 느꼈다. 유리처럼 반짝이는 물 때문에 눈이 시렸다.
. 사랑에는 사랑할지 사랑하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
본능이나 희망을 뛰어넘는 깊은 감정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너무 갈망하게 만드는 바람에 우리는 아침에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새로운 태양이 떠 오르거나 잔디가 반짝이는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 눈에는 삶에서 부족한 것만 보일 뿐이다. 기분 좋은 한숨을 잃고 초조함만 남은 기분처럼, 획신할 수 없는 것만 볼지도 모른다.
. 그건 그들이 그녀를 부르는 가장 어두운 이름이었다. 그건 예의 바른 사람들이 쉬쉬거릴 수 있는 온갖 나쁜 이름을 상징했다. 자신은 원주민에 불고하다는 일종의 꼬리표였다.
. 여름이다. 태양이 너무 뜨겁고 건조해 녹색 잎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 북소리가 그녀의 심장처럼 빠르게 뒤지만 루이스는 천천히, 천천히 춤을 추며 그에게로 다가간다.
루이스가 너무 아름다워 태양은 그녀 뒤에 숨은 채 얼굴을 붉히며 매끄럽게 땋은 머리카락 위로 그녀의 정수리를 어루만진다.
글 내용 중 시간과 장소, 인물의 감성을 표현한 인상적인 문장 몇 가지를 추려 보았는데, 이 글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책의 내용을 되새김하게 되었다.
21세기 살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인종 갈등을 겪고 있는데 사실 이런 갈등은 아주 오래오래전 인류가 삶을 시작한 그 순간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해결된 시기가 없을 정도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인 듯하다.
이 문제와 더불에는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장인과 비 장애인 갈등, 젠더 갈등,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 등 끊임없이 많은 갈등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과연 인간이 풀어낼 수 있을까 잠깐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인간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희망 섞인 결론을 내면서 지금의 우리가 탐욕적이고 쾌락적이며, 본능을 우선시해서가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에 그런 유전자가 내재되어 있기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갈등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공감이라는 것을 배웠고 그것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알고 과거를 통해 과오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기에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은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에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 지금은 암담하고 힘들더라도 잘 극복해 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