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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movie color Aug 31. 2021

영화 <그린 나이트>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정/리뷰

생명과 부패의 색,녹색

뜻밖의 관람, 관람 후 어리둥절, 그리고 깨달음


어느 날 오랜만에 극장에 가고 싶어서 옛날부터 같이 극장을 가는 영화 친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명씩 있는 친구)한테 연락을 해서 CGV로 향했다. 원래는 <프리 가이>라는 영화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약속시간보다 늦어서 저녁 먹을 시간이 애매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영화값이 너무 올랐다. 주말 저녁에 보려니 영화값이 무려 14,000원... what the 그래서 할인해서 볼 방법을 찾다가 먼지가 쌓여있는 나의 쿠폰함에 아트하우스 둘이서 만원 쿠폰이 있길래 <그린 나이트>를 보기로 했다. 친구도 나도 대중적인 영화보다는 의미 있는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전에 A24배급사 영화라고 하여 은근한 기대도 있던 영화였다. 오로지 A24 배급사 영화, 중세시대, <고스트 스토리> 감독, <슬럼독 밀리네어> 주연배우. 이 정도 정보를 갖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재미있게 볼 기대감과 함께 영화관에 앉았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지금까지 살면서 영화를 보면서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던 영화는 없었는데 이 영화가 그 첫 번째가 돼버렸다. 머리 쾅 세게 맞은 것 같았다. 같이 관람한 친구도 그렇다고 했다. 영화의 영상미는 정말로 황홀했지만 나의 지적 감각들은 시무룩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든 해석을 하려고 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영화 속 수많은 메타포들이 놓여있던 것 같은데 그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너무나 아쉬웠다. 그리고 밥 먹고 봐서 그런지 졸리기도 해서 집중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의 스토리 조차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집에 와서 왓챠 피디아에 검색하여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보니 그제야 영화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영화는 <가웨인과 녹색 기사>라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숙지하고 들어가야 했다.(여러분들은 보시기 전이라면 꼭 숙지하고 관람하시길...) 그것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보니 영화가 새롭게 느껴졌다. 그 장면들에서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영화가 다시금 좋아졌다.(영화를 본 직후에는 이해가 1도 안 돼서 정말 불편한 영화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동진 평론가님의 해설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보고 지금 이렇게 영화 리뷰를 써본다.


(글을 자주 써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이 글도 정말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 반성!)

신기하게 영화 포스터에는 녹색이 없다.

영화 <그린 나이트>의 줄거리


검은 화면에 나레이션으로 나온다. 그리고 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영화는 시작된다. 성에 불이 나고 어떤 이들이 말을 타고 도망친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자고 있던 '가웨인'(데브 파델)은 찬물 맞고 놀라 잠에서 깬다. 잠에서 깬 그 앞에는 '에셀'(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말해준다. 그렇다 그는 매음굴에서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보낸 것이다. 에셀은 장난치고 도망을 가고 가웨인은 그런 에셀을 벌꿀마냥 쫓아간다.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웨인. 오늘은 왕궁의 연회가 있다. 어머니 보고 같이 가자고 하지만 어머니는 매년 똑같은 행사라 싫다고 한다. 가서 재미있게 놀고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연회로 간 가웨인. 


연회에는 왕과 왕비, 그리고 기사들이 자리에 앉아있다.(원래 이야기인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차용하면 왕은 아서왕, 왕비는 기네비어 왕비, 기사들은 원탁의 기사 들일 것이다.) 왕은 자신의 조카인 가웨인을 불러 그동안 신경을 못 써주어서 미안하다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가웨인에게 모험담을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가웨인은 매음굴에서 여자와 술만 취했지 모험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고 왕에게 말한다. 기사라면 모험담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왕과 왕비. 가웨인은 아직 기사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신세이다. 한편 가웨인의 어머니는 탑에 올라가 그녀의 자매들과 눈을 가린 채 주문을 외운다.(원작 소설에서의 모건 르페이가 영화에서는 가웨인의 어머니로 나온다는 설정이다.) 그 순간 천둥 번개가 치면서 연회장에 나타난 그린 나이트. 거대한 도끼를 들고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한테 게임을 제안한다. 자신의 목을 치는 기사에게는 기사로서의 명예가 주어질 것이고 대신 1년 뒤 똑같이 자신도 목을 내놓아야 한다는 제안. 그 순간 가웨인은 자신이 하겠다고 하며 앞으로 나온다. 그런 가웨인에게 검을 내어주는 왕. 가웨인은 잠시 주춤하지만 결국 목을 내어주고 있는 그린 나이트를 향해 검을 힘껏 내리친다. 한 번에 목이 잘리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린 나이트의 머리. 가웨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살며시 띄어진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리가 없는 그린 나이트의 몸이 자신의 머리를 들며 일어난다. 1년 후에 보자며 떠나는 그린 나이트. 그렇게 가웨인은 위험한 게임의 운명을 맡기게 된다.


목이 베였지만 살아서 떠나는 그린 나이트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가웨인


거의 1년 후. 가웨인은 술집에서 다가오는 운명에 대한 불안감에 술에 찌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옆에서 이제 죽으러 가야 한다는 시비에 평민과 싸우는 가웨인.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녹색 성당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가웨인에게 녹색 허리띠를 건네주는 어머니. 녹색 허리띠가 가웨인을 어떠한 피해로부터 지켜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린 나이트가 두고 간 도끼도 챙겨서 참수를 당하러 가는 여정을 떠나는 가웨인. 어느 정도 길을 지나자 처음으로 지나가는 행인을 만난다. 그 주위는 온통 전쟁으로 인해 남겨진 잔해들이 있다. 가웨인은 소년에게 녹색 성당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다. 소년은 대답을 해주고 가웨인은 고맙다고 하고 떠나려고 한다. 그때 소년은 답례가 없냐고 묻는다. 그러자 가웨인은 그제서야 주머니에 있던 동전 한 닢을 던져준다. 

힘든 여정을 떠나는 가웨인

다시 녹색 성당으로 향해 가고 있던 가웨인은 숲길에서 도적들을 만나게 되고 그 배후에는 아까 만났던 소년이 있었다. 도적들은 가웨인을 밧줄에 묶어두고 모든 물건들을 갖고 도망간다. 가웨인은 묶여있는 채로 자신이 해골로 변하는 환상을 겪게 된다. 그렇게 해골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본 가웨인은 어떻게든 밧줄을 풀고 다시 여정을 떠난다. 너무 힘든 가웨인 가는 도중에 폐허가 된 집을 발견한 후 들어가 주인을 찾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너무 지쳐버린 가웨인은 침대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잠에 들게 된다. 한참 잠에 빠진 누군가의 목소리에 깨게 된다. 목이 없는 소녀, 위니 프레드라는 소녀가 그의 앞에 있다. 그녀는 연못에 있는 자신의 목을 찾아달라고 가웨인에게 부탁한다. 그런 부탁에 가웨인은 찾아주면 무엇을 주냐고 물어보고는 결국 연못에 들어간다. 연못에 들어가 있는 동안 가웨인은 또 죽음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 소녀의 해골 머리를 되찾아준 가웨인. 소년의 해골 머리를 주자 소녀는 해골로 변하자 깜짝 놀라 자빠지는 가웨인. 그리고 그의 뒤에는 도둑 소년이 훔쳐간 도끼가 놓여있다. 도끼를 챙겨 다시 여정을 떠난다. 

죽음은 가까이 있다.

출발하는데 여정의 시작부터 종종 따라오던 여우가 이제는 아예 곁에서 같이 동행하기 시작했다. 가웨인 가는 길이 너무 험하고 힘들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짓는다. 배가 고파서 동굴의 버섯을 먹어서 환각을 보기도 한다. 또한 가는 도중에 거인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향해 자신을 어깨에 태워달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지칠 대로 지친 가웨인은 어떤 성을 발견하고 그 앞에서 쓰러지게 된다. 눈을 뜬 가웨인은 성에서 깨어나고 눈앞에는 성주가 있다. 성주는 가웨인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고 그런 그에게 며칠을 쉬고 녹색 성당으로 가라고 한다. 가웨인 얼른 녹색 성당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성주는 녹색 성당은 성에서 반나절이면 갈 수 있다고 하여 결국 쉬기로 한다.

친절한 성주

성에는 성주의 아내와 눈을 가리고 있는 백발 할머니가 같이 살고 있다. 성주는 평소 사냥을 즐겨하는데, 가웨인한테 사냥을 해서 얻은 것을 가웨인한테 줄 테니 가웨인도 성에서 얻은 것을 자신한테 달라고 한다. 가웨인은 알겠다고 한다. 둘째 날 성주의 아내는 가웨인에게 책을 하나 선물해준다. 책을 선물 받은 가웨인한테 성주의 아내는 기사라면 답례로 입맞춤을 주는 게 당연하다며 가웨인을 유혹한다. 그 후에도 가웨인을 향한 유혹은 계속되지만 가웨인은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러다 마지막 날에는 가웨인에게 녹색 허리띠를 준다. 가웨인은 녹색 허리띠를 받고 그녀와 키스를 나누며 성적으로 흥분되게 된다. 녹색 허리띠에는 하얀 욕정이 묻게 되고 가웨인 순간 자신이 부끄러워져 옷을 들고 황급히 성에서 빠져나온다. 허겁지겁 나오는 도중에 성주를 만나게 된다. 성주는 자신이 잡은 여우로 준다. 그리고 자신한테 가웨인이 성에서 얻은 것을 달라고 한다. 가웨인은 방금 얻은 녹색 허리띠를 주지 않고 성주의 아내와의 키스를 얻은 대가로 성주한테 키스를 한 후 자리를 뜬다. 

가웨인을 유혹하는 성주의 아내

녹색 성당에 거의 다 온 가웨인. 갑자기 동행했던 여우가 그의 앞을 막아선다. 여우는 가웨인을 향해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곳으로 가면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서 왜 가려고 하냐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가웨인은 그런 여우에 말에 당황하지만 결국 여우의 말을 무시하고 녹색 성당으로 향한다. 그렇게 녹색 성당에 도착한 가웨인. 녹색 성당에 도착한 가웨인. 그 앞에는 그리 나이트가 눈을 감은채 덩굴에 엉켜져 있다. 그런 그린 나이트를 보면 밤을 새운 가웨인. 새벽 동이 트기 시작하고 약속의 시간이 되자 그리 나이트는 눈을 뜨게 된다. 약속을 지키러 온 가웨인을 보고 그린 나이트는 도끼를 건네받고 그의 목을 칠 준비를 한다. 무릎을 꿇고  그린 나이트가 목을 치기를 기다리는 가웨인. 목을 치려는 순간 가웨인은 움찔하고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다시 호흡 가다듬고 참수될 준비를 가웨인. 과연 가웨인은 결국 참수를 당하고 기사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린 나이트를 바라보는 가웨인


여기서부터는 결말 스포일러


다시 도끼를 들고 내려치려는데 또 겁을 먹고 피하려고 하는 가웨인. 미안하다며 다시 심호흡을 하고 목을 내놓고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내려치는 도끼. 가웨인은 이번에는 아예 피하고 그린 나이트한테 미안하다며 도망친다. 도망가는 길에 아까 여우랑 헤어진 곳에 말이 있었고 그것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집에 도착한 가웨인은 명예를 얻고 에셀과의 사랑을 통해 아들을 낳고 그 후 아서왕이 죽은 다음 왕위를 계승해 다른 공주와 결혼하여 에셀을 버리게 되고 전쟁이 나서 아들을 잃게 되고 결국 마지막에는 왕권을 잃어 왕좌에 앉아 스스로 내내 차고 있던 녹색 허리띠를 풀게 된다. 그리고 목이 스스로 잘리게 되고 머리가 굴러 떨어진다. 사실 그것은 모두 도망간 후에 일어날 일들을 가웨인의 상상으로 발현된 것이다. 가웨인은 다짐을 한 얼굴로 허리 숨겨두고 있던 녹색 허리띠를 풀고 머리를 내밀며 참수당할 태도를 취한다. 그런 가웨인을 칭찬하는 그린 나이트. 그는 가웨인한테 "Now, Off with your head."라는 말과 도끼를 내리치고 영화는 끝이 난다. 

가웨인의 여정과 우리의 삶


영화를 보고 참 이해가 가지 않았던 영화였던 만큼 영화를 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브런치에도 글을 못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왓챠 피디아의 많은 이들의 해석 리뷰와 이동진 평론가님의 해석 영상을 본 후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영화를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을 때 봤을 때는 인간의 죄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았다. 가웨인이 영화 초반에 보여줬던 음탕한 생활은 기사와 멀리 떨어진 삶이고 그런 삶은 죽음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즉 인간은 탐욕의 존재고 그 끝에는 죽음이 있다. 그리고 도끼를 들고 가는 가웨인의 모습이 마치 예수가 인류의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를 들고 가는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석들을 들어보면 가웨인의 여정은 우리들의 삶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점을 토대로 나만의 생각 정리해보기로 하였다. 가웨인은 영화 시작부터 매음굴에서 등장한다. 그는 에셀이라는 여인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왕궁 연회 전날 술을 진탕 마시는 전형적인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는 왕이 옆에 앉아 무용담을 들려달라는 부탁에 응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용맹한 기사로써 살아오지 않고 매음굴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청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가웨인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세시대의 무용담이 있는 기사는 현재의 성공한 사람들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성공한 사람은 몇 없다. 만약 많다고 하면 우리는 그걸 성공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성공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가웨인은 기사가 되기를 원했다. 무용담이 있는 기사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린 나이트의 게임에 응했다. 하지만 그는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칼 한 자루도 없었다. 그래서 왕이 친히 자신의 칼을 빌려준다. 그리고 그 칼로 그린 나이트의 목을 쳤지만 그린 나이트는 죽지 않고 가웨인은 1년 뒤 똑같이 참수를 당할 운명에 처해진다. 여기서 그린 나이트가 죽지 않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인데 아마 왕의 칼을 빌려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웨인은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해낸 것이 아닌 제 3자의 힘을 빌렸기 때문에 완전한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가웨인은 그린 나이트의 게임에 응하고 목을 쳐낸 기사로서 유명해지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가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가웨인은 정말 기사가 되기를 원했을까? 아니면 지금의 방탕한 삶에 만족하고 있었을까?


원작 이야기를 보면 그린 나이트는 모건 르페이라는 마녀가 불러낸 존재이다. 영화에서 보면 그 마녀인 모건 르페이는 따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가웨인의 어머니로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왜 가웨인의 어머니는 그린 나이트를 통해 가웨인에게 시련을 주었을까? 이 물음에 이동진 평론가의 해석을 차용해 말하자면 가웨인의 어머니. 즉 모건 르페이는 자신의 아들의 무용담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린 나이트를 불러냈다고 한다. 가웨인의 성공을 위해 어머니가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다. 연회 날 어머니는 일부러 연회장에 가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왕의 옆자리가 비게 되고 그 자리에 가웨인이 앉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다른 곳에서 어머니는 그린 나이트를 불러낸 연회장에 가게 만들었고 마침 무용담이 필요한 가웨인은 그 게임에 응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를 우리의 삶에 빗대어 생각하면 우리는 대부분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성장하기 때문에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모건 르페이처럼 부모님의 계획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계획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더 큰 세상에 가는 것은 어렵다. 공무원의 자식이 공무원을 하고 의사의 자식이 의사를 하는 것처럼 부모에게서 보고 배운 것으로부터 크게 벗어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 가웨인도 어머니의 계획 속에 여정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가웨인은 결국 녹색 성당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칠 그린 나이트 앞에서 그가 눈을 뜨기를 기다린다. 이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린 나이트에게 참수를 당하면 가웨인의 여정은 끝날뿐더러 삶이라는 기나긴 여정도 같이 끝나게 된다. 하지만 가웨인은 도망치게 된다. 상상 속에서 말이다. 그 상상 속 가웨인은 왕위를 계승받게 되고 에셀과 사랑은 나누지만 결혼 귀족 여인과 하게 된다. 그렇게 모든 것이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마치 모건 르페이가 계획한 삶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삶의 끝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다. 무언가 허망하다. 그렇게 허망한 삶을 살아가고 죽는다. 그런 허망한 죽음을 간접 경험한 가웨인은 녹색 허리띠를 풀고 진정으로 죽기를 선택한다. 그런 가웨인을 보고 그린 나이트는 칭찬한다. 사실 그린 나이트에게 죽는 것은 모건 르페이는 계획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다시 왕국으로 돌아와 여정의 무용담을 통해 용맹한 기사로서 환대를 받고 순탄한 삶을 아들이 살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웨인은 어머니의 계획을 저버리고 자신의 죽음 선택했다. 선택한 죽음이 더 숭고한 죽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죽음 앞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가 내 생각이다. 허망한 죽음과 자신이 선택한 죽음. 어차피 같은 죽음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감독은 아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남이 써준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마침표를 찍는 이야기를 갖고 살아가고 죽어라. 그런 감독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 앞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니 살아가는 의미를 찾도록 하자. 

녹색 허리띠와 녹색 도끼


영화 2가지 중요한 소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어머니가 준 녹색 허리띠와 그린 나이트가 두고 간 도끼이다. 영화 속에서 녹색의 의미는 성주의 아내와 가웨인에 대화에서 나온다. 대사가 정확히는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가지 기억하는 것은 녹색은 2가지 뜻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생명과 부패의 상징. 이 2가지 상징이 허리띠와 도끼에 각각 부여받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아마 허리띠가 생명이고 도끼가 부패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녹색 허리띠는 부패를, 그린 나이트의 도끼는 생명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천천히 써볼 생각이다.


먼저 허리띠와 도끼라는 물건의 속성을 생각해보자. 허리띠는 이어지는 속성을 띄고 도끼는 끊는 속성을 띤다. 이런 속성을 단편적으로 보면 사실 상징이 뒤바뀌어 생각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걸 인생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달라진다. 삶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런 시작과 끝을 우리는 삶이라는 허리띠로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허리띠는 양 끝을 겹쳐 결국 시작과 끝이 모호해진다. 하지만 분명히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그 시작과 끝을 모호하게 만들려고 한다. 특히 끝을 말이다. 언젠가 죽음이라는 끝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작은 1년에 한 번 생일이라는 날을 기억하면 생각에 잠긴기는 하지만 죽음은 생각을 하려고 않는다. 우리는 세속이라는 녹색 허리띠를 제각각 차고 있으며 점점 섞어가는 부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모건 르페이가 눈을 가린 채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마법에 홀려 제 앞을 못 보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왜 도끼는 생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로 끊는다는 속성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을 끊는가? 그게 중요한다. 바로 삶이라는 묶여있는 밧줄을 끊는 것이다. 삶을 끊는 것이니 생명이 아니라 죽음 아닌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면들을 생각하면 다르다고 느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인 가웨인이 도둑들을 만나 밧줄에 묶이고 죽음 경험하는 장면이 있다. 밧줄에 묶여있는 가웨인은 해골로 변하지만 주변 숲은 더욱 푸르게 생명의 힘을 뽐낸다. 가웨인을 묶고 있는 것이 끊어진다면 주변의 숲처럼 생명의 힘을 얻지 않을까? 그리고 영화 초반 목이 잘린 그린 나이트를 생각하면 목이 잘렸으니 당연히 죽음과 가까운 이미지가 떠올려야 하지만 오히려 목이 잘린 후에도 살아있음은 더 큰 생명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도끼 옆은 이끼가 자란 질긴 생명력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는 육체라는 밧줄에 묶인 점점 부패되고 있는 영혼들이다. 그리고 그런 밧줄은 그린 나이트의 도끼 같은 것으로 끊어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종교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죽음 다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종교가 말하는 것 말이다. 나는 종교적인 것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삶과 죽음 이 사이에서 인간은 어떤 것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사실 삶이라는 밧줄에 묶여 우리는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대한 것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무엇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잊고 살아간다. 삶은 일시적이지만 어떤 신념은 죽어서도 그 뜻이 이어나간다. 즉 삶이라는 밧줄을 녹색 허리띠와 같은 속세로 더욱 졸라매지 말고 자신만의 도끼로 그것들을 끊고 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좀 더 의미 있는 삶이었으면 한다.


끝맺음


영화가 어려워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었지만 결국 이번에도 어찌어찌 쓰게 되었다. 영화가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가서 해석을 하나도 못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그것을 나름대로 나만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들을 찾으니 역시 영화는 어렵지만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 영화가 갖는 거대한 메시지는 다시 한번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런 대단함을 느끼니 영화 속 장면들도 새롭게 받아들여진다. 오락적인 것을 추구하는 대중들에게는 별로라고 느껴질 영화이지만 영화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완벽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삶과 죽음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세속을 끊고 나만의 것을 만들 도끼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과 함께 오늘 하루도 끝나가는구나. 하지만 이런 하루도 어떤 작은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잠에 들기를.


p.s 이번 컬러는 새벽의 동이 트고 노을이 지고 밤이 찾아온 색.(거의 포스터 색이지만) 거기에 부패와 생명의 색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입혀진다.

<그린 나이트> 컬러



왓챠 평점: 4.5 / 5.0


몇줄평:

생명의 도끼로 부패의 허리띠를 끊을 자가 몇이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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