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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제로 Aug 10. 2021

상실감, 그 감정의 깊은바닷속에대하여


얼마 전 서랍 속 빛바랜 옛날 앨범을 발견했다. 예전에 할머니가 사진을 차곡차곡 모아둔 앨범인데 어느새 켜켜이 먼지가 쌓여 서랍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젊은 할머니와 아빠가 있었다. 앳된 얼굴을 한 채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고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은 할머니, 뾰족구두를 신고 정장을 입은 할머니와 할머니의 형제들. 어딘지 모를 바닷가에서 브이를 하며 웃고 있는 아빠. 작은 아빠의 학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은 아빠. 나보다 한참 어린 아빠를 안고 있는 할머니. 


어느새 누렇게 변한 사진 안에는 내가 보지 못한 사람들의 추억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다신 오지 않을 순간들이었다. 


나는 앨범을 덮은 뒤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가슴에 바람이 지나다니는 커다란 터널이 하나 뚫린 기분이다. 과연 이 상실감이란 감정은 대체 무얼까.




상실감이라는 단어를 상상하자면 깊은 바닷속 가라앉아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물고기도 해초도 없는 맑은 바닷속, 나는 모래 위에 혼자 누워서 수면 위를 바라보고 있다. 


그대로 누워있자기엔 끝도 없이 가라앉는다. 수면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헤엄쳐 나가야 하는데 수영을 잘 못하기에 만만치 않다. 숨이 턱턱 막힌다. 


꾸물럭 꾸물럭 헤엄을 친다. 머리가 무거워질 때마다 다시 가라앉는다. 어쩌다 만난 돌고래가 엉덩이를 살짝 밀어준다. 점점 눈앞이 밝아진다. 


애써 힘을 내 도착한 해변가는 지금까지 내가 살던 섬이 아니다. 비슷한 나무들과 비슷한 집들이 있지만 알게 모르게 생경하다. 낯선 느낌에 다시 바다로 돌아갈까 하지만 인간이기에 바닷속에서는 살 수 없다. 


해변가에는 바닷속을 헤엄쳐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모두 이 낯선 도시에 정착해야 한다.





상실감 안에는 삶과 죽음, 시간, 사람, 꿈 등등.. 다양한 단어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것 같다. 


상실감이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만 생기는 건 아니니까. 


누군가는 주식으로 돈을 날려 상실감을 얻을 수도 있고, 오랫동안 염원해온 꿈을 이루지 못해 상실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 이미 흘러가버린 청춘에 대한 상실감은 누구나 한 번쯤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상실감은 무언가가 들어왔다 나간 자리이며,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생기는 허전함인 것 같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소중했던 무언가는 늘 영원하지 않았다. 마음속 난 자리는 후회로만 채워지기 일쑤다. 


그래도 안심이 되는 건, 상실감이란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끝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고 그 안에서 헤어짐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상실감은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 중에 하나이다. 어느 날은 상실감에 빠질 때가 있고 어떤 날은 알 수 없는 희망이 솟구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 같다. 



나는 언젠간 나 역시 아빠나 할머니처럼 빛바랜 앨범 속 사진 한 장으로 남을 걸 알고 있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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