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썬제로 Oct 11. 2021

애정결핍은 반복된다.

초딩시절, 친구들과 장난처럼 하던 말이 있다. "너 애정결핍이냐!"라는 말. 

주로 친구에게 손바닥을 내보라고 한 뒤 그 위에 자신의 손가락을 얹고 그 손가락을 친구가 잡으면 하는 말이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손가락을 무심결에 잡았을 뿐인데 애정결핍 환자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 놀이에는 나름의 철학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별 뜻 없이 다가온 누군가의 손가락을 간절하게 감싸 쥐고 나에게서 빠져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일. 그리고 그 손가락이 빠져나 갔을 때 느껴지는 텅 빈 손바닥. 애정결핍을 정확히 꿰뚫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정결핍도 함께 앓기 마련이다. 사랑에 대한 갈구가 있기에 외로움도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이건 내 얘기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심리상담 어플을 통해 애정결핍에 대한 워크숍 하나를 듣게 되었는데 그때의 감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애정결핍이 생기는 이유는 저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주로 맨 처음 자신을 길러준 주 양육자의 태도에 의해 생성된다고 한다. 처음 관계를 맺게 되는 사람이 부모님이라고 한다면 부모님의 무관심한 태도나, 잘못된 양육방식이 아이가 자라면서 인간에게 갖게 되는 편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잘못된 양육방식 속에 자라난 아이는 무의식 속에 내 주변 사람들, 친구, 애인 등이 언젠간 날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깔려있다. 그리고 이 불안함을 스스로 눈치채고 올바른 생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상대방을 시험 속에 빠뜨리고 곤란하게 만들고는 '그래 역시 얘도 똑같아. 언젠간 날 떠날 줄 알았어' 라며 안심하게 된다고 한다. 


들을수록 내 얘기였다. 사실은 상대방이 날 떠날까 봐 겁먹고 있으면서 애써 미련 없다는 듯 떠날 거면 떠나버리라며 큰소리 떵떵 치던 모습. '아냐 거짓말이야 네가 항상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찌질함의 극치. 나는 지독한 애정결핍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내 내면 속의 어린아이는 늘 사랑을 갈구했고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때로는 사고를 치기도, 때로는 꾹 참고 착한 아이인척 굴기도 했다. 


혼자 있는 게 편하다는 말도 사실 거짓말이다. 지금까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그 모든 것을 차단하고 있을 뿐이다.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으면 외롭다는 말은,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그들에게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차단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도 적어도 애정결핍 환자의 심정을 표현하기에는 꽤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의 애정을 바라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심어져 있다. 


그럼에도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과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뉘는 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나 잘못 가지고 있는 생각 체계를 인식하느냐 못하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애인과의 관계를 예로 든다면, 상대방의 답장이 평소보다 늦어지고 만나는 날이 줄어든 것에 대해 애정결핍 환자들은 '이 사람이 날 떠나려고 하는구나. 내가 싫어진 게 분명해'라는 생각으로 바로 흘러가 애인에게 화를 내고 쉽게 헤어지자는 얘기까지 나오게 된다. 


하지만 그 애인은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회의가 많아져 휴대폰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었으며 지속 누적된 피로로 에너지가 줄어든 상황이었다. 


이럴 때는 무작정 상대방에게 애정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 던져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내 모습은 어땠는지 생각해보니 내 무의식과 인식체계는 그야말로 똥망이었다. 툭하면 내 멋대로 판단하고 상처 받고 외로워했다. 사람을 좋아해서 생긴 애정결핍일 텐데, 오히려 내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혼자 남게 만들었다. 


더 두려운 것은 애정결핍은 단발성으로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내 몸의 일부와 같아서 반복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생각해보는 것을 과제로 남겼다. 

반복되는 애정결핍에 지지 않고, 최대한 상처 받지 않고, 덜 외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세상에 있을까. 






여담일 수도 있지만 나는 혹시 내가 이렇게 애정결핍이 생긴 것에 대해 부모를 원망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강의를 해주신 선생님께서는 많은 상담을 진행하셨지만 대한민국에서 정말 이상적인 양육법을 가진 부모는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아이를 키우면서 쓴소리도 하게 되고 때로는 지쳐서 쉬고 싶은 순간도 있는 법이다. 자녀는 그때 받은 상처를 크게 가지고 있을지언정 부모는 그때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은 이러했다. 


원망하는 마음은 당연히 들 수 있고,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잘못된 것이 아니니 자연스레 감정을 흘려보내라고 말이다. 


'나 사실 그때는 원망스러웠어' 이렇게 한번 툭 내뱉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하셨다. 


원망을 하면 안 돼, 나는 착한 아이야 하고 그 감정을 꽁꽁 싸매고 있는 건 오히려 그 감정을 키우게 되는 일일 테니 말이다.  



이전 09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공허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