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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제로 Sep 13. 2021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공허해

화려한 공연이 끝나고 불 꺼진 집안에 들어오면 그렇게 공허할 수가 없더라고요.


유명한 연예인들이 토크쇼 등에 나와 가끔씩 하는 말이다.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받는 직업을 가진 그들이 몇천 명 , 몇만 명과 함께 하고도 집으로 돌아오면 깊은 공허함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스타도 아니고 단 한 명의 팬도 가지지 못했는데 요즘 그 말이 와닿는다.


최근 나는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별건 아니고 자그마한 스튜디오를 하나 열려고 한다. 회사를 관두고 시작한 건 아니라서 어쩌다 보니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과 주말에는 스튜디오로 향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딱히 자본이 많았던 건 아니고 패기만 많았기 때문에 인테리어까지 셀프로 하고 있어 힘이 열 배로 든다.


풀 바른 벽지는 붙이기 쉬운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무겁고 잘 찢어지며, 데코타일은 그냥 툭툭 놓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모서리 부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콘크리트 벽은 내 생각보다 단단하고, 오래된 건물에는 손을 대야할 곳이 넘쳐난다.


조금만 더 한풀이를 하자면 나는 심지어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까지 있는 편이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어 딜레마다. 또한 시간이 나면 쓰고 싶던 글도 쓰고, 브런치도 열심히 발행하고, 취미로는 블로그도 운영하려고 했는데 어휴 이거 정말 시간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덕분에 좋은 점이 있다면 늘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전 남친들은 딱히 생각나지도, 생각이 난다 한들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나에게 있어 더 중요한 건 샹들리에 조립법이라던가 소파의 배치를 어떻게 할지 같은 고민들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공허함이 철썩 밀려올 때가 있다. 바쁜 나날들이라는 방파제가 막고 있던 거센 외로움의 바다가 범람하는 것이다. 높은 파도가 온몸을 휩쓸고 지나가는 순간 나는 바보처럼 무기력해진다.


그래 사실 나는...


유난히 더운 여름의 끝자락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 근처 호프집에서 시원하게 맥주 한 모금 넘기며 누군가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손짓 발짓 동원해가며 설명하고 싶다. 친구와 의견이 안 맞았던 날에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다른 이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힘들게 모든 일을 끝마치고 들어온 늦은 밤,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한마디가 참 듣고 싶다. 다다다다 랩을 하듯 떠드는 내 모습을 누군가는 인자한 보살처럼 '응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하며 귀여워해줬으면 싶다.


이런 나를 보면 이런 말이 툭 나온다.


"아 남자 친구 없어서 다행이다. 내가 또 한 사람 구제했네"


이건 정말 진심인데 이렇게 바쁘고 힘들 때 자의든 타의든 내가 혼자여서 차암 다행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내가 요새 유난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의 하루가 여유롭다는 가정은 아니다. 이럴 때 남자 친구가 있었다면 나는 분명 내가 힘든 것만 나열하며 듣는 이의 고통을 무시한 채 그에게 막연히 의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애의 결말은 지쳐 떨어진 남자와 영문을 모른 채 그 남자를 원망하는 여자만이 남아있겠지.


잠깐의 공허함을 달래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니 머리를 콩콩 쥐어박아도 모자랄 일이다.


바닷물의 짠맛은 퉤퉤 뱉어버리고 나는 다시 바쁜 하루를 시작해야지. 공허함은 아프지만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성장하는 것은 통증을 동반하기에 성장통이라 불리지 않는가. 여기서 이런 얘기 좀 그렇지만 회사일도 하고 스튜디오 일도 하고 글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의 성장통을 돈이 치유해 줄 순간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그런 날이 오면 비로소 내 마음을 나눠줘야지. 단단해서 꽤 쓸모가 있을 거야 하며 거북목도 퇴치할 수 있는 목침이 되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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