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내시점
나를 안아주고 싶어
요즘따라 회사에 일이 없어 한가로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절대 내가 일이 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것이 아니다. 직원이 별로 없는 우리 회사에서는 고요한 적막감이 맴돌아 안 그래도 심심한데 일까지 없으니 더욱 미칠 노릇이다.
나는 너무 심심하거나 외로운 날에는 이상하게 충동적인 생각이 마구 든다. 지루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건 성인 ADHD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뭐 어쨌든. 이 날따라 그냥 아무 곳이나 거닐고 싶고 모르는 사람도 덜컥 만나고 싶고 절대 연락하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연락해보고 싶고 그랬다.
왜 나는 이런 충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지,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같은 고민을 얘기한다면 딱 잘라 참아보라고 얘기하거나 좀 더 객관적으로 얘기해줄 텐데 스스로 다독이려니 힘이 든다.
내 인생이 한 편의 소설이고 내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에서 내가 책을 읽는 독자가 된다면 주인공에게 과연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내가 가장 잘하는 상상을 시작했다.
나의 영혼 절반이 갑자기 육체를 이탈하여 스스슥 빠져나간다. 순식간에 생긴 '또 다른 나'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본다.
‘저 근무시간에 멍청하게 스파이더 카드게임이나 하며 하품을 하는 사람이 나군. 심지어 중급은 깨지도 못하잖아’
진지하게 스파이더 카드게임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뭐? 그냥 심심하다는 이유로 이상한 행동이 하고 싶다고? 관종이냐! 그냥 심심하게 보내는 날도 있는 거지 제발 아무 짓 좀 하지 마’
전지적 시점을 가졌기에 내가 하는 생각을 읽은 '또 다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내가 답이 없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어휴 그렇게 외롭고 힘드냐? 좀만 더 참아볼 순 없는 거야? 나는 네가 나약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느새 내 옆으로 온 '또 다른 나'. 외롭다는 생각을 하며 회사 사무실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죽이는 나를 보니 괜스레 안쓰럽다.
'그냥 누군가가 옆에서 외롭지 않게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라고 있는 거잖아. 참으로 찌질한 인간. 그 속내는 내가 훤히 다 알고 있다고.'
쭈뼛대던 '또 다른 나'는 진짜 나를 안아준다. 안타까운 인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데 자꾸 무너진다. 그렇게 '또 다른 나'는 한참을 내 옆에서 궁시렁대며 토닥거렸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진짜 위로를 받은 것 같아 마음이 담담해졌다. 내가 듣고 싶은 얘기를 내가 직접 해주니 개운하기도 하다.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 나를 바라보는 일이 꽤나 외롭지 않게 느껴졌다.
소중한 주변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듯이 내가 소중하다면 내가 망가지는 일은 원치 않는게 맞다. 스스로를 아낀다면 남들 앞에서 부끄러운 짓은 안 하고 살 수 있다.
뭐가 나를 위하는 길인지 모른다면 주인공 시점에서 벗어나 전지적인 시점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이 참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다. '네가 해피엔딩이 되는 길은 지금 그 길이 아니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