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
솔직히 그동안 계속 미뤄왔다.
훌륭한 작가의 훌륭한 작품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선뜻 읽지 못했다. 최근 들어 다시 독서 자체에 소홀한 면도 있었으나, 주어진 인생이 빠듯하고 팍팍해서 무거운 주제의 글은 읽고 싶지 않다는 얄팍한 마음이 컸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이 책을 추천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책을 읽은 뒤 감정이 깊게 이입되어 일상을 살아내는 게 어려울까 무섭다며 저어했다. 같은 주제로 만들어졌던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오열하고 내내 힘들어했던 나를 떠올리며 지레 잔뜩 겁을 먹었다.
한강 작가님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큰 환희와 함께 묘한 죄책감을 안겼다. 너나 할 것 없이 작가님의 책을 읽겠다며 서점 앞 문정성시를 이루는 모습을 보며, 이처럼 살갑게 다가온 면죄부를 그러잡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물론 노벨상 받은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아 죄책감을 느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말 혹시나 누군가 오해할까 해서.)
마음먹고 읽으려고 하면 또 언제까지 미룰 줄 몰라, 출근길에 이북 앱을 켜 당장 소장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쉽게 서재에 담길 걸 뭘 그리 오래 망설였는지. 듣던 대로 책의 문체는 놀랍도록 담담했으며, 과장도 생략도 없는 잔인하도록 생생한 활자들이 책의 한 장 한 장을 빼곡히 채워내고 있었다. 먹먹하게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몇 장을 거쳐 이어지는 동안 눈물이 나다가도 끓어오르는 마음에 오히려 머리가 차게 식기도 했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역사인데도 새삼스레 이런 과거가 실제로 존재했고,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다는 게 소름 끼치게 무서워졌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하는 편인 나는 인간의 잔인함과 흉포함이 극대화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그토록 빛낸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들은 대체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 바보 같은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냈다.
우리 모두는 광주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종종 듣던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민주화 항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그것이 그동안 내가 역사로서 배워온 1980년 5월 18일의 광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이해일뿐이었다. 책을 읽은 후엔 내가 지고 있는 빚이 살아 움직이며 나를 쫓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읽기를 외면했던 시간들이 마치 진 빚을 갚지 않고 도망 다니던 것처럼 느껴졌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마저 너무 작은 명분으로 보였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임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게 만들어준 역사적 사건 중 하나였다. 소중하고 아까운 이들의 피와 살이, 생명이, 삶이, 행복이 너무나 큰 대가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 사건을 기록함으로써, 누군가는 연구함으로써, 또 누군가는 기사로, 시로, 소설로, 드라마로,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그 빚을 갚고 있다.
그에 비해 나의 채무 변제 현황은 얼마나 하찮고 보잘것없는가. 뭐라도 적어야겠다 싶었다. 이 글이 과거의 나처럼 이 작품을 읽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용기를 얻었던 문장을 함께 공유하며.